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스킬해제
김민준은 븝미븝미조아에게 PVP를 신청해, 자비 없는 죽음을 선물해 주었다.
“아. 잠깐만.”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음료수를 홀짝이는 것도 잠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평범하게 마기를 모아서 어느 세월에 힘을 되찾지?’
물론 마기가 없어도 높은 수치의 스텟 덕분에, 하사관을 뚫고 장교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김민준의 목표는 빠르게 별을 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빠르게’다.
‘지금 내 계급으로는 행동 제약이 많아. 나중에 상병이나 병장을 달아도 그리 자유롭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면, 휴가 때 몰래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마기가 필요하다. 그럼 마기가 있는 던전부터 찾아야 하고. 일단 인터넷으로 정보나 찾아볼까.”
김민준이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게시글들을 살피길 잠시.
“이건 또 뭐 하는 놈이야?”
눈에 띄는 게시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제목: 야 여기 지린다.]
[등산하다가 발견했는데, 딱 봐도 던전 입구 같지 않냐? 헌터들이 방독면 쓰고 경계 서더라.
통제 구역인 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큰일 날 뻔했다.
산에서 뭔 독한 냄새가 풍긴다 싶었는데, 조금만 더 있었으면 쓰러졌을 듯.
지금도 머리가 띵함.]
익명 1: 미친놈인가. 이걸 왜 여기 올림?
익명 2: 너 잡혀간다. 농담 아니다. 빨리 지워라.
“딱 봐도 던전이네, 저건.”
익명의 유저가 올린 사진 한 장.
광산 입구를 연상시키는 장소와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독한 냄새라… 마기일 확률이 높겠는데?”
마침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산에서 찍었다고 하니, 충분히 가 볼 만했다.
“넌 인마. 이런 거 함부로 올리면 안 되는 거 모르냐.”
신고로 게시글이 빠르게 삭제된 걸 보면, 조만간 알아서 잡히겠지.
일반군은 몰라도, 헌터군은 이런 쪽으로 굉장히 민감했다.
운 나쁘면 징역까지 받을 텐데.
‘어쨌든 고맙다. 네 덕분에 좋은 던전을 찾은 것 같다.’
김민준은 곧바로 화천을 향해 움직였다.
“나이스. 마기 확실하네.”
화천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희미한 마향이 풍겨 왔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수준.
“이걸 계속 방치해 두는 것도 문제겠는데.”
어찌 되었든, 던전에서 마기가 새어 나온다는 게 좋은 징조는 아니었으니.
“던전 입구에 헌터 두 명이라.”
김민준은 던전 근처에 도착해, 자세를 낮췄다.
“이거 제대로 건졌는데?”
던전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풍겨 오는 마향이 상당히 짙었다.
경계를 서는 헌터들이 괜히 방독면을 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아직은 일병이라.’
김민준은 두 명의 헌터를 대상으로, 부패를 사용했다.
스스스스-
“아, 씁… 갑자기 배가 아픈데?”
“죄송합니다! 저도 갑자기 배가 아픕니다.”
“…너도?”
“크윽! 제가 잠시 참고 있겠… 죄송합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야. 여기 어차피 사람 못 들어와. 후딱 해결하고 오자. 으윽! 5분 정도는 괜찮을 거다.”
“알겠습니다!”
경계를 서는 헌터들이 배를 부여잡고, 숲속으로 뛰어갔다.
김민준은 그 틈을 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나이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진하고 농후한 마기.
당첨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짙어? 여기 몬스터도 없는데.”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빈 던전에 마기만 가득 차 있었다.
“마기부터 흡수하고 보자.”
김민준은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쉬이이익!
그러자 던전 안을 가득 메운 마기들이 그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하였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상쾌한 기분인가.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해, 나이트 워커가 개방되었습니다.]
[부패 스킬이 강화됩니다.]
만족감을 즐기던 와중, 없어졌던 스킬의 개방까지.
“운이 좋군.”
김민준은 영화배우의 대사를 흉내 내며, 상태창을 열었다.
[김민준]
‘세리아 누나는 내 최애캐’ 교의 창시자.
힘: 60 민첩: 60 체력: 60 마기: 15
보유 스킬: 부패(D), 나이트 워커(E)
“크. 귀신같이 딱 필요한 스킬이 떠 버리네.”
김민준이 되찾은 스킬은 나이트 워커.
일병이라는 그의 신분에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나이트 워커는 그림자 형태를 가진 소환수다.
녀석을 밖으로 꺼내 놓으면, 일정 주기마다 마기를 먹이로 주어야 한다.
가성비는 그리 좋지 않지만, 제값을 톡톡히 하는 녀석이었다.
지정한 대상의 몸 안으로 들어가, 정보를 빼내는 정보 수집형 소환수.
“나와라.”
스스스-
김민준은 나이트 워커를 소환했다.
그러자 그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더욱 진하게 물들었다.
“역시 마기 스텟이 낮아서 그런가, 많이 약해져 있네.”
현재 녀석이 활동 가능한 시간은 밤 시간대 정도였다.
“아니,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한 수확이지.”
잠시 아쉬운 마음을 느끼던 김민준은 부대에 돌아가면 나이트 워커를 뿌려 두기로 했다.
강태공의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입질이 올 테니까.
“부대에 복귀하기 전에, 선임들이 좋아하는 사제 선물만 사 가면 끝이겠네.”
김민준은 부대에 가져갈 물건들을 구입했다.
**
목요일 복귀.
다음 날, 또 다른 훈련이 잡혀 있었지만 김민준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뜻하지 않게 마기가 넘쳐흐르는 던전을 발견했고, 조금이지만 잃어버린 힘을 되찾았으니까.
이로써 목표하던 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간 셈이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계급 높아 보이는 사람 있으면 천천히 시도해 봐라. 다치게 하면 안 된다. 부드럽게 해라.’
스스스스-
민준의 말에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나이트 워커가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제 낚싯바늘을 던졌으니, 입질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충성! 일병 김민준! 휴가 복귀했습니다!”
“오! 이병 생활 최단기간에 끝마친 헌터!”
“사단장님한테 휴가도 받았다면서? 계급장도 직접 붙여 주셨고!”
“예! 그렇습니다! 이것들 받으십쇼. 대단한 건 아니지만, 생각나서 사 왔습니다!”
김민준은 생활관에 들어가자마자, 선임들에게 사제 담배를 나눠 주었다.
남자라면 꼭 지참해야 할 교양 도서인, 막심까지 건네주었다.
“얌마.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요새 담뱃값도 비싼데.”
“잡지도 하나만 사 오지, 뭘 이렇게 여러 개 사 왔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뻐하는 눈치였다.
이게 군 생활이지.
“우리 생활관에는 이병이 없어서 어쩌냐. 진급해도 막내네.”
“괜찮습니다.”
사실 별 상관없었다.
승급 시험까지 치르고 나면, 상병이 되어 있을 터였기에.
“민준아, 축하한다. 벌써 나랑 같은 일병이네.”
이동진 일병은 너 정도면 상병도 빨리 달겠다며, 진급을 축하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내일 주 무기 훈련 있는 거 알지? 휴가 갔다 왔다고 너무 풀어지진 말고. 이승호 병장님이 요즘 예민하시거든.”
“예! 알겠습니다.”
그건 비둘기… 아니, 김광식 상병 때문이겠네.
“그런데 막내야. 내가 당직 사관실 지나가다가 승급 시험 응시 목록을 봤거든? 네 이름이 있더라?”
“뭐? 그거 미리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병일 때는 신청 못 했을 텐데?”
“우수 병사한테 그런 혜택도 있었냐, 막내야?”
병장의 말에, 다른 선임들의 시선이 민준에게 집중되었다.
“사실 훈련소에서 대대장님이 저에게 제안을 하나 하셨습니다.”
김민준은 숨기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선임들에게 전달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에 선임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 군대에서 너무 눈에 띄지 말라고 하는 게 이런 거네.”
“잘해도 문제고, 못해도 문제고 딱 중간이 답이네.”
“마음고생 많았겠다, 막내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실 정말 괜찮았다.
다가올 승급 시험이 뭐라고, 벌써부터 설레고 있었으니까.
‘아아. 빨리 와라, 토요일이여.’
**
다음 날, 연병장 앞.
주 무기 훈련을 실시하는 날.
헌터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아… 인생.”
“왠지 휴가 신청했는데 튕기더라. 망할.”
다름이 아니라, 대대장의 지시로 승급 시험 예비 훈련까지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격 훈련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하루 종일 훈련받게 생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자. 다들 인상 좀 펴고! 대대장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신 거니까, 성실히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바로 내일이 승급 시험이니까, 긴장감을 가지고 훈련에 임한다!”
“예!”
승급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순으로 진행된다.
필기시험은 정말 기본적인 지식만 알면 패스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자동차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생각하면 된다.
반면, 실기 시험부터는 난이도가 확 뛴다.
헌터들의 필기시험 합격률이 99%라면, 실기는 3% 수준.
작대기 하나 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자. 실기가 주 무기 훈련이랑 스텟 테스트, 몬스터 대처 능력을 본다고 했었지.’
김민준은 훈련관의 설명을 경청했다.
시험 합격이야 이미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만점을 받으면, 작대기 하나 더 달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지금부터 주 무기 훈련을 실시한다! 이병들은 다른 무기를 고르지 말고, 칼을 집어라!”
“예!”
“알겠습니다!”
무기 중 가장 무난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칼이다.
누구나 훈련만 거친다면 일정 이상의 숙련도를 가질 수 있었으며, 훈련하기에 그리 어렵지도 않았으니.
“자. 훈련관이 가르쳐 주는 건 어디까지나 교본에 있는 군용 검술이다. 정직하게 검술만 따라 한다고 좋은 건 아니야. 기본 뼈대는 헌터군용 검술에 두되,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바꿔 나가란 말이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몬스터를 꼭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
더 신속하고 확실하게 죽이는 것이 중요했다.
“이병하고 일병들은 욕심내지 말고 훈련관의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헌터들은 간격을 충분히 넓힌 뒤, 각자 주 무기를 잡고 자세를 취했다.
다만, 이병들에게는 목재로 된 훈련용 칼이 쥐어졌다.
“이병들은 나만 보고 따라 해라! 다른 쪽으로 시선 돌리지 말고!”
“예!”
이병들은 어설픈 동작으로 훈련관의 검술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1번 자세부터 4번 자세까지는 하체의 힘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힘을 넣지 말고!”
“알겠습니다!”
“앞발과 뒷발 간격을 더 벌린다!”
“예!”
“거기! 너무 벌렸잖아! 더 좁혀라!”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에게 있어서야 별것 아닌 검술이다.
하지만 다른 이병들은 기본 초식을 따라 하는 것만 해도 애를 먹는 듯했다.
‘검술은 확실히 이스가르드 쪽이 낫네.’
헌터군 검술은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정직하다는 느낌?
‘나도 군용 검으로 시작해 볼까.’
이세계에 있었을 당시, 손에 집히는 웬만한 무기는 다뤄 봤다.
물론, 주 직업인 흑마법사에게는 맞지 않아 그것도 잠깐이었지만.
“1번부터 4번까지, 10번 반복한다. 실시!”
“실시!”
김민준은 여유롭게 검술을 반복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