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메시지
김민준은 이동진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저런 게 있었나.’
확실히 평범한 상병에게선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
한두 마리도 아니고, 총합 120마리의 몬스터.
하지만 나는 가능하지.
“쉿.”
김민준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알겠습니다. 전 심부름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이동진은 복잡한 얼굴로 단련실을 벗어났다.
“아직 전투 체육 시간 남았으니까, 한 번만 더하고 나가자. 이거 재밌네.”
김민준은 마지막으로 고블린 30마리 정도만 상대하기로 하고, 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띠링-
[기본 둔기술이 생성되었습니다.]
“어. 뭐야.”
시원하게 마지막 고블린의 뚝빼기를 날리는 순간,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스킬이 생성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난 흑마법사라서 이쪽 스킬은 하나도 기대 안 했는데?”
이게 생기기도 하는구나.
스킬 같은 경우는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도 획득할 수 없는 게 보통이었다.
헌터들이 악을 쓰고 훈련에 임해 봐야, 스텟이 오르는 정도였을 뿐.
“귀환의 영향인가? 나한테만 스킬이 생기네.”
장교 출신이나 사관학교 생도들 역시, 일반 병사에 비해 스텟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
그들 역시, 스킬은 없었다.
즉, 스킬은 김민준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스킬 설명 한번 볼까!”
[기본 둔기술(E): 둔기류에 대한 무기 숙련도가 미미하게 증가함.]
“나쁘지 않네.”
특정 무기를 열심히 휘둘렀더니 스킬이 생성되었다.
그 말인즉슨, 다른 무기들도 열심히 휘두르다 보면 스킬이 생성될 수 있다는 말!
“아. 그러고 보니 이스가르드에서는 무기를 조금밖에 안 휘둘렀지.”
거기서 휘두른 건 마기뿐이었으니, 그럴 만했네.
“좋아. 시간 날 때마다 무기 하나씩 가지고 놀아야겠네.”
김민준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단련실을 나왔다.
**
다음 날.
생활관에서 일과 준비를 하던 도중, 김광식 상병이 종이를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야! 소대장님이 너 갖다 주란다!”
“그게 뭡니까?”
“우수헌터 표창장.”
“오! 뭐냐? 우리도 구경 좀 하자!”
표창장이라는 말에, 다른 선임들이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확실히 받을 만하긴 하네. 상병을 일단 저렇게 빨리 달았는데.”
“얌마. 유류고에서 미들벳 30마리를 혼자서 싹쓸이한 것만으로도 확정이지.”
[표창장]
-해당 병사는 우수한 군생활로 군부대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 표창을 수여함.
“근데 왜 이렇게 성의가 없냐? 이놈의 부대는. 꼴랑 두 줄이 뭐야.”
김광식은 표창장 내용을 확인하고, 너무 대충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출했다.
“최단 기간에 상병까지 달았는데, 좀 그렇네. 내가 대대장이었으면 직접 표창해 주고 휴가도 보내 줄 텐데.”
본래라면 표창식을 했겠지만, 이전의 몬스터 출현으로 인해 사단장이 예민한 상태라 넘어간 것이라고 한다.
선임들은 서로 표창장을 돌려 보다가, 김민준에게 건네주었다.
“어쨌든 축하한다! 이대로 가다가 병장까지 LTE로 달겠는데?”
“상병! 김민준! 감사합니다!”
우수 헌터라.
포상 휴가도 덤으로 주는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학교에서 주는 상장 같은 느낌이었다.
“표창 몇 개 받고 실적 점수 쌓이다 보면, 특진까지 되겠다. 열심히 해 봐.”
“예! 감사합니다!”
선임의 설명에, 김민준이 눈을 빛냈다.
‘오. 표창장 받는 것도 실적 점수가 쌓여? 그건 몰랐는데.’
그럼 많이 받는 게 이득이겠네.
‘표창 얼마나 더 받으면 진급되려나.’
이제 1장이니까, 9장 정도 더 모으면 되나?
‘치킨 쿠폰 모은다는 느낌으로 모아야지.’
김민준은 앞으로도 실적 점수와 표창을 열심히 싹쓸이해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소대장이 알린다. 잠시 후, 개인 면담을 실시할 예정이니, 2 소대원들은 생활관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한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도중.
김철민 소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뭐야. 벌써 면담할 때 다 됐냐?”
“4개월 살짝 지났네.”
“아. 오전부터 개꿀이네.”
“그러고 보니까, 민준아. 넌 개인 면담 안 했지?”
“예, 그렇습니다.”
“하긴, 요즘 훈련이다 비상이다 하며 정신없긴 했지.”
소대장은 일정 주기마다 소대원들을 대상으로 개인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
그들의 정신 상태나 건강 등, 문제가 될 여지가 있으면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소한 것이 커지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
‘헌터군은 4개월 주기로 하는 건가.’
일반군에 비해서 주기가 짧은 편이긴 했다.
‘그만큼 신경 써 줘야 할 게 많다는 거지, 뭐겠냐.’
헌터군은 일반군에 비하면, 확실히 위험했으니까.
거기다 104사단은 최전방에 위치해 있다 보니, 타 부대보다 더욱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
그만큼 병사들이 스트레스를 빨리, 그리고 많이 받게 될 터.
“이승호 병장님. 단련실 좀 이용하고 와도 됩니까?”
김민준은 이승호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선임들의 말을 들어 보면, 앞으로 2시간 정도는 자유 시간이라고 한다.
그 시간을 가만히 보내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그래, 다녀와라. 원래는 안 되는데, 소대장님이 뭐라 하시면 내가 잘 커버 쳐 준다.”
보통 단련실은 일과시간이 끝나고 나서 이용할 수 있다.
헌터들이 생활관에 대기하고 있더라도, 현재는 일과시간.
하지만 김민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병부터 뛰어난 활약을 해 일병으로 빠르게 진급했고, 승급 시험까지 만점을 받아 상병을 달았으니까.
소대장이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역시. 이래서 계급이 짱이지.’
이병이었다면 절대 입 밖으로 못 꺼냈을 말이다.
“예! 그럼 조금만 단련하고 오겠습니다!”
김민준은 곧바로 단련실로 향했다.
“와. 이제 상병 달았다고 본격적으로 단련실 쓰는 건가?”
“성실하네.”
“저렇게 재능충인데 노력까지 한다고?”
“야야. 갑자기 재밌는 게 떠올랐는데, 이거 어떠냐?”
분대원들이 잡담을 나누는 도중.
김광식 상병은 김민준이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빈 종이를 가지고 왔다.
“난 저놈이 한 달 안에 병장을 다는 것에 내 한 달 치 월급을 건다. 너희들은 뭐 걸래.”
“미친놈. 차라리 스포츠 또또를 해라.”
“저놈 또 지랄 났네.”
“네놈 손모가지나 걸어 미친놈아.”
동기들은 그를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 포기할 거야? 어? 이기면 한 달 치 월급을 가질 수 있는데?”
김광식은 능숙하게 동기들을 도발하며, 참여를 유도했다.
“쫄? 쫄리면… 알지?”
“이 또라이가. 너 월급 털릴 준비해라.”
“참교육 간다.”
그 한마디에 김광식의 동기들 세 명이 내기에 참가했다.
남자들 아니랄까 봐, 쓸데없는 것에 승부욕이 타오르는 모습이었다.
“난 두 달 치 건다. 김광식. 너도 두 달 치 걸어라.”
“오. 그렇게 나온다고? 좋아. 콜!”
“난 6개월 걸린다에 내 월급 두 달 치 건다.”
“아무리 그래도 병장은 어렵겠지. 난 1년 건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라, 병장들까지 내기에 합세했다.
“난 두 달 만에 단다에 내 월급 3개월 치 건다.”
“와. 이승호 병장님. 승부사이십니다.”
“야. 상병에서 병장 가는 게 장난이냐? 아무리 민준이라고 해도 두 달은 안 된다.”
“내가 훈련소 때부터 저놈을 봤지. 내 눈은 정확하다.”
그들은 손수 지장까지 찍으며, 베팅을 완료했다.
“먹튀는 안 됩니다. 지장 진하게 찍어 주십쇼.”
김광식은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감이 왔다. 이건 내가 이겼다.’
물론 그 사실을 김민준이 알 리 없었다.
**
헬스장을 연상케 하는 일반 단련실 안.
김민준은 단련 기구들을 눈으로 슥 훑었다.
“웬만한 건 다 있네. 오랜만에 중량 좀 쳐 볼까.”
김민준은 레드 스톤을 가공한 덤벨을 들어 올렸다.
“이스가르드에서는 스킬 덕분에 힘 스텟도 쭉쭉 올랐는데. 확실히 여기서는 노력이 필요하겠네.”
이계 용사의 힘.
이 세계에서 레벨을 올리다 보니, 어느새 스킬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스킬.
힘 스텟을 1.5배로 뻥튀기시켜 주는 엄청난 효과를 자랑했었다.
“저쪽 세계 한정인 것 말고는 단점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스킬 안 생기나?”
지구 용사 같은 거라든가.
아니면 던파 용사 같은 거라든가.
“지구 용사는 유치하긴 하네.”
김민준은 간단하게 워밍업을 끝낸 뒤, 700㎏짜리 특수 바벨로 교체했다.
“좋아. 슬슬 본격적으로 해 볼까.”
[힘 스텟이 40이상인 병사들만 사용할 것. 이병이나 일병은 사전에 보고 후 사용할 것.]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자신의 힘 스텟은 60.
당연히 바벨을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일단 100개부터.”
김민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단련에 몰입했다.
힘 스텟을 올리기 위한 방법은 보통 세 가지가 있다.
단련이나 훈련을 통해 올리든가, 던전에서 경험을 쌓아 올리면 된다.
물론 단련이나 훈련을 통해 힘 스텟을 올리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다.
아무리 힘들게 단련한다고 해도, 힘 스텟이 무조건 오르지는 않았으니까.
반면 던전 같은 경우에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떤 스텟이든 조금씩은 올라갔다.
이 세계의 레벨 업 개념과 비슷한 느낌이다.
“역시 힘 스텟 60쯤 되면 쉽게는 안 오르겠지.”
김민준은 2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단련을 반복했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네. 이제 슬슬 빡센데. 조금만 더 하고 나가야겠다.”
이제 곧 개인 면담 시간이니, 마무리만 하고 나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 순간.
“어?”
김민준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