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27화 (27/212)

27. 헌터 기동훈련-1

“이, 이병 진철호!”

대열 뒤쪽에서 졸던 헌터는 얼마 전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이었다.

녀석은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는데, 한눈에 봐도 피곤한 기색이었다.

“야. 정신 줄 놨냐? 다른 훈련도 아니고 헌터 기동 훈련하는데 졸아?”

“죄송합니다….”

“너네 생활관 선임들 한번 집합시켜 줄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김철민 중위도 그를 잠시 노려보았지만, 앞으로 일정이 바빠 따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동 훈련이라. 시기가 나쁘긴 하네.’

그래도 저건 아니지.

사단 기동 훈련은 큰 규모의 훈련인데, 졸아 버리는 건 자신조차 용납이 안 되는 수준.

“너희들도 긴장하고 훈련에 임해라. 이번 훈련 제대로 못 받으면 2소대원들 일병부터 상병까지 전부 집합시킬 거다.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방금 신병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났는지, 이승호는 굳은 얼굴로 소대원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안 그래도 훈련에 민감한 이승호 병장인데, 4년에 한 번 있는 기동 훈련에 졸다니.

그것도 이병이 말이다.

이승호 병장이 저 말을 했다는 건, 상당히 화가 났다는 뜻이리라.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지금부터 3박 4일 동안은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김철민 중위의 인솔을 시작으로, 헌터 기동 훈련이 시작되었다.

소대들은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출발했다.

헌터들은 완전 군장 상태로, 위병소를 빠져나와 산으로 향했다.

‘산을 두 개나 타네.’

헌터들이 이동하는 거리만 약 100㎞ 정도.

몬스터를 실시간으로 상대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산악 행군과 다를 바 없었다.

저벅. 저벅.

산길을 오르길 수십 분.

소대원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이제부터 부대에서 무작위로 몬스터를 풀 것이었기에.

‘시작은 놀부턴가.’

김민준은 산 위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놀은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하급 몬스터지만, 상황에 따라 까다로워지기도 했다.

‘대략 20마리 정도네.’

놀은 짐승 형태의 몬스터다 보니, 산 같은 지형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반면, 헌터들은 완전 군장 상태로 험한 산길을 오르고 있다.

무거운 군장을 멘 상태다 보니, 힘이 제한되는 건 당연했다.

“전방 150m 지점에 놀 출현!”

“다들 주 무기 장비하고 대열 정비해!”

“알겠습니다!”

두두두두.

산 위에서 놀들이 무더기로 내려온다.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헌터들이 각자 무기를 장비하고, 포지션을 잡았다.

“놈들한테 먼저 달려들지 마라! 놈들이 오게 만들어!”

“예!”

평소였다면 이미 처리하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은 훈련 상황이다.

앞으로 3박 4일 동안 이런 상황이 쉴 새 없이 터질 것이기 때문에, 체력을 최대한 온존해야 했다.

“크르르륵!”

놀들은 헌터들의 주위를 맴돌며 간을 보다가, 언덕이 가팔라지기 시작하자 달려들었다.

“크윽!”

“야! 다리 힘주고 버텨!”

헌터 한 명이 비틀거리자, 뒤에 있던 헌터가 재빨리 두 손을 들어 몸을 지탱해 주었다.

대열이 무너지면 그만큼 피해가 크기 때문.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사이, 김민준은 군용 칼로 놀의 목덜미를 그었다.

“옆! 옆에서도 온다! 세 마리!”

“조금만 버텨 봐!”

무거운 군장 때문인지, 헌터들의 대처가 평소보다 느렸다.

‘저건 좀 불안하네.’

시선을 돌려보면, 뒤쪽에 있는 헌터들에게 놀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었다.

놈들이 헌터들의 주위를 맴돌며, 약한 부분을 찾아낸 것이리라.

‘커버 가 줘야겠다.’

하급 몬스터라도, 방심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놈들이 무리를 이루게 되면 발생하는 시너지가 엄청났으니까.

“뒤쪽 대열로 잠시 지원 가겠습니다!”

김민준은 뒤에 있는 대열로 날렵하게 움직였다.

푸확! 푹!

놀들의 목덜미에 칼을 깊숙이 박은 뒤, 뒤로 넘어진 선임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후우, 고맙다 민준아. 시작부터 체력 오지게 깎일 뻔했다.”

“상병 김민준. 아닙니다. 전 바로 대열로 돌아가겠습니다.”

“나이스. 타이밍 좋았다, 민준아.”

놀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다른 소대들은 평균 20분 이상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빠른 편이었다.

“사체 다 모았습니다!”

“약품 뿌리고 바로 이동한다!”

“예!”

헌터들은 곳곳에 흩어진 놀의 사체를 한곳에 모은 뒤, 특수 약품을 뿌렸다.

던전 안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 이곳은 훈련장이었으니까.

“다들 주목!”

“주목!”

저녁 6시가 되자, 헌터들을 인솔하던 소대장이 정지신호를 내렸다.

“지금부터 텐트를 치고 야영 준비를 한다!”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은 그제야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지었다.

훈련 첫날,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는 몬스터를 추가로 풀지 않았으니까.

사실 이것도 짬 있는 병장들만 알고 있는 고급 정보였다.

“아. 이걸 만든 놈들은 무슨 생각하고 만들었을까. 이 좁아 터진 텐트 안으로 4명이 어떻게 들어가?”

“돈 때문이겠지, 뭐. 국방비 좀 팍팍 써 주지.”

“난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까 모기만 막아 줘라. 제발.”

헌터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해, 군용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작긴 하네.’

헌터용 텐트는 보통 군용 텐트보다도 크기가 작았다.

몬스터의 공격을 대비해 특수 재질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런 작은 텐트 하나의 가격만 해도 천만 원이 넘어갔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야 하다 보니 크기가 작은 건 당연했다.

“이야. 민준아. 너 군용 텐트 처음 설치하는 거 맞냐? 이거 헌터군용이라서 좀 어려운데.”

“되게 빠르네. 우리도 좀 도와주라.”

선임들은 능숙하게 텐트를 설치하는 김민준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안 그래도 이 지점은 텐트를 설치하기에 엿 같은 환경인데, 기가 막힌 손놀림이었다.

“상병 김민준.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다른 선임들의 텐트를 설치해 주었다.

‘이 정도야 거저지.’

사실 이것도 이세계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손에 익은 것이다.

‘거기서는 즉석에서 나무를 베고 쌓은 뒤에 개 같은 잎을 모아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텐트 설치가 끝나고, 소대원들은 소대장의 간단한 전파 사항을 들었다.

“다들 텐트 설치 끝났으면, 식사할 수 있도록 한다! 식사는 30분 이내로 마친다! 알겠나!”

“예!”

헌터들은 챙겨 온 전투식량을 꺼내 먹으며, 조용히 담소를 나눴다.

“아. 훈련 1일 찬데 벌써부터 현타 온다.”

“그나마 오늘이 제일 꿀 빠는 날인데.”

“내일부터 몬스터가 얼마나 풀릴지 상상도 안 간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 이 30분이 하루 중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다.

퍼석!

“어우….”

김민준은 비스킷 형태의 빵을 베어 물고,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아, 이 익숙한 맛….’

이스가르드에서 먹던 그 식량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정말 더럽게 맛없었다.

“어, 민준아. 너 전투 식량 처음 먹냐?”

“상병 김민준. 그렇습니다.”

“아, 그거 더럽게 맛없는데.”

“저거 먹을 바에 파운드 케이크 10개 먹는다. 인정?”

소대원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시뿐.

식사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다들 주목!”

“주목!”

김철민 중위가 헌터들의 시선을 모았다.

“비상시를 대비해, 단독 군장은 유지한 채로 잘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그럼 지금부터 불침번 조를 편성하겠다.”

부대에서 몬스터를 가장 많이 푸는 시간대가 새벽이다.

헌터들을 한계로 몰아넣기 위해서였다.

‘제발. 제발 초번이나 말번.’

‘아니면 말번 전이나 초번 뒤.’

소대원들은 제발 꿀 빨 수 있게 해 달라며 속으로 기도했다.

“나이스! 초번이다!”

“아… 씁. 애매하네….”

“하. 새벽 2시 실화냐….”

불침번 조가 정해지자, 헌터들의 얼굴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울상을 짓는 헌터가 있는가 하면, 기쁜 얼굴로 웃는 헌터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피로를 회복하고 싶겠지.’

김민준은 헌터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체력이 넘치는 자신이야 헌터 기동 훈련이 별것 아니다.

하지만 소대원들에게 있어서는 하루하루가 고비일 테니.

“오늘부터 훈련이 종료될 때까지, 소대장도 불침번을 선다. 나랑 같이 설 헌터 있으면 거수해라.”

시간대도 극악인데, 소대장과 같이 불침번을 선다?

‘새벽 3시….’

‘저건 아니야….’

‘무조건 피해야 한다.’

‘제발 나만 걸리지 마라!’

반드시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병, 김민준! 제가 하겠습니다!”

그때.

김민준이 손을 들며 나섰다.

‘사, 살았다.’

소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 김민준 상병은 나하고 새벽 3시부터 4시 30분까지다.”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말번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수면 시간은 별로 중요치 않았기에 편하게 양보했다.

“소대장이 하나 더 알려 주자면, 이번 헌터 기동 훈련은 강도가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번 기동 훈련은 훈련 중간에 몬스터만 상대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거라며 설명했다.

“다른 간부들도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상황에 따른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알겠나!”

“예!”

훈련 강도가 높아졌다.

그 말에 헌터들, 특히 병장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4년 전에 있었던 훈련도 악을 써 가며 겨우 마쳤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강도가 높아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

“별 이상 없으면 바로 취침할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결국엔 시간이 지나 봐야 아는 법.

소대원들은 첫날은 별일 없겠거니 하며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

시간이 지나고 새벽 3시.

김민준은 불침번을 위해 텐트 밖으로 나갔다.

저녁 시간 이후로 현재까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충성.”

“그래. 지금부터 4시 30분까지다. 이상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김철민 중위가 고개를 주억였다.

훈련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투는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다.

‘장교들에게 있어서도 훈련은 중요하니까.’

당연히 저렇게 해야겠지.

다른 간부들은 적당히 눈치 봐 가면서 쉰다고 하는데, 김철민 중위는 그럴 기미가 1도 안 보였다.

거기다 헌터들이 기피하는 시간대에 불침번을 나서기까지.

소대원들에 대한 그 나름의 배려인 셈이다.

‘이제 30분쯤 남았나.’

시간이 지나고, 새벽 4시.

김민준이 주위를 훑으며 걸어가던 도중.

‘응? 뭔가 왔네.’

하늘 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몬스터는 아니지만, 분명 이쪽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

‘소대장은 못 알아차린 것 같네.’

그럴 수밖에 없다.

새벽.

그것도 하늘에서 소리 없이 떨어지는 물체를 누가 알아차리겠는가.

“소대장님! 곧 상황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자세히 보고해 봐.”

자신의 말에 김철민이 의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분명, 주위에서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위에서 옵니다.”

김민준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저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물체.

김철민은 그 정체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소대원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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