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무한으로 즐겨요
겸사겸사 상병으로 진급한 걸 축하한다고 말이라도 전하려 했는데, 저런 행동을 할 줄은.
‘김민준… 2대대 2중대 김민준이지. 고블린을 발 차기로 처치하는 것부터 정상이 아니라고는 생각했는데.’
손은서는 김민준이 소속된 대대와 이름을 기억했다.
“야야. 아까부터 뭐냐, 민준아. 손은서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같다?”
“상병, 김민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스텟 시험부터 널 뚫어져라 쳐다보던데.”
부대로 돌아가는 길.
선임들은 김민준의 주위로 몰려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어느새 후임이 된 일병들 역시 그 말에 흥미는 생겼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못했다.
이제 김민준은 자신들의 선임이 되었으니까.
“쟤 엄청 유명하더라. 저 얼굴이랑 몸매로 모델이나 배우 했으면 돈을 그냥 쓸어 담았을걸.”
“내 말이! 배우 해서 드라마 같은 데 출연 좀 해 주지! 그럼 화면 너머로라도 볼 수 있을 텐데!”
본래 이쯤 되면 소대장이 나서서 조용히 하라고 했겠지만, 그는 기분이 좋은 상태.
딱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아. 귀찮아.’
김민준은 어떻게 이 지루한 대화를 끝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야. 너 걔한테 별 관심 없는 거 같다?”
“사실 별생각이 없습니다.”
“미친. 손은서가 별로라고?”
“민준아. 그럼 네 이상형은 도대체 누구냐?”
선임들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김민준이 입을 열었다.
“일단 외모는 제쳐 두고, 저랑 게임 취미가 맞으면 좋습니다.”
“그래? 너 뭔 게임 하는데? 롤?”
“던파 합니다.”
“…….”
“어….”
그 말에, 시끄럽던 버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던파? 민준아, 너 혹시 던파 하냐?”
“예, 그렇습니다.”
“오우….”
선임들은 김민준의 대답을 듣고 당황했지만, 금방 웃어넘겼다.
“그냥 말하기 싫다고 하지 그랬냐. 방금 좀 웃기긴 했다.”
“벌써 상병 달았다고 장난도 칠 줄 아네.”
저런 우수한 헌터가 던파를 하는 건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에.
‘뭐야. 진짠데 안 믿네.’
어찌 되었든 달라붙던 선임들이 떨어졌으니, 이걸로 됐다.
**
다음 날, 일요일.
김민준과 같은 생활관의 분대원들은 점심 식사를 대충 때우고, PX로 향했다.
냉동식품이 아닌, 브랜드 치킨과 피자, 찜닭, 족발, 수육 등등.
커다란 테이블이 먹음직스러운 배달 음식으로 가득 찼다.
당연히 부대 안에는 배달이 안 된다.
승급 시험에 합격한 김민준을 보고, 소대장이 먹으라며 직접 포장해 온 것들이었다.
“민준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이야, 벌써 작대기 세 개야? 미쳤네, 진짜. 이러다 병장까지 금방 가겠는데?”
“난 소대장님이 저렇게 기분 좋은 날은 처음 본다. 거기다 이거 봐라. 전부 비싼 메뉴만 골라서 포장해오셨어.”
당연히 눈치 빠른 김민준은 같은 생활관에 있는 선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김민준을 위하여! 건배!”
“건배에에에!”
“크으! 이게 얼마 만의 술이냐!”
당연히 부대 안에서 술 마시는 건 금지다.
PX에도 맥주 같은 것들을 팔기는 하지만, 전부 논 알콜.
그냥 기분만 내는 용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이기도 하고, 중대장이 김민준의 분대에게만 특별히 음주를 허가한다고 알렸다.
“승급 시험을 통과한 게 크긴 큰가 본데? 일병 때 통과해도 술은 못 마시게 했는데.”
“야. 통과도 그냥 통과가 아니다. 쟤 만점이란다, 만점.”
“뭐?”
“레알?”
“그 어려운 걸 만점까지 받았다고? 진짜냐, 민준아?”
그 말에 분대원들이 시선이 김민준에게로 몰렸다.
“아,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런 미친. 열심히 해서 다 되면 난 진작 사관학교로 갔지.”
“사격할 때부터 느꼈던 건데, 넌 진짜로 장교로 가야 할 놈인 것 같다.”
“얌마. 장교는 무슨. 저 정도면 사관학교 각이지.”
만점이라는 말에, 선임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김민준을 바라보았다.
‘만점이 그렇게 어려웠나?’
나에겐 너무나도 쉬웠는데.
툭!
대화가 이어지던 사이.
이승호 병장이 양손에 시원한 맥주를 안고 들어왔다.
“승급 시험에 통과했다고 너무 풀어지진 마라.”
그는 테이블에 맥주를 하나씩 돌린 뒤, 캔을 따며 벌컥 들이켰다.
“크으. 어쨌든 잘했다. 이대로만 해라, 김민준. 네 덕분에 분대 점수가 빵빵하다.”
“상병! 김민준! 예! 감사합니다!”
“이승호 병장님. 아까 밖에서 기분 좋은 듯이 웃으시던 거 봤습니다.”
“닥쳐.”
“예….”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도중, 선임들이 담배 좀 피우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좋아. 이제 상병 달았으니, 선임 노릇 좀 해 볼까!’
김민준은 이제 후임이 된 일병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얘들아. 저번에 너희들이 나한테 PX 사 준다고 한 거 기억나냐? 너랑, 너랑 너.”
“예!”
“그, 그렇습니다!”
“얼마나 사 줄래.”
웃으며 말하는 그의 말에, 일병들은 잔뜩 긴장하며 머리를 굴렸다.
‘쟤를 안 건드린 게 신의 한 수였다.’
‘벌써 우리 선임이라고? 미친.’
‘PX 사 준다는 말 괜히 했다.’
일병들은 각자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원하는 만큼 사용해도 좋다고 대답했다.
“무한으로 즐겨요! 헌터 사랑 카드! 우리 모두 다 함께! 헌터 사랑 카드!”
사양이라는 걸 모르는 김민준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서운 기세로 카드를 긁어 나갔다.
“자. 너희들이 사는 거니까, 마음껏 먹어라. 이런 날에 소맥은 사치치. 비싸 보이는 양주는 싹 쓸어 왔다.”
“감… 사합니다.”
김민준은 후임들 몫까지 생각해 충분한 양의 양주를 구매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배려심이 깊은 선임이었다.
“이야. 이 양주는 다 뭐냐?”
“제가 상병 단 기념으로 계산했습니다.”
물론 쟤네들 카드로요.
“이야. 상병 달았다고 쏘는 거냐? 좋다! 달리자!”
잠시 후, 선임들이 돌아오고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맥주 저리 치워! 지금부터는 양주로 달린다!”
“술도 제일 못 마시는 놈이 무슨.”
“뭐, 인마? 함 떠 봐?”
“나한테 술로 덤빈다고?”
김민준은 선임들과 술 파티를 이어 나갔다.
“어우, 야. 알딸딸하다.”
“내일 근무 있는데, 우욱!”
술 파티는 저녁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선임들은 정말 오랜만의 술이라 신이 났는지, 조절을 못 하고 다들 거나하게 취했다.
“김민준 상병님… 축하드립니다. 벌써 상병을 다시고.”
“고맙다.”
이동진 역시,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지 상당히 취했다.
“넌 그냥 들어가고, 다른 일병들은 여기 깔끔하게 정리해라.”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후임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밖으로 빠져나왔다.
“계획대로 잘되고 있네.”
작대기 하나가,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났다.
계급장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세계, 이스가르드에 있을 때의 과거가 떠올랐다.
과거.
흑마법사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선행을 베풀었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건 공포와 멸시뿐이었다.
“여기는 안 그러니까.”
자신이 잘할수록, 주위에서 인정해 준다.
김민준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던파가 있는 것이 가장 컸으니까.
**
2대대 대대장실.
“이야. 이 자식은 타고났네, 타고났어. 그냥 군인 체질이야.”
대대장은 승급 시험 결과표를 보고,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이번에 50명이나 응시했는데, 합격자가 단 1명인 걸 보고… 훈련 강도를 높여야 하나 고민했었거든.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예! 그렇습니다!”
중대장은 살짝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겉으로는 대대장이 기분 좋아 보였지만, 승급 시험 합격자가 단 1명이었으니까.
지난 시험 합격자가 4명인 것에 비해 부진한 결과인 것은 사실이었다.
“배치받은 지 한 달도 안 된 이병이 일병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바로 진급 시험에 합격했어. 최승범이가 속는 셈 치고 한 번 넣어 달라고 해서 넣어 줬더니, 기대 이상이야. 거기다 만점이라며?”
“예! 김민준 상병은 스텟 부문 만점, 뒤에 있는 주 무기 시험과 몬스터 전투 능력 또한 만점입니다!”
“김민준이가… 보자. 유류고에서 미들벳을 단독으로 처치한 놈이었지?”
“예! 새벽에 가장 빠르게 대처한 것도 김민준 상병입니다!”
대대장은 허허 웃으며 중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치가 빠른 중대장은 김민준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를 건네주었다.
“크으. 물건 하나 건졌어. 내가 살면서 저렇게 빨리 진급하는 헌터는 처음 본다.”
대대장은 달력을 들여다보며, 일정을 확인했다.
“내일, 오전 일과 마치고 오후부터는 2대대 전 헌터, 전투 체육 실시할 수 있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을 너무 몰아세워도 그렇겠지. 풀 때는 또 풀어 줘야 하지 않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난 오랜만에 테니스나 치러 가야겠구만.”
대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 한편에 놓여 있는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만 나오는 습관이었다.
‘후우.’
중대장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다음 날.
김민준의 분대원들은 두통을 호소하며 일과를 이어 나갔다.
오랜만에 부대 안에서 즐긴 음주다 보니, 다들 자제력을 잃을 때까지 마셨기 때문이었다.
“어우. 머리 부서지겠네. 양주 마시면 깔끔하다고 한 놈 누구냐?”
“미친놈아. 그것도 적당히 마셔야 깔끔하지. 그냥 맥주잔으로 들이켜면 멀쩡할 것 같냐?”
“지옥이다. 오전까지만 버티면 완전히 깰 것 같은데.”
“민준아, 넌 괜찮냐?”
“상병, 김민준. 예! 멀쩡합니다!”
김민준은 흐느적거리는 선임들을 도와 더욱 빠르게 일과를 해치워 나갔다.
“좀 쉬었다 해라. 너도 이제 상병인데, 밑에 후임들 시키거나 해. 어제 피곤할 텐데.”
“아닙니다. 몸을 좀 움직이고 싶습니다.”
김민준은 괜찮다고 말하며, 후임들의 몫까지 일손을 거들어 주었다.
‘난 술에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가 없거든.’
몸에 있는 마기 때문이었다.
유해 성분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자기 멋대로 정화해 버렸으니까.
“이놈들, 그러게 내가 음주는 적당히 즐기라고 했지. PX에 있던 양주 싹 쓸어 간 놈들이 너희였냐?”
소대장은 흐느적거리는 분대원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김민준이가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넘어가는 거야. 다음부터는 자제 좀 해라.”
“예….”
“알겠습니다….”
“자. 이대로 작업하면서 듣도록. 오전 일과는 이대로 마무리하고, 오후부터는 전 헌터, 활동복 복장으로 전투 체육 실시하도록 해.”
오후부터는 전투 체육이란다.
그 말에 헌터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
“알겠습니다!”
“전투 체육 한다니까 쌩쌩해지는 거 봐라. 대대장님께서 지시하신 거니까, 한 명도 빠지지 말고 전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알겠나?”
“예!”
비실거리던 헌터들은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오전 작업이 마무리되고, 점심시간.
선임 한 명이 김민준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야, 민준아. 너 축구 좀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