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상병
다른 헌터들 같았으면 좋아 죽었겠지만, 김민준은 오히려 손은서의 시선이 거슬렸다.
마치 ‘네가 얼마나 잘할지 지켜볼게.’라는 눈빛이다.
‘실력 차이라는 게 뭔지 확실하게 보여 주지.’
김민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40조의 헌터들은 다른 조들과 달리, 의욕에 충만한 상태였다.
‘와, 씨. 쟤가 우리 쳐다본다.’
‘어떻게든 버틴다!’
손은서의 시선을 자기 멋대로들 착각한 상태.
헌터들은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전방을 응시했다.
“준비!”
심사관의 신호와 동시에, 고무탄이 헌터들을 향해 발사된다.
쉬익! 쉬이익! 쉭!
“끄억!”
“욱!”
그래 봤자 별 변화가 있겠는가.
김민준을 제외한 헌터들은 20초도 버티지 못하고, 고무탄에 온몸을 두들겨 맞았다.
“쟤가 김민준인가 걔 맞지? 104사단 소속.”
김민준은 1분 가까이, 단 한 발의 고무탄도 허용하지 않았다.
손은서 역시 완벽하게 통과했지만, 반응의 크기가 달랐다.
“진짜 미친놈이네… 저걸 굳이 저렇게 피한다고?”
그럴 것이, 김민준은 한쪽 다리를 든 채로 고무탄을 회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움직임이 되게 깔끔한데.”
“그러니까. 무협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데?”
김민준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쏟아지는 고무탄을 완벽하게 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고무탄의 궤도를 예측해 몸을 이리저리 날린다.
그건 손은서도 마찬가지였고.
‘마력탄보다 훨씬 느리네.’
하지만 김민준은 중간부터 엉뚱한 방향을 쳐다보며 여유를 부렸다.
‘이것이 바로 노 룩 회피다.’
그 얼굴에 긴장감이라고는 1도 없었다.
마치 놀러 나온 듯한 저 표정.
“…뭐야, 쟤. 안 보고 어떻게 피하는 거야?”
손은서는 김민준의 행동을 보고,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무려 1분 10초나 되는 시간 동안 고무탄을 완벽히 회피했다.
1분 10초에 테스트가 끝난 이유는, 심사관조차 그에게 정신이 팔렸다는 말이리라.
“으, 음… 잘했다. 바로 체력 부문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휴식 시간 사이, 충분히 몸을 풀 수 있도록!”
심사관은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넘기기 위해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다.
김민준은 자리로 돌아가며, 손은서에게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너도 노력하면 나처럼 될 수 있어.’
한 100년 정도?
그 눈빛에 손은서는 잠시 충격받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 선 넘지 말고 간격 충분히 벌려서 정렬해!”
“예!”
“알겠습니다!”
헌터들은 10분의 휴식을 취한 뒤, 빈 던전 앞으로 이동했다.
스텟 부문의 마지막 테스트, 체력 부문의 진행을 위해서였다.
“빈 던전의 전환점에 간부들이 대기하고 있다! 손등에 도장을 받고 돌아와야 한다! 제한시간은 40분이다!”
“예!”
힘 부문과 민첩 부문이 조를 나누어 단계별로 진행되었다면, 체력 부문은 모조리 모아 놓고 한 번에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마치 마라톤 같은 느낌이다.
“출발해!”
심사관의 출발 신호와 함께, 헌터들이 빈 던전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헌터들 대부분은 초반 페이스 조절을 위해, 먼저 앞서나가지 않았다.
전환점까지의 거리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최악의 경우 단거리 마라톤 수준까지 생각해야 했으니까.
“후우… 훅.”
“허억!”
“…후우.”
다들 숨을 규칙적으로 고르며 달리기도 잠시.
파앗!
헌터 한 명이 앞으로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슬쩍 확인해 보니, 손은서였다.
‘에휴, 저 자식은 관종이네, 관종.’
아버지가 사단장이라고 했었나.
그래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한다면야, 이해 못 할 것도 없다만.
슥.
앞서 나가던 손은서는 고개를 홱 돌리고, 김민준을 바라보았다.
‘또 뭔데.’
마치, 네가 이것까지 잘할 수 있겠냐는 눈빛이다.
‘떠보자고? 한판 해 봐?’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했구나.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뭔가 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파아앗!
“……!”
“뭐야 저건. 발에 모터 달렸나.”
“저렇게 뛰면 오래 못 뛰는데.”
김민준은 순식간에 앞서나가던 손은서를 제친 뒤, 고개를 돌렸다.
“별거 없네.”
약 올리는 듯이 입꼬리도 살짝 들어 올려 준다.
“뭐, 뭐라고요?”
“아, 혼잣말인데 저도 모르게.”
“…….”
손은서는 그 모습에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였지만, 민준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자존심을 챙기려고 싸우는 듯한 구도였다.
‘여기서 아까 그 녀석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김민준은 한술 더 떠, 간부에게 미리 도장을 받은 뒤 자리에서 기다렸다.
간부들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긴 했지만, 딱히 제재하지는 않았다.
지쳐서 잠시 숨을 고를 수도 있었으니.
“후욱… 훅.”
저 멀리서 손은서가 보인다.
김민준은 손을 들어 올려, 이거 보라는 듯이 도장을 보여 준 뒤,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이익…!”
손은서 역시 질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붙었지만, 결과는 2등.
1등은 당연히 김민준으로, 29분의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이것도 적당히 놀면서 달린 결과였다.
“김민준. 상당히 훌륭하다. 스텟 부문 전부 만점이다.”
“일병! 김민준! 감사합니다!”
심사관은 기록지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은서는 그 모습을 짜증 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뭐. 그러게 나한테 왜 그랬냐.’
이제 주제를 알았으니, 더 그러진 않겠지.
다른 헌터들은 38분이나 39분대에 아슬아슬하게 돌아왔다.
“자! 이상으로 스텟 부문은 모두 마치겠다! 헌터들은 식사를 마친 뒤, 1시까지 훈련장 앞으로 집합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오전 일정이 끝났다.
헌터들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있을 주 무기 시험에 임했다.
주 무기 시험이야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마치 태권도 심사를 보는 것처럼, 헌터 교본대로만 따라 하면 웬만하면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
‘에이. 교본에 둔기술은 왜 없냐?’
김민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가장 쉬운 무기인 검을 잡고, 교본대로 초식을 펼쳤다.
“아직 몬스터 전투 능력을 겸한 대처 능력 시험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절반이 넘게 불합격했다! 그렇게 해서야 국민을 지킬 수 있겠나!”
“아닙니다!”
“알면서 왜 그따위로 했냐!”
“죄송합니다!”
“앞으로 취침!”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뒤로 취침!”
시험에 불합격한 헌터들은, 시험관이 무서운 기세로 얼차려를 줬다.
사실 절반 이상이 떨어지는 게 당연할 정도로, 시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승급 시험장에는 높은 지위의 간부들이 심사관으로 오며, 이번에는 대대장까지 왔다.
말하자면, 본보기인 셈이었다.
“다들 계급별로 정렬한다! 왼쪽부터 이병 순으로 정렬해!”
“알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항목인 몬스터 전투 능력.
당연히 높은 계급일수록,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의 등급도 높았다.
“크르르르….”
이병은 하운드 4마리를 동시에 상대한다.
일병과 상병은 고블린을 상대로 능력을 평가한다.
“일병은 고블린 3마리, 상병은 6마리다.”
“예!”
훈련 상황과는 달리, 몬스터들에게 재갈이 물려 있거나 하는 안전 장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완전 실전.
“준비되었으면 바로 시작해!”
“예!”
심사관의 신호에 김민준이 둔기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있던 부대와 흡사한, 철사가 감긴 쇠 방망이었다.
‘그리웠다, 이 감촉.’
김민준이 만족감을 느끼는 사이, 고블린들이 속박에서 풀려났다.
“키에엑!”
“인간! 죽인다!”
으르렁거리는 3마리의 고블린.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다.
놈들은 한 번에 달려들지 않고, 산개해 김민준의 주위를 맴돌았다.
‘오. 머리 좀 쓴다 이거냐?’
역시 약삭빠르고 비열하다고 알려진 고블린.
놈들은 자신의 사정거리 밖에서, 철저히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 봤자, 니들이 고블린이지.’
김민준은 놈들에게 보라는 듯이 쇠방망이를 꺼내, 뒤로 던졌다.
“키, 키엑?”
“인간! 인간이 무기를 버렸다!”
이상한 옷을 입은 인간들은, 무기가 없으면 약해진다!
그렇게 생각한 고블린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김민준에게 달려들었다.
“아주 그냥 잘 낚여 주네.”
퍼억!
김민준은 뒤에서 달려드는 고블린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흑마 째트킥!’
고블린은 머리가 터져 나가며, 그대로 즉사했다.
“키에에엑!”
그가 고블린들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40초.
맨주먹임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성적이었다.
“허… 승급 시험에서 무기를 버리고 고블린을 때려잡는 헌터는 처음보네.”
“저 헌터는 힘 스텟 특화 헌터인가? 아직 일병인데, 매우 우수하군.”
그 장면을 지켜보던 간부들은 가만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만점.
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받은 헌터가 나왔다.
그것도 일병이.
다른 시험관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104사단에 저렇게 우수한 헌터가 있었다니!”
간부와 헌터들의 시선이 김민준에게 집중되었다.
‘이게 나다.’
김민준은 손은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려 주었다.
“뭐 저런… 무식한 사람이 다 있어.”
그녀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시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밤 9시가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다들 시험 치느라 수고 많았다. 특히 김민준!”
“일… 상병! 김민준!”
“크하하. 그래, 이 자식아. 넌 우리 부대의 복덩이야 복덩이!”
김민준이 속한 부대에서 나온 합격자는 단 1명이었다.
평소에 비해 적은 합격자 수였지만, 김민준이 합격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었다.
“대대장님께서도 만족한 눈치시더라. 일병이 만점으로 합격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감사합니다!”
“자, 이리 와 봐.”
소대장은 김민준의 어깨에 붙은 일병 계급장을 제거하고, 상병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상병 김민준! 감사합니다!”
“그래, 내가 네 덕에 요즘 웃고 산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예!”
처음 볼 때부터 우수하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승급 시험까지 압도적으로 통과해 버릴 줄이야.
“야, 고맙다. 너까지 불합격했으면 우리 부대에 돌아가서 다 털렸을걸.”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진급 속도 실화냐. 너 나중에 병장 달았다고 우리 괴롭히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그건 니들이 앞으로 하는 거 봐서.
김민준은 선임들의 축하를 받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응? 뭐야.’
하여튼 관종 아니랄까 봐.
어느새 밖으로 나온 손은서가 버스 창가에 앉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단장의 딸이라 이거야? 응?’
일병 주제에 개별 행동한다 이거냐.
아, 쟤도 진급했으니까 이제 상병이긴 하겠네.
김민준은 그녀에게 보라는 듯이 입을 열어 뻐끔거렸다.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알아듣기 쉽도록 손짓까지 섞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 이 미친놈!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
손은서는 어이가 없었다.
처음이야 경쟁심을 느껴 김민준을 의식한 건 맞았지만, 고블린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그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그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스텟이 얼마나 높길래 그게 가능한 거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미친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