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상병으로 간다
“아… 이게 자꾸 속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하는데, 막상 몬스터 앞에 서면 긴장이 되더라고….”
이동진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말고도 자잘한 지적 몇 가지가 들어왔다.
보통 이병이었다면, 기어오르지 말라고 일침을 가할 법한 상황.
“네가 보는 눈이 정확한 것 같다. 다음에 PX라도 쏠게.”
“아닙니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훈련 성적이 우수했던 김민준이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이동진 일병님은 던전 경험이 얼마나 있으십니까?”
“던전이야… 나름 갈 만큼 갔는데, 다른 선임들이 이제는 뒤에 빠져 있으라고만 하더라고.”
그 말에, 이동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저러니 실력이 안 늘 수밖에. 이건 저 녀석 문제보다, 여기 부대의 문제다.’
던전 클리어 횟수가 많으면 뭐 해.
정작 몬스터는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데.
“이동진 일병님. 제가 상병 달 때까지만 기다리십쇼. 잘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 전에 내가 전역해 버릴 것 같은데. 말이라도 고맙다.”
이동진은 김민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친 뒤, 생활관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고, 새벽 6시.
당직 사관의 목소리와 함께 기상한 헌터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토요일.
일과가 없는 날이다.
상 병장들은 활동복으로 환복을 끝내자마자,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김민준은 전투복 차림으로 생활관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아아. 2중대 소속 중, 헌터 승급 시험에 응시하는 헌터들은 지금 바로! 연병장 앞으로 집합할 수 있도록 한다. 다시 한번 알린다. 2중대 소속….
드디어 일병 딱지를 떼는 날이다!
김민준은 선임들에게 다녀오겠다며 경례를 한 뒤, 생활관 밖으로 나섰다.
**
“자! 계급별로 정렬해라! 이병부터 좌측에 선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행동해라!”
“예!”
연병장에 모인 헌터들은 대략 50명 정도.
이 정도의 인원이 시험에 응시해서, 5명 정도만 진급에 성공해도 대박 소리를 듣는다.
소대장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딱히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늘 일정이 굉장히 빡빡하다! 꾸물대지 말고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알겠나!”
“예!”
승급 시험은 토요일 오전부터 밤까지 치러진다.
하루 만에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을 다 끝내야 하기도 했고, 시험 장소가 타 부대였다.
“다들 자리에 앉아라.”
군용 버스가 도착하고, 소대장이 인원 체크를 끝냈다.
시험 응시 장소는 그때마다 바뀌는데, 이번에는 가평 쪽에 있는 부대에서 승급 시험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야. 들었냐? 4대대 손은서도 승급 시험 응시했다던데.”
“레알? 오늘 걔 얼굴 볼 수 있는 거야?”
버스 안은 들뜬 분위기였다.
뭔가 싶었더니, 4대대의 여헌터들도 승급 시험에 응시한다는 말이었다.
‘남자들이야 다 똑같지, 뭐.’
김민준은 피식 웃은 뒤, 필기시험 기출문제를 풀어 나갔다.
“다들 지정받은 자리에 착석 후, 탈모한다!”
필기 시험장 안.
헌터들은 지정받은 자리에 앉은 뒤, 시험지 배부를 기다렸다.
그사이.
남자들은 눈동자를 굴리며 여헌터들을 힐끔거렸다.
‘확실히 외모 수준은 한국이 훨씬 낫네.’
역시 대한민국.
‘이스가르드는 엿이나 먹어라.’
김민준의 간단한 감상평이었다.
“지금부터 필기시험을 실시한다! 컨닝하는 거 걸리는 순간 바로 영창이다. 알겠나!”
“예!”
오전 10시.
필기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장은 금방 사각거리는 볼펜 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뭐야. 필기시험이 쉽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였어?’
김민준은 시험 문제들을 확인하자, 어이가 없었다.
[문제 2. 어린아이의 덩치를 가진 박쥐 형태의 몬스터는?]
1. 딱따구리
2. 미들벳
3. 배트맨
4. 독수리
5. 데저트 이글
한 문제만 이런 게 아니고, 대부분의 문제가 이런 식이었다.
‘누가 운전면허 필기랑 비슷하다고 했냐.’
이게 훨씬 심한데?
필기시험 공부한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 정도 수준인데도, 필기 합격률이 100%가 아닌 게 신기했다.
헌터들 전원, 10분 안에 시험지를 제출했다.
“이건 또 뭐야. 조정욱? 야! 넌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당장 앞으로 튀어나와!”
“이병! 조정욱!”
“필기시험부터 떨어지면 어떡하자는 거냐!”
“죄송합니다!”
채점은 바로 진행되었는데, 불합격자가 귀신같이 1명 나왔다.
다른 헌터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해당 헌터를 바라보았다.
과연, 통계는 정확했다.
“실기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대대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헌터들은 필기시험을 마친 뒤, 실기 시험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자, 심사관들을 포함해 타 부대의 간부들까지 자리에 나왔다.
심사관들의 계급이야 말할 것도 없이 높다.
거기에 시험장에 잘 나타나지 않는 대대장까지.
헌터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자. 오늘이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승급 시험에 임하느라 수고가 많다. 실기 시험이 어떤 능력을 보는지 다들 잘 알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상병들이야 잘 알겠고… 보자. 그래, 거기!”
대대장이 김민준을 가리켰다.
“일병! 김민준!”
일부러 구석 쪽에 있었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차렸는지.
“그래. 이번에 특례로, 김민준 일병이 승급 시험에 응시하게 됐다. 원래 이병이었는데, 얼마 전 일병이 됐었지. 실기 시험의 종류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나?”
“예! 실기 시험은 주 무기 숙련도와 스텟 테스트, 마지막으로 전투능력을 겸한 몬스터 대처 능력을 봅니다!”
김민준은 앞의 좌석에 앉아 있는 간부들에게도 들릴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 이번에는 대대장도 지켜볼 테니까, 다들 열심히 해 봐.”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의 연설을 마지막으로, 실기 시험 조가 정해졌다.
6명씩 한 조.
승급 시험에 응시하는 헌터들이 많다 보니, 몬스터 대처 능력을 제외하고는 조를 짜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잘해봅시다!”
“네, 전우님도요.”
여헌터들과 같은 조가 된 헌터들은 의욕이 충만한 상태.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준비해!”
헤실거리던 헌터들이, 심사관의 일갈에 후다닥 움직였다.
먼저 스텟 테스트.
힘, 민첩, 체력을 각 항목별로 테스트해, 점수를 산정한다.
“신호하면 한 명씩 감독관 앞으로 위치한다, 알겠나!”
“예!”
힘 부문을 담당할 감독관은 중사로, 힘 스텟이 상당히 높은 간부였다.
“저기 위치한 감독관을 얼마나 뒤로 밀어내느냐에 따라, 점수가 측정된다.”
만점은 100점으로, 감독관을 10m 이상 밀어냈을 시 100점이었다.
“크으….”
“0점. 탈락이다.”
“알겠습니다….”
헌터들은 감독관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분.
힘 부문에서 40점 이상 받지 않으면, 바로 탈락이다.
“10점!”
“20점!”
“20점!”
감독관은 전혀 봐주지 않고, 오히려 헌터들을 밀어내기도 했다.
헌터들을 승급 시험에서 떨어트릴수록 높은 실적 점수를 받기 때문이었다.
“다음!”
1조를 시작으로, 4조까지 기준에 통과하는 헌터는 한 명도 없었다.
“손은서 일병, 50점!”
간간이 몇 명의 헌터가 기준에 턱걸이로 통과하고, 16조의 차례.
딱 한 명의 여헌터가 기준을 만족했다.
“와… 미친. 진짜 예쁘네.”
“쟤가 그거 아니냐? 아버지가 사단장이라며.”
“유전자의 힘인가. 쪽팔려 죽겠네.”
“아니, 그런데 쟤는 왜 장교로 지원 안 하고 일반병으로 지원했냐?”
“그러게.”
남자들은 수군거리면서도, 그녀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분위기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크. 저 날카로운 눈매 봐. 가까이 다가가면 죽을 것 같아.”
“소문 들었냐? 장교들이 쟤 어떻게 해 보려고 했다가, 사단장한테 미친 듯이 털린 거.”
“그건 장교들이 미친놈들이네. 아버지가 사단장인데 건드린다고?”
손은서는 자리로 돌아가며, 남자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김민준이 있는 곳으로.
‘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나.’
김민준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배정된 자리 앞에 섰다.
“40조!”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왔다.
‘오. 가까이 서니까 확실히 세 보이긴 하네.’
김민준은 감독관의 근육을 눈으로 훑은 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10점 기준이 10m랬나?’
그럼 10m 넘으면 가산점이라도 주려나?
“흡!”
전 항목 만점을 받겠다는 의욕이 솟아난 김민준은, 두 손으로 감독관을 힘껏 밀쳤다.
“끄어어어어!”
쿠웅!
감독관은 엄청난 힘을 견디지 못하고, 아예 공중으로 붕 떠서 날아갔다.
‘오케이. 저기 끝까지 갔네.’
그가 날아간 거리는 대략 50m.
김민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손을 탁탁 털었다.
“뭐, 뭐야 저거!”
“감독관님이 날아갔다!”
“미… 쳤다. 저게 가능해?”
“소문으로 듣긴 했는데, 진짜 괴물이네.”
그 모습을 바라본 다른 헌터들과 간부들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
손은서 역시, 황당한 표정으로 김민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김민준 일병, 100점! 훌륭하다!”
잠시 후.
감독관이 먼지를 털며 자리로 복귀해 평가를 내렸다.
“워… 힘 부문 100점… 저게 사람이냐?”
“자! 다들 조용해! 휴식 없이 바로 민첩 부문으로 넘어간다!”
심사관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전에, 재빨리 다음 시험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발사되는 게 고무탄이라곤 해도, 맞으면 많이 아프니까 긴장해라!”
“예! 알겠습니다!”
민첩 부문은 총알보다 살짝 느린 속도의 고무탄이 날아든다.
당연히 눈으로 보고 피하는 건 불가능한 속도.
탄의 궤도를 예측하고 최대한 덜 맞는 것이 핵심이었다.
“아악!”
“악!”
1조부터 5조까지는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어떤 헌터는 머리를 잘못 맞았는지, 피가 나기도 했다.
‘이래서 합격률이 낮나 보네.’
가장 어렵다는 부문이 몬스터 대처 능력이라는데.
스텟 테스트부터 이렇게 나가떨어져서야, 합격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뭐, 이렇게 까다롭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던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이번 헌터들은 역량이 왜 이러나!”
15조까지 30초를 버틴 헌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16조!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예!”
16조의 차례가 되자, 손은서를 포함한 헌터들이 자리에 섰다.
“그래. 이렇게만 하라고!”
손은서는 만점 기준인 1분을 버텼다.
심사관은 그제야 인상을 풀었다.
‘뭐야.’
손은서가 자리로 돌아가며, 김민준을 뚫어지듯이 쳐다보았다.
뭔가 지기 싫어하는 눈빛이었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김민준은 상대해 줄 마음이 없어, 그냥 가만히 무시하기로 했다.
“뭐야. 쟤 아까부터 너 쳐다보던데?”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냐?”
이러니까 옆에서 귀찮게 굴잖아.
“다음 40조! 준비!”
“예!”
시간이 지나, 자신의 차례가 왔다.
‘아직까지 쳐다보네. 뭔가 기분이 나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