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25화 (25/212)

25. 돌쇠

‘나한테 정보 전달해 줘 봐. 빨리.’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는 간부에게서 획득한 정보를 자신의 머릿속으로 흘려보냈다.

스킬 등급이 낮다 보니 단편적인 기억만 전달되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양구 쪽에 던전. 이레귤러 몬스터가 있는 걸로 추정됨. 공략 예정일은 7일 후인가.’

이레귤러 몬스터라면, 마기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던전 공략은 다른 중대가 맡는다라… 뭐, 이 정도로 충분해.’

김민준은 작업을 끝내자마자 휴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보호 장비는 다 챙겼냐?”

“예!”

막사 앞.

소대원들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정렬해 있었다.

오늘 그들이 할 작업은 진지 공사와 보수 공사였다.

“안전에 주의할 수 있도록 해. 특수 자재 잘못 떨어트리면 되게 아프다.”

“알겠습니다!”

“예!”

김철민 중위의 지시에 헌터들이 부대 뒤편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돌쇠가 도대체 몇 개냐.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으려나?”

“하루는 어림도 없고, 한 이틀은 빡세게 해야 될 거 같은데?”

“이 엿 같은 몬스터들은 왜 전방에서만 지랄이야.”

“여기는 그나마 낫지. 참호 쪽은 완전 개박살 났다던데.”

선임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돌쇠를 보고, 질린 듯이 말을 뱉었다.

무적 헌터 부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 진지 공사를 하는 일이 특히 잦았다.

심심하면 게이트가 발생하거나, 던전이 생기거나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때문이었다.

“충성! 중위 김철민입니다!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너희들 작업 계속하고 있어라. 나 없다고 쉬거나 하지 말고. 후임들 안전 관리 잘해.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헌터들의 작업을 감독하던 소대장은 급한 일이 생겨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때까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상병장들은 이때다 싶어 땅을 엉덩이에 붙였다.

“어차피 오늘 안에 못 끝낸다, 이거. 좀 쉬자.”

“이거 빨리 끝내면 100% 참호 쪽으로 보낼걸.”

당연히 휴식은 상병장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후임들은 정신없이 돌쇠를 날랐다.

“민준아, 너도 이제 상병인데 좀 쉬엄쉬엄해라.”

“괜찮습니다.”

후임들이 돌쇠를 한 개씩 옮길 때, 김민준은 세 개에서 네 개를 어깨에 짊어지고 옮겼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작업 효율.

“이야. 돌쇠를 저렇게 들고도 멀쩡하네.”

“3년 차인 우리보다 쌓는 것도 완벽하네. 그냥 타고났는데?”

선임들은 그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저놈이 저렇게 열심히 하니까, 왠지 양심에 찔리는데.”

“나도.”

그러길 잠시.

상병들은 열심히 움직이는 김민준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돌쇠를 나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어? 야! 너 괜찮냐?”

그러던 도중.

한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후임 한 명이 발을 부여잡은 채 쓰러져 있었다.

다른 선임들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 이놈 발 찧었네. 보호구 착용해도 되게 아픈데.”

“의무대 데려가야겠는데?”

“얌마.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우리가 빨리하라고 재촉했냐?”

“끄으으윽…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의무대까지 데려다주겠습니다.”

“민준아. 그냥 후임들한테 시키지 그러냐.”

“아닙니다. 제가 빨리 데려다주고 오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소대장님 오면 우리가 말해 놓을게.”

김민준은 후임을 부축해,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김민준 상병님. 죄송합니다.”

“뭐가. 나도 네 덕분에 꿀 빨고 좋은데? 근데 이렇게 내려가다가는 한세월이겠다. 가만히 있어 봐.”

김민준은 후임을 들쳐 멨다.

“김민준 상병님! 저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그 행동에 후임이 기겁하며, 내려 달라고 말했다.

“안 무거우니까 조용해라. 아님 의무대까지 던져 버린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쭉 쉬어라. 눈치 볼 필요 없다.”

“예… 감사합니다.”

김민준은 후임을 의무대에 데려다준 뒤, 작업을 위해 다시 산으로 향했다.

‘응? 뭐지?’

산에 도착하자, 어느새 돌아온 소대장이 상병장들에게 기합을 주고 있었다.

“내가 후임들 신경 쓰라고 했나, 안 했나!”

“했습니다!”

“잘못하면 크게 다친다고! 그만큼 돌쇠는 위험하다! 너희들은 잘 알면서 왜 그러나!”

“죄송합니다!”

일·이병들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돌쇠를 나르는 중이었다.

‘음. 나도 가서 대가리 박아야겠네. 상병이니까.’

그렇게 하려던 찰나.

“김민준.”

“상병 김민준.”

“넌 열외다. 저쪽에 가서 서 있어.”

“알겠습니다.”

김철민이 나무 근처에 가 있으라며 눈짓했다.

“대가리 박아!”

척.

“일어서!”

척.

“대가리 박아!”

척.

김철민 중위는 진지 공사장에서, 상병장들을 미친 듯이 굴렸다.

“허억… 헉….”

“뒤로 취침.”

“뒤로 취침!”

“왼쪽으로 굴러! 빨리 안 굴러?”

“죄송합니다!”

기합을 준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늬들이 일을 쉬엄쉬엄하니까, 후임들이 몇 배로 힘들게 움직일 수밖에 없잖아! 그 때문에 후임이 다친 거고.”

“죄송합니다!”

“내 말이 틀렸나?”

“아닙니다!”

“그럼 더 빨리 굴러! 크게 안 다쳤다고 하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는 줄 알아라!”

“예!”

후임이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였다.

100㎏짜리 돌쇠가 다른 부위에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필시 중상을 입었을 터.

‘저거는 저놈들 잘못이니까.’

난 재밌게 구경이나 해야겠네.

**

진지 공사는 김민준의 활약으로 3일 만에 끝났다.

보통이었으면 5일은 걸렸겠지만, 체력이 넘치는 그에게 있어서 이런 일은 별거 아니었다.

‘내가 빨리빨리 끝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나이트 워커가 간부로부터 뽑아낸 던전 정보.

김민준은 그곳에 가기 위해, 미리 휴가를 신청한 상태였다.

“충성!”

“어, 민준아. 오늘 휴가지?”

“상병 김민준. 예, 그렇습니다.”

“훈련소 때 받았던 포상 휴가네. 진작 쓰지 그랬냐?”

당직 사관실로 가니, 김철민 중위가 실실 웃으며 반겨주었다.

“내가 진지 공사할 때 지켜봤는데, 너 너무 열심히 하더라. 무리하는 건 아니냐?”

“예. 멀쩡합니다.”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라. 휴가 잘 다녀오고.”

“예!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휴가 보고를 마친 뒤.

당직 사관실을 나가려 하자, 김철민이 자신을 멈춰 세웠다.

“아! 잠깐만, 민준아.”

“상병 김민준.”

“너 지금 주소지 통제 구역으로 되어있는데? 휴가 나가면 바로 집으로 가는 거 맞냐?”

“집은 아니고 부대 밖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합니다.”

“흠… 그래?”

김철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부모 문제는 내가 개입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기도 뭐하고….’

다른 헌터 같으면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 헌터가 김민준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거 아직도 있나 모르겠네.”

김철민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서랍을 뒤적거렸다.

“여기 있네. 부대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한데, 괜찮으면 여기서 자라.”

그리고 열쇠를 꺼내, 김민준에게 건네주었다.

“아버지가 예전에 머무시던 아파트였는데, 지금은 그냥 빈방이다. 워낙 노후화된 곳이라 잘 팔리지도 않아서 방치 상태다. 그래도 관리는 하고 있으니 안은 깔끔하고.”

“전 괜찮습니다.”

“괜찮긴 뭘 괜찮냐. 잠은 PC방이나 찜질방에서 자려고? 여기 근방 모텔 엄청 바가지인 건 아냐?”

사실 잠이야 1시간 정도만 자도 충분했기에, 피시방에서 적당히 잘 생각이었다.

“거봐라. 잔말 말고 받기나 해라. 확 휴가 취소해 버리기 전에.”

“그럼 받겠습니다.”

정말 열쇠를 받기 전까지는 휴가를 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받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깔끔하게 쓰겠습니다.”

“너무 어지럽히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그래. 휴가 잘 보내고.”

김민준은 휴가 보고를 마치고 부대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이트 워커를 그림자 안으로 불러들였다.

스스스스-

“네가 모은 정보 다시 보여 줘 봐.”

스스스-

“뭐? 마기 언제 주냐고? 저번에 줬잖아.”

나이트 워커는 그걸로는 너무 적다며 작게 항의했다.

“이놈이 주인한테 기어올라? 맞고 보여 줄래, 그냥 보여 줄래?”

스스….

소환수에게 이렇게 갑질할 수 있는 것도 흑마법사 중에서는 김민준이 유일했다.

그는 흑마법계에선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에, 소환수들은 까라면 까야 했다.

“좋아. 좀 더 선명하게 보여 줘 봐.”

스슥-

“그래. 그 부분. 거기서 멈춰.”

김민준은 대략적인 던전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이동했다.

**

“아. 이럴 때마다 포탈 마렵다니까.”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길 몇 차례.

김민준은 나이트 워커가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던전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야. 이놈아. 넌 왜 그렇게 약한 거야? 예전엔 그냥 스슥 하면 끝이었는데.”

스스스-

나이트 워커가 주인의 마기 스텟이 낮아서 그런 것이라고 대답했다.

“어쭈? 이게 말대꾸해? 네가 그래서 잘했어?”

스슥….

나이트 워커는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오. 나이스. 지금 찾았으니까 봐준다.”

험한 산길을 오르길 잠시.

그의 눈앞으로 던전 입구가 보였다.

‘응? 뭐야. 겨우 저런 놈이 마기를 저렇게 품고 있어?’

안에 있는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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