30. 헌터 기동훈련-4
발목에 부상을 입었는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는 헌터.
손은서 상병이었다.
“쟤네 소대는 절반 이상 나가떨어졌네.”
“이번 기동 훈련이 확실히 빡세긴 해.”
“아. 말하다 보니 졸린다. 그냥 입 닫으련다.”
“그냥 계속 말해. 입 닫는 순간 잔다.”
4대대 4중대 4소대 소대원들 절반 가까이가 탈진 상태.
“죄송합니다….”
결국 탈진한 여헌터들은 훈련 포기 선언을 했다.
이대로는 소대원들에게 짐만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뒤쪽에서 대기하던 의무 헌터들이 그녀들을 부축하며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하긴. 우리 소대원들도 나 아니었으면 10명 이상은 나가떨어졌지.’
김민준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소대원들과, 자면서 걷기 스킬을 보여 주는 소대원들도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한 것이리라.
‘타 대대 소대원들을 도와주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오히려 훈련 점수를 주면 줬지.
김민준이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사이, 소대원들은 4중대가 있는 곳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충성! 중위 김철민입니다. 혹시 위독한 헌터 있습니까?”
“아, 예! 위독한 헌터는 없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습니까. 저희는….”
소대장들이 서로 예의상 말을 주고받던 사이.
“죄송합니다! 손은서 상병님! 정말 죄송합니다!”
여헌터 한 명이 손은서에게 다가가 울상으로 머리를 숙였다.
뭔가 싶었더니, 손은서는 자기 후임을 감싸다가 대신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저건 골절이네.’
김민준은 그녀의 발목을 보고, 한눈에 상태를 알아차렸다.
‘처치가 살짝 아쉬운데.’
부목으로 어떻게 고정은 해 놓은 것 같은데, 불안정해 보였다.
‘까짓것 도와주지, 뭐.’
타 대대라도 같은 헌터면서, 전우니까.
“소대장님. 잠시 용무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손은서 상병의 응급 처치가 불안한 상태입니다. 제가 한번 봐 줘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김철민 중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민준아. 너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예, 경험이 좀 있습니다.”
“섣불리 만지면 큰일 난다.”
“자신 있습니다.”
“그래. 자신 있다니까 한번 해 봐라. 잘못되면 네 책임이다.”
“예!”
김민준은 소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손은서 상병의 앞으로 다가갔다.
“잠깐 비켜 봐요.”
“네? 네….”
주위에 소대원들을 적당히 치우고, 손은서의 발목 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김민준 씨? 지금 뭘 하는….”
“고정 상태가 불안해요. 가만히 있어 봐요.”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부목의 위치를 바꾸고, 골절 부위를 고정했다.
다른 소대원들은 그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걸로 됐습니다. 아직 15㎞ 이상 남은 거 알죠? 이대로는 못 걸어요.”
결국에는 중간에 포기해야 한다는 말.
그 말에 손은서가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훈련 첫날에 포기하든, 마지막 날에 포기하든 똑같다.
실적 점수를 아예 못 받는다.
이제 마지막 날인데, 그녀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아쉬울 것이다.
“방금 걸로 괜찮아졌어요. 조금만 더 가면… 악!”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으윽….”
손은서는 몸을 일으키려다 통증을 느끼고 다시 주저앉았다.
팔이라면 모르겠지만, 발은 무리일 것이다.
‘한쪽 다리로 15㎞를 걷는 건 나 정도는 되어야지.’
김민준은 몸을 일으키려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만. 그냥 내가 얘 들고 가면 되는 거 아냐?’
아직 체력이 넘치는 상태이기도 하고, 저쪽 소대는 운도 좋게 이송해야 할 환자도 없다.
한 명 정도는 자신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쟤는 다른 헌터들과는 다르지.’
아버지가 사단장 딸이니까.
나중을 위해 도와줘도 나쁠 것이 전혀 없지.
“소대장님. 제가 손은서 상병을 업은 채로 이동해도 되겠습니까?”
“뭐?”
김민준은 결정을 마치고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김철민 중위는 그 말을 듣자, 고민에 잠겼다.
‘한 명, 거기에 손은서 상병.’
말을 꺼낸 것이 다른 헌터였다면 칼같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준은 한눈에 봐도 컨디션이 좋았고, 지금까지 상황 대처 능력도 월등히 뛰어났다.
“네가 한 말을 책임질 수 있다면 해.”
“예! 알겠습니다!”
저대로 놔두면 손은서가 다리 한쪽으로라도 갈 것 같아, 결국 허가하기로 했다.
“들었죠? 이대로 훈련 포기할래요? 아니면 저한테 업힐래요?”
“…업힐게요.”
손은서는 순순히 김민준에게 업히기로 했다.
‘군장은 방해되네. 그냥 한쪽 어깨로 멜까.’
그가 군장을 벗으려 하자, 이승호 병장이 다가와 홱 낚아채 갔다.
“이승호 병장님?”
“네 군장은 내가 들고 간다.”
“제가 들 수 있습니다.”
“긴급 상황에 대처나 제대로 해라.”
“예. 감사합니다.”
90㎏ 가까이 되는 군장이야 자신에게 별것 아니었지만, 병장이 그러겠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김민준은 손은서를 매뉴얼대로 업은 뒤, 걷기 시작했다.
‘그래. 너 해라.’
‘업어 달라고 부탁해도 못하겠다, 나는.’
‘쟤는 진짜 사람 맞냐? 저렇게 팔팔한 게 말이 되나?’
평소 같았으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겠지만, 소대원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한 상태.
둘을 향한 관심도 잠깐이었다.
“지금까지 다들 잘 왔다! 앞으로 10㎞만 더 가면 부대에 도착한다! 포기할 사람 있나!”
“없습니다!”
“목소리 봐라! 포기할래?”
“아닙니다아!”
김철민 중위는 헌터들이 극도로 힘들어할 때마다,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혹시 힘드시면 언제라도 괜찮으니까 말하세요. 포기할게요.”
“괜찮아요. 돌쇠보다는 가볍네요.”
“돌쇠… 뭐요?”
“제가 감으로 무게 측정하는 건 기가 막히거든요. 맞혀 볼까요? 앞자리는 5. 뒷자리는….”
“입 닫을 테니까 제발 좀 조용해요!”
반면, 김민준은 손은서와 잡담을 나눌 만큼 멀쩡했다.
그는 하루에 1시간만 수면을 취하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으니까.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투자요?”
“아버지가 사단장이시잖아요.”
“…딱히 김민준 씨한테 이득이 갈 것 같지는 않은데.”
“뭐, 그래도 상관없어요.”
사단장의 딸인데 이득이 안 오겠냐?
절대 포기할 수 없지!
“나중에 꼭 갚을게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는 태평하게 대답하면서도, 주위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몬스터가 습격할 때마다 소대원들이 대처를 잘하는 것도, 김민준 덕분이었다.
“아… 제발 몬스터만 나오지 마라. 제발.”
“이러다 죽겠다.”
“지옥이다, 지옥. 훈련 강도를 노말에서 헬 모드로 바꿔 놨네.”
시간은 지나 어느덧 밤 10시.
도착지까지 단 2㎞를 남겨 두고 있는 상황.
헌터들은 체력에 한계가 왔는지, 걷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소대장도 그걸 알아차리고, 속도를 늦춰 주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11시쯤에는 도착하겠다.’
김철민 중위 역시 상당히 지친 상태였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다른 소대원들과 달리, 자신의 소대원 중 훈련을 포기한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안심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키이이익!”
“소대장님! 상공에 몬스터 출현했습니다!”
“큭! 다들 대열부터 맞춰!”
“예!”
공중형 몬스터인 검은 갈퀴가 나타났다.
‘이야. 확실히 악랄하긴 하네.’
김민준은 헌터 기동 훈련의 잔혹함에 감탄했다.
‘새벽에도 미친 듯이 풀어 대더니, 이번엔 도착지 앞에서 공중형 몬스터를 풀어?’
안 그래도 밤인데, 검은 갈퀴의 몸체 역시 검은색이다.
거기다 몸체도 참새만큼 작아, 처리하기도 까다로운 개체였다.
‘헌터들의 컨디션은 최악이고.’
저 몬스터에 대항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 된다.
소대원들은 몬스터를 확인하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도착지가 코앞에 있는데, 하필이면 나타난 몬스터가 저런 까다로운 몬스터니.
‘나한테 있어서는 고마운 놈들이지!’
김민준은 놈들을 모조리 탐색하며 눈을 빛냈다.
실적 점수를 전부 빨아들일 수 있는 기회!
“다들 이대로 한 번 뒤로 빠진….”
“소대장님!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김민준?”
“제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김철민 중위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실 이대로 뒤로 후퇴해 봤자, 시간 끌기밖에 안 된다.
그만큼 소대원들의 체력과 정신력은 한계에 달한 상황.
“해보고 안 되면 바로 후퇴한다!”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김민준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마나건을 꺼냈다.
감독관은 들것에 들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나건으로 처리하려면 모든 소대원들이 나서야 하지.’
이 지점에서 시간이 지체되거나, 나가떨어지는 소대들은 상당히 많다.
‘여기까지 도달한 모든 소대가 저놈들한테 시달렸다.’
검은 갈퀴는 극한의 상황에서, 헌터들의 정신력을 시험한다는 취지로 푼 몬스터였다.
덩치도 작은데, 날렵할 뿐만 아니라 공중형 몬스터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저놈들은 끈질기게 달라붙거든. 잘못 물어뜯기면 살점이 뜯겨 나갈 수도 있다. 물론 특수 약물을 투여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겠지만.’
2중대 2소대원들은 현재 3명의 부상자를 이송하고 있는 상황.
‘이놈들은 운이 나쁘군.’
환자 3명을 보호하면서 검은 갈퀴를 모두 처리한 뒤.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건 상당히 버거울 터였다.
‘이건 저놈이라도 힘들겠지. 밤이기도 하고.’
감독관의 시선이 김민준에게 잠시 머물렀다.
‘일단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기로 할까.’
한편.
김민준은 검은 갈퀴들의 기척을 잡아내고 있었다.
‘8마리. 마기 뿜기엔 지금이 딱이네. 어차피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을 테고.’
아무리 자신이라도 야밤에 검은 갈퀴의 급소를 맞추는 건 살짝 어려웠다.
‘암흑 화살.’
그렇다면, 스킬을 같이 사용하면 된다.
타앙! 탕!
김민준은 마나건을 발사하면서, 동시에 암흑 화살을 날렸다.
“끼이익!”
쉬익! 쉭!
마기로 만들어진 화살과 함께, 마나건의 탄환이 발사된다.
툭. 투둑.
한 발, 한 발마다 검은 갈퀴의 몸통이나 머리가 꿰뚫린 채 땅으로 떨어졌다.
그가 검은 갈퀴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어? 바, 방금 어떻게 한 거예요?”
등에 업혀 있던 손은서가 화들짝 놀라며 질문해 왔다.
안 그래도 자신을 업고 있는데, 고작 마나건으로 검은 갈퀴를 잡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차라리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쌀알을 맞히는 게 더 쉬울 터였다.
“뭐… 뭐야 저놈?”
그건 감독관도 마찬가지.
감독관은 아예 들것에서 몸을 일으킨 뒤, 몬스터의 시체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8마리 전부 죽었잖아… 발포 음은 정확히 여덟 번 들렸는데….”
그렇다면, 한 발에 한 놈씩 죽였다는 말이 된다.
‘어두워서 하나도 안 보일 텐데, 저 작은 놈들을 모조리 혼자서 처리했다고?’
체력이 한계에 달한 시점일 텐데, 말도 안 되는 집중력이다.
“소대장님! 전부 처리했습니다!”
“확인했다! 전원! 없는 힘까지 쥐어짜서 이동해!”
“예!”
감독관이 놀라는 것도 잠시뿐.
검은 갈퀴가 처리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헌터들은 이를 악물며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2대대 2중대 2소대, 전원 통과!”
밤 11시 30분.
타 대대 헌터인 손은서를 포함해, 전원 헌터 기동 훈련을 완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