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3화 (13/212)

13. 진급각이냐?

소대장 말로는 별것 없다고 했지만, 모래를 뿌려야 하는 거리만 2㎞다.

“이런 미친! 모래 뿌리는 기계 있잖아. 그거 돌리면 되는 거 아니냐? 왜 우리가 수작업으로 일일이 뿌려야 하는 거야?”

작업 도중.

상병 한 명이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기계 쓰는 거보다 우리 쓰는 게 더 싸서 그런 거지. 시부럴.”

“야간 수당 만 원 실화냐? 편의점 알바 해도 이거보다는 많이 받겠네.”

그 말대로 훈련이나 실전 상황이 아니었기에 지급되는 수당은 매우 적었다.

“거기 모래 좀 더 뿌려! 저기 구석에도 꼼꼼하게 뿌리고!”

“예! 알겠습니다!”

김철민은 깐깐하게 감독하며, 작은 지휘봉을 요리조리 휘둘러 댔다.

소대장조차도 이 정도인데, 과연 별 단 장군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별 단 장군은 지휘봉 하나로 산을 옮긴다고 하던데.

“자. 소대장은 이대로 퇴근할 테니까, 작업 제대로 마무리하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라. 상병들도 많고, 할 수 있지?”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 커지는 거 봐라. 일병들 막 부려 먹지 말고, 너희들이 도와줘야 빨리 끝난다.”

김철민은 밤 9시가 되자마자, 귀신같이 퇴근했다.

상병들은 소대장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야. 너희들도 잠시 쉬고 해라. 이거 어차피 되게 오래 걸린다.”

“야. 비둘기. 넌 쉬지 마, 인마. 막내한테 져 놓고 말이야. 어? 네가 그러고도 상병이야?”

“구구구구!”

다른 동기들의 지적에, 김광식은 비둘기 흉내를 내며 입으로 모래주머니를 옮기기 시작했다.

“크윽….”

“큽….”

그 장면을 본 일이병들은 억지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이야. 막내가 빠릿빠릿하게 잘 움직이네.”

“그러게. 이 정도면 좀 빨리 끝나겠는데?”

그 뒤로 진행된 작업.

김민준은 선임들의 눈에 띌 정도로 엄청난 작업 능률을 보였다.

마치 기계가 와서 모래를 뿌리는 것 같은 동작.

“제가 밑부분까지 뿌리고 오겠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뜨기까지.

“저놈은 훈련도 잘하고 일도 잘하네.”

“이대로 상병까지만 올라와도 좋겠다, 야.”

김민준은 이미 상병들의 마음을 절반 가까이 사로잡은 상태였다.

“비둘기 다음에는 뭐 시킬까.”

김민준이 부대 입구까지 내려와 모래를 뿌리려는 순간.

“어? 뭐야?”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풍겨 왔다.

“희미하지만, 구수하고 향긋한 냄새….”

이건 마향이다!

김민준은 고개를 들어, 마향이 풍기는 곳을 찾아냈다.

“여기네.”

부대 입구 근처에 있는 나무 한 그루.

말라비틀어져 언제 쓰러질지 알 수 없는, 작은 나무였다.

“정확히는 나무 안쪽에 있는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섣불리 손을 집어넣었다가는, 나무가 쓰러질 텐데.

“괜찮겠지, 뭐. 보는 사람도 없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나무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뭔가 물컹하고 꿈틀거리는 것이 잡힌다.

밖으로 꺼내 보니, 손바닥 크기만 한 애벌레였다.

“이야. 강원도는 벌레도 마기를 품냐?”

김민준은 재빠르게 마기를 흡수했다.

스스스스-

“좋아. 없는 것보다야 낫지.”

헌터 훈련소에서 마주친 다크 하운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소소한 마기였다.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하였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오? 나이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

예상치 못한 스텟의 상승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확실히 마기를 모으는 데 있어 최적의 환경은 전방이었다.

“잃어버린 마기만 천천히 흡수하면 신체 능력도 돌아오겠지.”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자신만이 보유했던 고유 스킬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없지만.

“하지만! 난 이걸로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

빠르게 별을 달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스텟이 필수다.

“이왕 처음부터 강해질 거, 이세계에 있을 때보다 더 강해져 볼까.”

김민준은 주말마다 단련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기분 좋으니까 넌 살려 준다.”

김민준은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풀어 주었다.

그 애벌레는 최소 가격만 800만 원인, 자이언트 사슴벌레 유충이었다.

“다들 고생했다. 특히 김민준. 너 열심히 하더라.”

야간 작업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본래 2시간 이상은 걸리는 작업이었는데, 김민준의 활약으로 단축된 것이다.

“이병 김민준! 감사합니다!”

“야. 따라와라. 내가 냉동 하나 사 준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같은 분대의 선임이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김민준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본래 이병과 일병은, 주말에만 PX 이용이 가능하다.

물론 상병이나 병장들이 사 주는 것은 예외.

‘아. 훈련하고 일하고 먹는 냉동 좋네. 킹슈넬 치킨 꿀맛!’

냉동 식품이 이런 느낌이었나.

병사 식당에서 나오는 것에 비하면 퀄리티는 떨어지지만, 묘하게 중독되는 맛이 있었다.

“민준아. 너 하는 거 보니까, 2년만 일찍 들어왔으면 상병 달았을 것 같다. 그러게 일찍 좀 오지.”

“이병 김민준! 2년 전이면 전 고등학생입니다!”

“아, 그러냐. 그럼 제때 왔네. 난 근무가 있어서 이제 간다. 너 지금 하는 대로만 해. 선임들이 너 좋게 보고 있다.”

“예! 알겠습니다!”

선임은 알아서 정리하라고 한 뒤, 먼저 자리를 떠났다.

‘오케이. 이미지 메이킹 잘하고 있구만.’

어차피 금방 상병이나 병장을 달겠지만, 첫인상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아깝네. 승급 시험 제도만 안 바뀌었어도 상병부터 달고 시작하는 건데.’

방금 전 선임이 말한 내용.

그것은 승급 시험 성적이 우수한 병사에 한해 2계급까지 진급할 수 있는 규정이었다.

2년 전.

상병에서 하사로 진급된 간부가 던전에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한 번에 최대 1계급이라.’

승급 시험도 년마다 단 2번밖에 없다.

그 말은, 최대한 실적을 내서 특별 진급을 노려야 한다는 말이다.

‘잠깐만. 그런데 그 기준이 뭐였지?’

김민준은 킹슈넬 치킨을 후다닥 처리하고 생활관으로 향했다.

“이동진 일병님. 질문할 게 있는데, 잠시 괜찮으십니까?”

“그래. 물어봐.”

“승급 시험을 제외하고, 우수한 실적을 내면 진급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기준에 대해서 알 수 있겠습니까?”

이동진은 의외의 질문에,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아. 있긴 하지. 긴급 상황에서의 민간인 구출이라든가, 일정 규모 이상의 던전에서 실적을 내는 게 있는데… 이게 다 주관적인 거라서.”

결국, 지휘관 재량으로 판단한다는 말이었다.

“이 규정은 없는 거라고 생각해야 해. 이걸로 진급한 헌터는 거의 없어.”

“감사합니다.”

어이없는 질문으로 들릴 수도 있었는데, 이동진은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정말 성격 좋은 선임이었다.

‘넌 내가 상병 다는 순간 챙겨 줄게. 걱정 마라.’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막내가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

“비둘기는 어디 갔습니까?”

“구구!”

김광식 상병이었다.

“김광식. 특수 사격 훈련 개같이 받아 놓고 재밌냐?”

“상병 김광식! 죄송합니다.”

말을 꺼내기 무섭게, 병장 이승호가 녀석을 노려보았다.

“다음에도 그러면 나한테 털린다.”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됐다. 하던 거 계속해라.”

“구구! 구구!”

이승호는 그를 잠시 노려보다가, TV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일을 시켜 볼까.’

조금 있으면 청소 시간이 다가온다.

김민준은 김광식 상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김광식 상병님. 비둘기 흉내는 충분합니다. 이제 생활관 청소부터 하십쇼. 끝나면 다른 일 드리겠습니다.”

“진짜 알뜰하게 부려 먹네. 오케이. 나 뒤끝 없으니까 마음껏 부려 먹어라. 대신 다음에 나한테 걸리면, 나도 너 24시간 동안 미친 듯이 부려 먹을 거다.”

김광식은 다음 훈련 때 두고 보자고 말하며, 걸레를 집어 들었다.

“예. 알겠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해 줬다.

“김광식 상병님. 먼지 하나 안 나올 때까지 닦으셔야 합니다. 헌터들도 미세 먼지를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내가 정말 착하네. 아주 그냥 배려심이 장난 아닌데.”

“감사합니다.”

김광식은 김민준을 장난스럽게 노려본 뒤,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김민준.”

“이병 김민준!”

“내가 책임질 테니까, 저놈 쉴 틈도 없이 부려 먹어라. 안 그럼 나한테 털릴 줄 알아.”

그사이, 이승호가 제대로 못 부려 먹으면 오히려 혼난다고 말해 왔다.

말이 ‘부려 먹어라’지, 뉘앙스는 그냥 털라는 뜻으로 들렸다.

김광식이 받은 특수 사격 훈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했다.

‘상병이 이병한테 부려 먹힌다라.’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힘차게 대답하며, 속으로 산뜻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저놈은 적당히만 부려 먹어야지.’

만일 김광식이 악질적인 놈이었다면, 24시간 동안 숨 돌릴 틈도 없이 부려 먹었을 것이다.

“김광식 상병님. 걸레 제대로 빨아 오셨습니까?”

그가 걸레를 빨아 오자마자, 김민준이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당연히! 제대로 빨았다. 내 짬이 몇 년인데.”

그는 보라는 듯이 걸레를 내밀며,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김민준은 걸레를 받은 뒤,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껏 쥐어짰다.

또옥-

그러자, 딱 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김광식 상병님? 걸레에서 물이 떨어졌지만 처음이니까 봐 드리겠습니다. 이대로 청소 시작하시면 됩니다.”

“이야. 막내가 상병 달면 후임들이 불쌍해질 것 같은데.”

“김광식 상병님만 특별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김광식이 침울한 표정을 연기했다.

“…막내야? 내가 너 괴롭힌 적 있냐?”

“없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래?”

“비둘기 흉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건 할 말 없네.”

김광식은 비둘기 흉내를 내며 걸레질을 시작했다.

“구! 구구!”

다른 일병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24시간을 전부 부려 먹는 건 살짝 미안하니까, 조금만 더 부려 먹지 뭐. 재밌는 놈이기도 하고.’

김민준은 김광식을 적당히만 부려 먹기로 했다.

‘이병은 게임방 이용도 못 하고, 서러워서 살겠냐? 이렇게라도 해야 사는 맛이 나지.’

사실 부조리야 예전부터 있었던, 부대 자체의 문제였다.

김광식은 그에게 운 없이 걸린 케이스였다.

‘아. 오늘 꿀잠 자겠네. 생각보다 재밌는데.’

**

새벽 1시.

김민준과 김광식을 제외한 헌터들은, 깊은 잠에 빠져든 상태.

“김광식 상병님. 이쯤 하면 됐습니다. 이제 생활관은 깔끔해졌으니, 주무셔도 됩니다.”

그 말에, 김광식이 걸레를 들어 던졌다.

김민준은 날아오는 걸레를 가볍게 캐치했다.

“막내야. 걸레는 네가 좀 빨아 줘라. 사실 아까부터 졸려 죽는 줄 알았다.”

김광식은 연달아 하품하며,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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