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마기보충
“코볼트라. 안쪽에서 기척은 한 마리밖에 안 느껴지는데.”
보통 놈들은 집단행동을 하는데, 이래서 이레귤러라는 건가.
“좋아. 아무도 없네. 바로 간다.”
경계 서는 헌터들은 다른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김민준은 곧바로 던전에 들어갔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드르르르.
“폐쇄형이구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입구가 막혔다.
그래 봤자, 아무런 감흥도 없었지만.
“야. 너 거기 안쪽에 있는 거 아니까 튀어나와.”
김민준은 던전 안쪽으로 마기를 흘려보냈다.
쿠웅! 쿵!
그러자 던전 끝쪽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이놈 튼실하네.”
“쿠어어어어!”
보통 코볼트보다 6배 이상 거대한 덩치.
오크보다도 거대했다.
얼마나 많은 마기를 품고 있는지, 놈의 몸체는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걸 2개의 소대로 공략하려 했단 말이지….”
그랬다면, 절반 이상은 죽어 나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본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놈이었다.
“마기를 엄청나게 마셨네. 고맙게.”
투웅! 퉁!
코볼트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두 주먹을 힘껏 부딪쳤다.
“오. 재롱도 부릴 줄 알아? 오랜만에 한번 놀아 줄까?”
지금까지 봐 온 놈들이 벌레였다면, 이놈은 장수풍뎅이 수준은 된다.
결국, 김민준에게 있어서는 같은 벌레라는 말.
뻐억! 퍽!
그는 코볼트의 복부를 봐주지 않고 두 번 가격했다.
“끄워어어어!”
“에이. 이제 두 대 때렸는데. 힘 좀 내 봐.”
그러자, 놈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숨을 거칠게 뱉었다.
“끄워….”
“재미없다. 그냥 마기나 내놔.”
많은 마기를 품고 있길래, 좀 강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코볼트.
김민준은 놈을 처리하고, 품은 마기를 전부 빨아들였다.
“어우, 손 아프네. 도대체 몇 대를 때려야 죽는 거야.”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하였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연속으로 출력되는 메시지.
김민준은 마기가 차오르는 충만감을 느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해, 암흑 화살이 개방되었습니다.]
[나이트 워커가 강화됩니다.]
“얼마나 올랐는지 한번 볼까.”
[김민준]
‘세리아 누나는 내 최애캐’ 교의 창시자.
힘: 65 민첩: 60 체력: 60 마기: 22
보유 스킬: 부패(D), 나이트 워커(D), 암흑 화살(E), 기본 둔기술(E), 기본 검술(E). 스트렝스(E)
역시 마기의 스텟이 낮다 보니, 이렇게 몬스터 한 마리만 잡아도 스텟이 쭉쭉 올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스킬 개방까지.
“원거리형 스킬이라. 딱 좋지.”
암흑 화살은 말 그대로 마기를 이용해 화살을 만들어 내는 스킬이다.
앞으로의 헌터군 생활에 있어 유용할 것이다.
“운이 좋아. 그동안 부패밖에 못 써서 살짝 답답했는데.”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는 과정일 뿐이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만렙을 달성한 고인 물이 회귀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스스슥.
그사이, 나이트 워커가 자신에게도 마기를 나눠 달라며 보챘다.
“그래. 잘했으니까 상이다. 가져가.”
스스스스-
“이런 미친놈이! 적당히 처먹으라고!”
신나게 마기를 빨아 가던 나이트 워커는 호되게 혼나고 그림자 안으로 숨었다.
스슥-
“최소한의 연료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란 말이야, 알겠냐?”
마치 악덕 업체의 사장님 같은 말투였다.
“이제 남은 휴가 적당히 즐기다가 복귀하면 되겠네.”
**
“상병! 김민준! 휴가 복귀했습니다!”
“어. 민준이 왔냐.”
“예, 이거 받으십쇼. 별건 아니지만 생각나서 사 왔습니다.”
“이거 최신 호네? 마침 보고 싶었을 때 딱 사 오네. 고맙다.”
생활관으로 들어오자, 분대원들이 어두운 얼굴로 군장을 챙기고 있었다.
심지어 잡지 최신호를 받은 선임까지.
뭔가 싶었더니, 6개월 뒤에나 있을 헌터 기동 훈련의 일정이 앞으로 당겨졌다고 한다.
‘헌터 기동 훈련이라….’
헌터 기동 훈련.
사단 전체가 하는 큰 훈련이다.
사단의 전투력 측정이 목적이기 때문에, 헌터들은 훈련 기간 동안 밖에서 몬스터와 미친 듯이 싸워야 한다.
자다가도 싸우고, 밥 먹다가도 싸우고, 이동하다가도 싸우고.
큰 훈련인 만큼, 실적 점수 또한 높았다.
“진짜 우리 부대 훈련 강도 실화냐. 이러다 맨주먹으로 오크 때려잡겠네.”
“어차피 받아야 하는 건 아는데,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현타 온다.”
“이… 개 같은 거! 병장 달고 기동 훈련을 또 하네. 난 장기 안 할 거라고!”
“아. 다 때려 부수고 싶다.”
특히 병장들은 군생활이 꼬였다며 잔뜩 성을 내는 중이었다.
그럴 것이, 헌터 기동훈련은 보통 4년 주기로 시행되었으니까.
5년의 군생활 도중, 기동 훈련을 2번 받으면 저주받은 헌터군 기수라고 불렸다.
‘아. 난 2번이든 3번이든 좋다. 이런 훈련 많았으면 좋겠다.’
훈련 규모가 클수록, 실적 점수가 컸으니까.
김민준은 태연한 얼굴로 군장을 싸기 시작했다.
똑똑.
“준비 잘하고들 있냐?”
“충성. 예! 그렇습니다!”
소대장이 들어와, 분대원들을 슥 훑었다.
“헌터 기동 훈련 당겨진 거 알지? 큰 훈련인 만큼, 긴장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잘못하면 크게 다치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잘해 줘야 그 뒤로 편해진다. 잘 알지?”
“예! 알겠습니다!”
사단 기동 훈련을 통해, 성적이 부진한 사단은 훈련이 임의로 추가된다.
헌터들에게 있어서 지옥문이 열리는 셈이었다.
김철민 중위는 분대원들에게 간단한 지시 사항만 전파한 뒤, 자리를 비웠다.
그 역시 기동 훈련이 처음이었기에, 살짝 긴장한 기색이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열쇠를 안 돌려 드렸지.
김민준은 곧장 소대장실로 향했다.
똑똑.
“상병 김민준. 소대장님께 용무 있습니다.”
“들어와.”
“충성.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김철민 중위에게 열쇠를 돌려주자, 그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준아.”
“상병 김민준.”
“너 어디서 잤냐? 아파트에서 안 잔 것 같은데.”
뭐지.
어떻게 안 거야.
‘던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안 갔습니다!’라고 대답할 순 없는 노릇.
“복귀할 때, 편하게 복귀하고 싶었습니다.”
김민준은 아파트가 있는 곳은 부대와 너무 멀었다고 대답했다.
“내 눈치 본 건 아니고?”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냐.”
그는 열쇠를 받고 나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민준아. 너 헌터 기동 훈련 처음이냐?”
“그렇습니다.”
“그러냐? 나도 처음이다.”
기운 없는 소대장의 모습에, 김민준은 발걸음을 멈췄다.
“저번에 괴물쥐 서식지에 갔을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조금만 잘못했으면 다 전멸이었어.”
“그때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그건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아는데, 그건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부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한 상황들이었다.”
단기간에 연달아 발생했던 일들 때문인지, 그의 어깨는 살짝 처져 있었다.
생활관에서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왜 저렇게 자신감이 없냐?’
김민준은 소대장에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답해 주었다.
“누가 보면 너 군생활 20년은 한 줄 알겠다. 이제 들어가 봐라. 군장 빠진 거 없는지 잘 확인하고.”
김철민은 피식 웃으며, 김민준에게 얼른 나가라며 손을 까닥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충성!”
김민준이 소대장실을 나간 뒤, 김철민은 한동안 문을 바라보았다.
‘저놈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자대에 배치받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기분 탓일까.
김민준에게서 베테랑의 기운이 느껴졌다.
온갖 산전수전을 겪고 살아 돌아온 그런 베테랑.
생각해 보면.
그는 괴물쥐의 서식지에서도 가장 먼저 움직였다.
장교인 자신조차 몸이 굳어 버릴 정도였던 거대한 괴물쥐를 상대로.
‘정신 차리자. 저놈이 저 정도로 하는데. 난 이제 중위라고.’
김민준 덕분에 소위에서 중위까지 진급했다.
계급이 높아진 만큼, 책임감도 커지는 건 당연하다.
김철민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다졌다.
**
시간이 지나고, 헌터 기동 훈련의 날이 다가왔다.
“줄 제대로 맞춰라! 거기! 옆으로 한 칸 더 가!”
“알겠습니다!”
“다들 군장은 제대로 점검하고 나왔나!”
“예!”
헌터들은 완전 군장을 한 채로, 연병장 앞에 집합해 있었다.
4년에 한 번 시행되는 큰 훈련인 만큼, 간부들도 긴장한 눈치였다.
“아… 3박 4일 동안 미친 듯이 굴려지겠네.”
“하루에 4시간만 자도 소원이 없겠다.”
“난 밤에 모기만 없어도 충분할 듯.”
헌터들이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사이, 김철민 중위가 김민준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상병 김민준.”
“여기 앞으로 나와.”
“알겠습니다.”
대열 앞으로 나오니, 그가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대대장님께서, 선서를 네가 하라고 지시하셨다. 보통 병장이나 장교들이 하는데, 너에게 기대가 크신 것 같다. 할 수 있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사단 훈련에서 상병이 선서를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선서라는 말에, 다른 헌터들의 이목이 쏠렸다.
‘상병이 선서를 하네. 뭐지.’
‘이거 기동 훈련 아니냐? 저번에는 대위가 했는데.’
‘쟤 얼마 전에 괴물쥐 서식지에서 이레귤러 혼자서 때려잡았다는데. 그것도 진압봉으로’
‘레알? 그 큰놈을? 쟤는 대대장님한테 찍힌 거야?’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들 주목!”
“주목!”
“앞에 있는 김민준 상병이 선창하면, 뒷부분만 큰 목소리로 따라 한다. 알겠나!”
“예!”
잠시 연습 시간을 가진 뒤, 대대장이 단장 위로 올라왔다.
“부대 차렷!”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장교의 신고가 시작되었다.
“신고합니다! 대위 박서훈 등….”
그 뒤로 김민준의 선서가 이어졌다.
“선! 서!”
“선! 서!”
“나는 직속 상관의 지시와 통제에 복종한다!”
“복종한다!”
“나는 훈련 도중, 정해진 규정과 법규를 위반할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
“감수하겠다!”
한동안 이어진 선서가 끝나고, 김민준은 단상 위로 이동했다.
“충! 성!”
“충성.”
대대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경례한다.
대대장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다시 대열로 돌아갔다.
“오늘부터 3박 4일 동안 헌터 기동 훈련이 실시된다. 훈련이지만,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알겠나!”
“예!”
“다들 이야길 들어서 알겠지만, 저번 헌터 기동 훈련 때는 헌터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번에는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짧은 연설을 마치고, 대대장이 단상에서 내려가는 도중.
“거기 너!”
뭔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을 들어 헌터 한 명을 가리켰다.
김민준이 소속된 중대 쪽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너 지금 졸았냐?’
상병장들은 화들짝 놀라며 졸고 있던 헌터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빠악!
아주 세게.
“아, 아닙니다!”
“흠…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알겠냐!”
“예!”
훈련 시작 전이라 그런지, 대대장은 가볍게 주의를 주고 넘어갔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야.”
“너 미쳤냐?”
상병장들의 시선이 헌터 한 명에게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