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건들지 마라
“김광식 상병님. 제가 이러는 거, 기분 나쁘시지 않습니까?”
“별로 안 나쁜데? 난 내기에서 졌잖아. 넌 이겼고. 아, 근데 내가 성격이 쿨해서 그런 거야. 다른 선임한테는 그러면 큰일 난다. 너 군 생활 꼬여.”
김광식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신기한 놈이네.’
그리고 유쾌한 놈이고.
‘이스가르드에 있는 신도 한 놈이 딱 저런 성격이었는데.’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아. 어디 뭐 게이트 같은 거 안 터지나? 계급 좀 올리고 싶은데.”
최전방이라서 틈만 나면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거나, 게이트가 발생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 이병 생활 이틀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이제 일병으로 가고 싶다고! 터져라! 게이트!”
다른 헌터들이 들으면 어이없어하겠지만, 김민준은 진지했다.
-삐이이이이익!
“어? 뭐야. 진짜로?”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상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진짜냐?”
김민준이 멈칫하길 잠시.
-당직 사관이 알린다! 긴급 상황 발생! 긴급 상황 발생! 전원 기상!
모든 헌터는 전투복으로 환복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유류고에 미들벳이 출현! 다시 한번 알린다, 유류고에 미들벳이 출현했다! 신속하게 마나 실드 설치할 준비해!
전방에서 게이트가 생성되는 일이야 가끔 있었다.
비교적 처리하기 수월한 몬스터일 때는, 5대기 지원선에서 끝나는 편.
하지만 이번에는 전 헌터들이 기상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미들벳이라 이거지.’
미들벳.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를 가진 박쥐형 몬스터.
입에서 구체 형태의 불덩이를 날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거 잘못했다가는, 부대가 날아가겠는데?’
놈들의 공격에 유류고가 폭발하기라도 했다가는, 발생하는 피해의 규모가 엄청날 터.
‘유류고 근처라면 발포도 안 되겠는데.’
헌터들은 총기와 같은 무기가 없으면 제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기껏 해 봐야 미들벳의 시선을 끄는 정도일 터.
그뿐이면 다행이겠지만, 현재 시각은 새벽 1시다.
안 그래도 어두운데, 놈들의 형체를 눈으로 좇는 것은 더욱 어려울 거다.
‘이대로는 늦겠네.’
거기에 마나 실드를 설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30분이다.
미들벳이 30분이나 기다려 줄 리가 없었다.
‘제발 다른 놈들이 건드리지 마라! 미들벳은 전부 다 내 거다!’
김민준은 창문을 열고, 유류고를 향해 몸을 날렸다.
본래 전투 헬멧을 포함한 장비를 더 착용해야 했지만, 1분 1초가 더 중요했다.
놈들을 모두 독식하고, 진급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끼이이익!”
“이리와! 이쪽으로 오라고!”
유류고에 도착하자, 경계 근무를 서던 헌터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근처에 집어 던질 것들을 이용해 미들벳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여기서는 어그로를 내 쪽으로 끌어야겠지.’
그건 그렇고, 저거 너무 많은 거 아니냐?
진짜 큰일 났는데?
눈에 보이는 미들벳은 대강 30마리.
화기를 동원하지 않는 한, 단시간에 처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나 없었으면, 진짜 부대가 반 토막 났겠는데?’
김민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놈들의 주의를 끌겠습니다!”
“뭐? 너 2중대 신병 아니야? 당장 뒤로 빠져!”
“이 새끼야! 전투 헬멧도 안 챙겨 오면 어쩌자는 거야!”
김민준은 대답 대신, 손에서 마기를 소량 방출했다.
스스스스-
“끼이이익!”
“끼이이!”
그러자 유류고 주위에서 맴돌던 미들벳들이 김민준을 향해 하강했다.
‘이놈들은 안 도망간다 이거지.’
딱 좋다.
이곳에서 시간만 끌면, 다른 헌터들이 유류고에 마나 실드를 설치해 주겠지.
‘그리고 이놈들은 전부 다 내 거고.’
쇄액!
미들벳은 날렵하다.
놈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려면 일병 정도는 돼야 했다.
단순히 회피하는 것만을 중점으로 둔다면, 상병이 와도 어려운 수준.
“몬스터들이 갑자기 왜 저러냐!”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너 그러다 진짜 죽어!”
몬스터의 돌발 행동.
일병들은 경악하면서도, 매뉴얼대로 현재 상황을 당직 사관에게 보고했다.
쉬익! 쉭!
퍼석! 퍽!
어둠 속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저거!”
“김민준 아니냐?”
“저놈 지금 혼자서 뭐 하는 거야!”
그사이.
뒤늦게 마나 실드를 챙겨 현장에 도착한 헌터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경악했다.
“미, 미친! 미들벳이 도대체 몇 마리야!”
“너무 많잖아! 여기 유류고 근처라서 발포도 안 된다고!”
엄청난 숫자의 미들벳에, 헌터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사실상 놈들을 부대 안으로 들인 순간부터 큰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닥치고 마나 실드 설치부터 해! 몬스터 분산은 병장 라인이 맡는다!”
“예, 예! 알겠습니다!”
병장 이승호의 지시에,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장비를 챙겨 유류고로 뛰어갔다.
“미친놈! 저놈 그냥 전투복만 입은 상태잖아.”
이승호는 전압봉을 꺼낸 뒤, 김민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 저 미친놈이?’
미들벳들을 처리하던 도중.
뒤에서 달려오는 이승호 병장이 보였다.
“김민준! 자세 낮춰라!”
자세 낮추기는 개뿔.
‘넌 저기 꺼져 있어! 저거 다 내 거다! 건들지 마라!’
김민준은 대답 대신, 이승호 병장에게 부패를 사용했다.
“크억… 이럴 때 왜 배가….”
이승호는 심각한 복통을 느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승호 병장님! 이것 좀 쓰겠습니다!”
그사이.
김민준은 이승호가 들고 있던 전압봉을 낚아채 갔다.
맨손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냥 재밌어 보였기에.
지지직!
‘오. 이거 좀 좋은데?’
평범한 진압봉이 아닌,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압봉.
김민준은 능숙하게 미들벳들을 타격해, 한 마리씩 처리해 나갔다.
“키이이익!”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에 미들벳의 시체가 쌓여 갔다.
어느새 남은 한 마리가 잔뜩 성이 났는지, 입을 쩍 벌렸다.
근거리에서 화염구를 날릴 셈이다.
“저거 절대 못 쏘게 해라!”
“저거 막아!”
헌터들은 그 장면을 보고, 서로 몸을 날리기 바빴다.
자칫해서 유류고가 터지기라도 하면, 이곳에 있는 헌터들 대다수가 중상을 입을 것이었기에.
“오지 마십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김민준은 미들벳 앞으로 몸을 날렸다.
‘야! 미들벳!’
넣을게!
순식간에 놈에게 도달한 김민준은, 입안으로 전압봉을 쑤셔 넣은 뒤 버튼을 눌렀다.
지지지직!
“키이이이익!”
그렇게 마지막 몬스터까지 처리했다.
‘아. 완벽했다.’
정확히 30마리.
이보다 더 깔끔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진급시켜 주려나 모르겠네.’
고개를 돌려 보니 유류고에 마나 실드를 가동시키고 있는 선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으로 상황은 종료.
전압봉은 이승호에게 돌려주었다.
“…너, 뭐야?”
이승호를 포함해, 다른 헌터들의 시선이 김민준에게로 집중되었다.
이게 말이 되냐는 표정이다.
‘뭐긴.’
내가 바로 이세계에서 귀환한 흑마법사다, 이 말이야.
김민준은 그들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주었다.
**
당직사관은 상황이 종료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현장으로 뛰쳐나왔다.
갑작스러운 게이트 발생에, 하필이면 공중 몬스터가 출현할 줄이야.
“유류고 터졌으면 난리 날 뻔했다. 후.”
안 그래도 최전방 쪽은 이런 형상이 잦다.
그렇기에 몬스터를 감지하는 특수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는 가끔 잡아내지 못할 때가 있는 게 문제였지만.
“우리 부대가 뚫려 버리면 몬스터들이 줄줄이 샌다. 진짜 그랬음… 군복 벗어야 할 뻔했네. 아오, 쓰벌. 내 가슴아.”
당직 사관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유류고 앞에 도착했다.
“이야. 쥐포 냄새 올라오는 거 봐라. 누가 이렇게 잘 구웠어? 아니, 근데 이놈들 왜 이렇게 많아? 전부 몇 마리냐?”
새까맣게 탄 시체와, 머리가 터져 나간 시체.
‘탄 놈들은 전압봉을 사용했겠고, 머리가 터진 놈들은… 어떻게 한 거지?’
그렇게 의문을 느끼던 도중, 헌터 한 명이 대답했다.
“30마리입니다.”
“…그렇게 많았다고? 내가 보고받은 건 4마리 정도였는데.”
당직 사관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시체를 세기 시작했다.
“30마리 맞네. 이놈들 다 어디서 온 거야? 레이더에는 잡히지도 않았는데.”
“충성!”
“어. 이승호! 상황 보고해 봐.”
당직 사관이 전압봉을 들고 있는 이승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전기로 구운 놈들은 네가 다 처리한 거냐? 기가 막히게 잡았네. 안 그래도 새벽이라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게 아닙니다.”
“응? 그럼 뭔데?”
그 말에, 이승호 병장을 포함한 다수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태연한 표정을 한 김민준이 서 있었다.
“…설마 네가 했어? 나 장난칠 기분 아니다. 제대로 말해.”
“제가 도착했을 때, 김민준 이병이 미들벳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뭐?”
당직 사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김민준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는 것까지.
녀석의 몸을 보면, 제대로 된 장비도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제가 3분 안에 도착했을 때, 이미 김민준 이병이 미들벳들을 처치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김민준.”
“이병! 김민준!”
“자세히 설명해 봐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저는 새벽에 깨어 있었기에 빠른 대처가 가능했습니다!”
본래라면 장비를 착용하고 가야 했지만,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이라 몸부터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네가 30마리를 전부 죽였다고? 무기도 없는 놈이, 어그로는 어떻게 끌었어?”
“놈들이 저를 보자마자, 갑자기 달려들었습니다!”
술렁이는 주위의 반응을 보면, 거짓말 같지는 않다.
‘이승호가 농담할 성격도 아니고. 그래도 30마리는 너무 심한데?’
당직 사관은 멍한 얼굴로 김민준의 몸을 점검했다.
30마리의 몬스터에게 집중 공격을 받았는데, 긁힌 자국 하나 없다니.
더더욱 믿을 수 없다.
고작 이병이 이런 일을 해냈다고?
“마지막 한 마리까지 저 녀석이 처리했습니다. 제 전압봉을 잘 다뤘습니다.”
이승호의 말에, 당직 사관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일반 헌터가 저 정도 능력을 가진 건 절대 말이 안 된다. 저건 우수한 장교를 데려와야 가능한 수준이라고.’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몬스터의 공격에 대처한다?
이병이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불가능하다.
저 녀석은 자대에 배치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신병이었으니까.
‘중대장님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는데… 믿어 주기는 하나?’
자칫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상황을, 고작 이병이 해결했다라.
당직 사관은 김민준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야, 이 자식아! 어쨌든 간에 잘했다!”
“이병! 김민준! 감사합니다!”
당직 사관의 몸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
김민준은 찝찝했지만, 잠시 참기로 했다.
**
당직 사관실에는 김민준과 이승호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당직 사관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
“김민준.”
“이병! 김민준.”
“너 솔직히 말해라. 재입대라도 했냐?”
“아닙니다!”
“그럼 회귀 같은 거라도 했냐?”
“아닙니다!”
이승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김민준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