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무기 훈련
다른 헌터들의 동작이 어설프다 보니, 그의 검술은 자연스럽게 훈련관의 눈에 띄었다.
“자, 이병들은 동작 그만! 김민준 일병은 단상 앞으로 올라온다!”
훈련관의 말에, 이병들의 시선이 김민준에게 쏠렸다.
‘뭐냐.’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일병! 김민준! 알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보여 주지.
김민준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자. 훈련관이 이병들의 동작을 관찰해 본 결과, 뚝뚝 끊기는 구간이 많고 어색하다. 김민준 일병이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도록.”
훈련관은 김민준에게 1번부터 4번까지 자세를 취해 보라고 지시했다.
상병과 병장들은 관심 없는 듯하면서도, 그를 힐끔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1번부터 초식을 수행해 나갔다.
이병들이 눈으로 보고 익히기 쉽도록 속도를 늦춰 주기까지.
훈련관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 여기서 동작 그만.”
“동작 그만!”
“여기 이 간격 보이지? 딱 이 정도 간격을 유지해야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쳐 내기 좋다.”
훈련관은 동작을 멈춘 김민준에게 다가가, 지휘봉으로 다리를 가리켰다.
이병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자세를 따라 하기에 정신없었다.
‘어. 이건 마치….’
조교가 된 느낌이었다.
다 좋은데, 지휘봉으로 몸을 툭툭 건드리는 건 좀 그렇네.
“자. 다음 4번! 1번부터 4번까지는 하체의 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4번 같은 경우에는….”
훈련은 휴식 시간이 주어지기 전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20분간 휴식 후, 훈련을 계속 진행하겠다! 다들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도록!”
“예!”
훈련관의 말에, 헌터들이 물을 섭취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김민준이 단상에서 내려가려는 찰나.
“김민준, 고생했다. 훈련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건 나중에 먹어라.”
훈련관이 그의 주머니로 뭔가를 쏙 집어넣었다.
“일병! 김민준! 감사합니다!”
빨간색의 포장지.
초코빠이다.
‘…이게 짬 처리라는 건가.’
교육관도 그렇고, 훈련관도 그렇고.
초코빠이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민준아.”
단상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이동진 일병이 말을 걸어왔다.
상체가 땀에 푹 젖어 있는 걸 보면, 성실하게 훈련에 임한 듯했다.
“일병 김민준.”
“너 헌터군용 검술 잘하더라. 괜찮으면 휴식 시간 동안 자세 좀 봐 줄 수 있을까?”
“아닙니다. 아직 미숙합니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봐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너 잘하더라. 내가 오히려 배워야겠더라고.”
이동진의 주 무기는 검이었다.
그는 김민준이 보는 앞에서, 교본대로 정확하게 초식을 수행해 나갔다.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데?’
김민준의 감상평이었다.
딱 봐도 훈련을 많이 한 티가 났다.
그야말로 헌터군용 검술의 정석 같은 느낌.
“이동진 일병님. 제 눈에는 부족한 부분이 안 보입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음… 사실 검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때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안 나오더라고.”
이동진은 약간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몬스터를 공략법에 따라 상대하는데, 다른 헌터들에 비해 뒤처지는 게 걱정이란다.
“뒤에 실전 훈련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때 이동진 일병님을 유심히 관찰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 부탁할게.”
“예, 알겠습니다.”
나를 나름 신경 써 준 선임이니, 이 정도는 도와줘야겠지.
“다들 집합!”
20분이 지나기 무섭게, 훈련관의 목소리와 함께 다음 훈련으로 넘어갔다.
“주 무기 훈련은 몬스터와의 대련을 마지막으로 끝낸다!”
훈련관은 철창 안에 갇힌 몬스터들을 가리켰다.
고블린.
하급 몬스터 중에서는 강한 개체다.
놈들은 약삭빠른 머리를 가지고 있어 방심하면 큰일 나는 몬스터였다.
“키엑! 인간!”
“죽인다!”
놈들의 손에는 무기로 쓰는 곤봉 대신, 훈련용 재질의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모든 이병은 무기를 먼저 반납하고, 뒤로 물러난다. 실시!”
“실시!”
이병은 1년 동안 승급 시험 응시가 불가능해도, 훈련은 똑같이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대련 몬스터의 대상이 고블린이다 보니 이병들을 제외시킨 것이다.
이병들은 보통 놀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하곤 했으니.
“앞에서부터 한 명씩 나와서 준비해라.”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마지막 순서로 배정받았다.
선임들이 몬스터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보고 배우라면서.
“준비 끝났으면 바로 시작해라!”
“예!”
훈련관의 신호에, 철장 문이 열린다.
첫 전투는 이동진 일병이었다.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볼까.’
이동진은 고블린과의 거리를 신중하게 좁혔다.
‘자세는 잘 잡혀 있는데.’
시작부터 문제가 있네.
시간을 너무 잡아먹어.
“이동진! 몬스터와의 탐색전은 네가 모르는 타입일 때만 하라고! 고블린을 상대로 시간을 왜 그렇게 끄나!”
“일병! 이동진! 죄송합니다.”
김민준의 판단은 정확했다.
훈련관 역시, 그와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신중한 거야, 상관없지.’
사소한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허비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던전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헌터들의 체력 고갈이 시작되니까.
“이동진. 고블린 한 마리 상대로 8분이나 걸렸다! 아무리 자세가 좋고 대처가 완벽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면 의미가 없어!”
“일병 이동진! 죄송합니다!”
어느 정도 훈련된 일병들만 해도, 고블린은 5분 안에 처리할 수 있었다.
주 무기를 들고 8분이면 확실히 느리긴 했다.
“야. 이동진. 너가 그러니까 상병을 못 다는 거야. 쫄지 말고 확확 달려들어야지.”
“일병 이동진! 죄송합니다!”
“그래. 그것만 고쳐라.”
“알겠습니다.”
그다음 순서는 김광식.
녀석의 주 무기는 톱을 연상시키는 특수 칼이었다.
“키에에엑!”
김광식이 고블린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분.
“자. 다음!”
김광식을 시작으로, 상병과 병장 라인 전부 능숙하게 고블린을 상대했다.
“승급 시험은 100% 실전이다! 자칫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다! 자만심을 가지지 말고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지금이야 안전한 상황에서 예비 훈련을 하는 것이지만, 승급 시험에 들어가면 안전장치가 1도 없었다.
말 그대로 완벽한 실전 상황.
때문에 승급 시험에 응시하는 도중, 중상을 입는 헌터들이 드물게 발생하곤 했었다.
“자. 일병들은 좀 더 분발해라. 그렇게 해서는 상병 절대 못 달 거다.”
“예!”
훈련은 계속 진행되어, 마지막 순서인 김민준만이 남았다.
“김민준.”
“일병! 김민준!”
“넌 아직 주 무기 훈련도 제대로 못 받았고, 상대는 고블린이다. 부담된다면 지금 교육관에게 말해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씩씩한 김민준의 대답에, 훈련관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래. 헌터군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지. 무기는 네가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도 좋다.”
“알겠습니다!”
검은 뭔가 지루했었는데, 마침 좋다.
김민준은 무기가 정렬되어 있는 곳으로 향해, 눈으로 쓱 훑었다.
‘보자. 검 말고는 창이라.’
뭔가 맛이 없네.
베거나 찌르는 것보다는, 두들기는 쪽이 내 취향인데.
‘나만의 무기를 원한단 말이지. 오?’
김민준의 시선은 마지막 무기를 보고서야 멈췄다.
‘이거다. 이거 느낌 있네.’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을 사용해 만든 둔기였다.
겉보기에는 쇠 방망이처럼 생겼지만, 들어 보니 무게가 상당했다.
‘이야. 몬스터 놈들 아프라고 철사 같은 것도 감아 놨네.’
외관도 나쁘지 않고, 훌륭한 그립감까지.
마음에 쏙 든다.
김민준은 헌터들이 기피하는 무기일지도 모르는 둔기를 집어 들었다.
“뭐야. 쟤는 왜 저런 걸 고르냐?”
“훈련 처음이라서 모르나 본데.”
“저게 맞으면 엄청 아파 보이긴 하지.”
선임들은 김민준이 들어 올린 쇠 방망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쇠 방망이는 무게가 상당해, 장비하고 다니기만 해도 체력을 심하게 소모했다.
몇 번 휘두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헉헉댈 정도.
힘 스텟이 높다는 병장들도 저 둔기에 도전했었지만, 결국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헌터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들긴 드는데?”
“와우. 드는 것도 힘들 텐데.”
“스텟이 타고 났네 아주.”
“미들벳 30마리를 괜히 때려잡았겠냐?”
헌터들의 수많은 시선이 김민준에게 집중되었다.
훈련관도 김민준의 행동이 신기했는지, 무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준비되었으면 시작해라!”
“예!”
훈련관의 신호에 철장이 열렸다.
“크에에엑! 인간! 죽인다!”
마지막 남은 고블린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철창이 열리자마자 돌진했다.
눈을 부릅뜬 상태.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다른 동료가 허무하게 죽는 걸 보고,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이다.
‘아니, 이런 미친놈이?’
고블린 주제에, 나한테 침을 튀겨?
“크레에에엑!”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라, 이 자식아!”
고블린의 침이 옷에 묻자마자, 김민준은 놈을 향해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푸화악!
단 한 번의 공격.
가볍게 휘두르는 듯한 김민준의 일격에, 고블린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며 죽었다.
“김민준. 15초! 훌륭하다.”
훈련관은 손에 쥔 스톱워치를 들여다보고, 다시 김민준을 바라보았다.
“…….”
“허….”
그건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
다들 할 말을 잃은 얼굴로, 김민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미들벳 30마리 혼자서 다 처리한 게 진짜였냐…?”
“거봐라. 쟤가 괜히 일병 빨리 달았겠냐? 내 말 맞았잖아!”
“야, 그래도 고블린까지 한 방 컷 해 버릴 줄은 몰랐는데.”
그들이 흥분한 기색으로 대화를 주고받길 잠시.
“아직 훈련 안 끝났다! 입 닫아!”
“죄송합니다!”
훈련관이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역시. 저놈은 장교나 사관학교로 갔었어야 할 인재다.’
사격부터 시작해,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과 좀 전의 훈련까지.
평범한 헌터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결과물이었으니까.
‘어쨌든 우수한 헌터가 우리 부대에 있는 건 좋은 거지.’
훈련관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방금 봤겠지만, 몬스터들은 기계가 아니다. 정해진 패턴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상황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는 거야.”
그 설명에, 침묵을 유지하던 헌터들이 고개를 하나둘씩 끄덕였다.
‘아. 누가 이거 가져가려고 하는 거 아냐?’
김민준은 아쉬움을 느끼며, 둔기를 반납했다.
저렇게 무게감 있고 훌륭한 무기가 고작 하나밖에 없다니.
‘승급 시험에서 또 써야지.’
이 뒤에도 훈련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김민준은 가벼운 마음으로 훈련을 즐겼다.
“왔다.”
그리고 다음 날, 토요일
드디어 김민준이 원하던 승급 시험을 치르는 날이 다가왔다.
“상병으로 가즈아!”
**
아직 기상하기에는 이른 시간인 새벽 5시.
김민준과 이동진은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동진 일병님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너무 신중하십니다. 몬스터 개체 수가 많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1마리 상대로는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있었던 훈련에 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