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바나나킥
“축구 말입니까? 보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너 그럼 이따가 전투 축구 같이하자.”
“오, 민준이? 좋네. 점심 먹고 연병장 앞으로 나와.”
“예! 알겠습니다!”
전투 축구는 상병 정도는 되어야 참가가 가능했다.
헌터들이 하는 축구는 말이 축구지, 미식축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험했으니까.
‘그리고 이제 난 상병이지.’
크.
오랜만에 축구라.
발이 절로 근질거린다.
‘이 세계에서 단련한 내 실력이 여기서도 통하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헌터들은 활동복으로 환복한 뒤, 각자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실내 단련실을 찾는 헌터가 있나 하면, 농구나 족구를 즐기는 헌터들도 있었다.
‘지금이다!’
‘달려!’
몇몇 병장들은 눈치를 보고 슬금슬금 생활관으로 기어들어 갔다.
“민준아. 넌 수비 맡아라. 못 한다고 뭐라 안 하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상병 김민준.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민준은 옆 소대와 인원을 맞춰, 선임들과 전투 축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공 차게 되니까 발이 근질거리네.’
자신이 있었던 이스가르드에서는 즐길 거리가 거의 없었다.
게임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고, TV도 없고.
그나마 취미 생활이 있었다면,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 정도.
이것도 혼자서 즐기는 건 불가능했기에, 자신을 쫓아다니는 신도들을 모아서 하곤 했었다.
‘아. 시작하기도 전에 설렌다. 이놈들은 얼마나 잘하려나.’
김민준이 지정받은 수비 위치로 가자, 경기가 시작되었다.
헌터들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공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수비를 뚫기에 정신없었다.
‘음. 김흥민 데려오면 어깨 빵에 날아가겠지.’
헌터들끼리의 축구라 그런 거지, 일반인들을 데려오면 10분도 버티지 못한다.
그만큼 헌터들의 전투 축구는 거칠었다.
“아오! 뚫렸다!”
“민준아! 긴장하지 말고 막아라!”
“예! 알겠습니다!”
상대편 수비가 공을 빼앗아, 공격수에게 길게 패스해 준다.
공격수는 재빠르게 김민준이 있는 방향으로 공을 몰았다.
파앗!
“어?”
김민준은 상대가 드리블하던 공을 순식간에 빼앗았다.
상대방 공격수는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3명의 수비를 제쳤지만, 그의 앞에서는 애들 장난이었다.
투웅!
김민준은 공을 뺏자마자, 분대원을 향해 패스해 주었다.
간결하고 정확한 동작.
“나이스! 깔끔하다 민준아!”
“그렇게만 해라!”
김민준의 월등한 수비 실력으로 인해, 2소대의 볼 점유율은 압도적이었다.
“아… 쓰벌.”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되냐.”
상대 소대원들은 점수 차가 벌어지자 얼굴을 찌푸렸다.
항상 2소대를 상대로 전투 축구를 이겨 왔는데, 벌써 2:0으로 지고 있다니.
“이야. 너 축구 잘하네. 별로 못 한다고 안 했냐?”
“중간부터 너 공격 한번 해 봐. 내가 바꿔 줄게.”
선임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알겠습니다!”
공격수라, 그거 좋지.
“야! 김민준만 마크해!”
“세 명씩 달라붙어! 다른 곳 그냥 버리고!”
“어우, 미친!”
김민준이 공격으로 나선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스코어는 5:0으로 벌어졌다.
그가 공만 잡았다 하면, 압도적인 볼 컨트롤로 헌터들을 제치며 골을 넣었다.
상대편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미쳤네. 축구를 뭐 저리 잘하냐.”
“밥 먹고 축구만 해도 저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수비를 담당하는 선임들은 나설 일이 없어지자, 자리에 앉아 김민준을 구경했다.
‘좋아. 감 좀 돌아왔으니, 이제 슬슬 타이밍이다.’
김민준이 패스를 받기 무섭게, 상대 진영에서 5명의 헌터가 달려들었다.
자신이 공만 잡았다 하면 골을 넣어 버렸기에, 극단적인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너희들 비켜라. 안 비키면 많이 아플 거다.’
김민준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중거리 슛을 날렸다.
파앙!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축구공이 무서운 기세로 날아간다.
“어우 미친!”
“억!”
상대 수비수들이 어떻게 해 보려 했지만, 공이 갑작스럽게 무서운 기세로 휘어져 서로 피하기 바빴다.
‘아. 이 감각. 돌아왔다.’
이게 바로 이스가르드식 바나나 킥이다.
쐐애애액!
축구공은 무서운 기세로 방향을 꺾어, 골문 구석으로 들어갔다.
‘나이스 슛.’
이것으로 7:0.
“와. 미친 봤냐?”
“저거 바나나 킥이잖아. 돌았네.”
“뭔 공이 저렇게 휘어지냐.”
상대편 헌터들은 김민준의 바나나 킥을 보고, 의욕을 상실한 듯했다.
‘아. 조금씩 봐주면서 할 걸 그랬나. 상대편 쪽이 너무 재미없어질 텐데.’
정말 오랜만의 축구라, 배려가 부족했다.
“와. 쟤 중앙선 밖에서 슛 때린 거 아니냐? 공이 저렇게 휘어질 수가 있나?”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임들은 놀라운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인재 하나 발견했네. 안 그래도 우리 소대 축구 약했었는데.”
“야. 앞으로 전투 축구 할 때 김민준 꼭 넣자. 쟤만 있으면 웬만한 소대는 다 이길 것 같다.”
축구 또한, 군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스펙.
김민준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
“아. 전투 축구 너무 빨리 끝났네. 살살 할걸.”
전투 축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현재 김민준은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상태.
‘아직 2시간의 전투 체육 시간이 남아 있는데….’
뭘 하지.
“김민준.”
그가 고민하던 도중, 근처에 있던 이승호 병장이 자신을 향해 손짓했다.
“상병 김민준.”
“어. 별건 아니고, 너 단련실 사용하고 있냐?”
“단련실은 주말에 가끔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단련실 근처에 가 본 적도 없긴 했지만, 예의상 이용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너 이제 상병이다.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써라.”
아.
그러고 보니, 나 상병이었지.
“다음 승급 시험 때도 합격해라,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그거야 쉽지.
다음 승급 시험 때는 병장이 아니고, 하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김민준은 대답을 마치자마자, 바로 단련실로 향했다.
사실 단련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정확히 단련실 2에 있는 시뮬레이션 기계였다.
‘오오.’
이게 바로 몬스터 훈련용 시뮬레이션실인가.
마치 VR룸에 입장한 듯한 기분이었다.
“보자. 이걸 이렇게 하는 거였나.”
김민준은 게임방에 온 것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스템을 설정했다.
[몬스터를 선택해주십시오.]
[오크를 선택하셨습니다.]
[최대 개체 수를 초과하였습니다. 지정할 수 있는 최대 개체 수는 30마리입니다.]
“에이. 오랜만에 무쌍 좀 찍어 보려 했더니.”
개체 수를 999마리로 설정하자, 오류 창이 나타났다.
김민준은 아쉬움을 느끼면서 시뮬레이션을 설정했다.
[무기를 설정해 주십시오.]
“무기라. 무기도 구현해 주나? 죽이네.”
이래서 단련실 2부터 5까지는 상병부터 사용할 수 있게 한 거였나.
가상으로 몬스터를 지정해 훈련할 수 있다니, 그럴 만도 하겠네.
우우웅.
[전투를 시작합니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하나둘씩 나타났다.
“오. 잘 만들었네. 이게 가상현실인가 그건가.”
몸에 느껴지는 감각.
살짝 둔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잘 구현해 놨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가상 무기의 그립감도 괜찮고.
“간다!”
김민준은 30마리의 오크가 몰려 있는 지점에 뛰어들었다.
빠악! 뻐억!
하운드나 오크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방에 한 놈씩 평등하게 주님 곁으로 보내 드렸다.
오크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휘둘러 댔지만, 김민준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가뿐하게 피해 냈다.
“이거지. 이게 몬스터 사냥이지!”
던전은 아직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설령 들어간다고 해도, 오크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게 언제가 될지 몰랐다.
“다 덤비라고!”
김민준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어린아이처럼 오크들을 학살해 나갔다.
[경고. 지정된 구역을 이탈하셨습니다.]
[경고. 다수의 몬스터 상대로 위험한 행동입니다.]
이러라고 만든 전투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아닌데 말이다.
“음. 30마리로 하니까 뭔가 아쉽단 말이지.”
김민준은 경고음을 무시한 채로, 몬스터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그럼 이건 어때.”
툭툭.
[하운드: 30마리]
[괴물쥐: 30마리]
[고블린: 30마리]
[오크: 30마리]
“오. 이렇게 하면 되네. 역시 난 천재라니까.”
최대 소환할 수 있는 개체 수는 30마리였지만, 몬스터 종류에는 딱히 제약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정신 나간 헌터가 한 번에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상대하려 하겠는가.
아무리 전투 시뮬레이션이라도 맞으면 상당한 통증을 느끼게끔 설정되어 있었다.
“아. 이 필드에 흘러넘치는 몬스터들. 정말… 가슴이 벅차오른다.”
김민준은 눈에 보이는 훈련용 몬스터들을 모조리 때려 박아, 필드를 몬스터들로 가득 채웠다.
“이 귀여운 놈들. 어서 드루와!”
그의 손짓에 수 종류의 몬스터가 이리저리 얽히며, 사납게 돌진해 온다.
저 정도 규모의 몬스터라면 소대로는 어림도 없고, 중대원들 전원이 완전 군장 상태로 상대해야 하는 수준.
퍼억! 빠악!
김민준은 날렵하게 몸을 날려 몬스터들을 상대해 나갔다.
그동안 힘을 조절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 미쳤네. 던파 다음으로 재밌는데 이거?”
김민준은 전투를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시뮬레이션을 종료했다.
“몬스터 뚝빼기 마려울 때마다 한 번씩 와야지.”
그가 단련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이동진 일병과 마주쳤다.
“…김민준 상병님?”
이동진은 뭔가를 확인하고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왜.”
김민준이 하나 간과한 게 있었으니,
[제 2전투 시뮬레이션 결과]
[하운드: 30마리]
[괴물쥐: 30마리]
[고블린: 30마리]
[오크: 30마리]
전투 결과가 모니터로 표시된다는 점이었다.
“…김민준 상병님? 이거 전부 김민준 상병님이 하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