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헌터군 훈련소-4
아무리 보호 슈트를 입고 있다 해도, 난폭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훈련이다.
훈련병 10명 중 9명은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며 보호 슈트를 갉아먹기 일쑤.
그런데 김민준은 하운드에게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다른 개체들이 꼬리를 뒤로 말 정도의 포스를 뿜어냈다.
“한눈팔지 말고 포지션 제대로 잡으라고!”
“예, 예!”
김민준은 하운드 한 마리를 처리한 뒤, 동기들에게 정신 차리라며 소리쳤다.
“자꾸 방어적으로 뒤로 빼지 말고, 앞으로 달려들어! 너희들이 뒤로 뺄수록 저놈들이 얕보잖아!”
자신이 아니었으면, 남은 하운드 두 마리는 진작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포지션은 금방 무너져 버리고, 진영에 큰 구멍이 뚫리게 된다.
“이거 실전 상황이었으면 이 중에서 2명은 죽었다. 전방 맡은 애들은 몬스터들이 섣불리 못 달려들게 압박 넣어야지!”
“아, 알겠습니다!”
“동긴데 말을 왜 높여 임마!”
“미안!”
김민준은 동기들에게 쓴소리를 하면서도, 부족한 점을 지적해 고칠 점을 알려 주었다.
“저놈, 진짜 훈련병 맞냐?”
“김민준 말씀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헌터군 병장이 입대 전날로 회귀했다든가 그런 건 아니고?”
“…그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말입니다.”
조교들은 김민준 한 명이 일으킨 변화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본래라면 평가 점수 하점을 받을 훈련병들이었다.
그런데 같은 훈련병 한 명의 지휘에, 하운드들이 지금까지 동행했던 어느 조보다도 빠르게 쓰러졌다.
“저놈들은 중으로 하고, 김민준은 최상으로 하자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상황이 종료된 것을 확인하고,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마지막 조와 함께 던전 밖으로 나와, 소대장에게 보고하면 이번 기수의 훈련은 종료였다.
“내일부터 4박 5일 외박이구만. 헌터 조교는 이거 아니면 못 하지.”
“김호준 상병님은 따로 일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왜. 술 한잔하자고?”
그렇게 조교들이 잡담을 나누는 도중.
드르르르-
불길한 소리와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던전 내부가 진동했다.
“망할… 던전 폐쇄되기 전에 빨리 무전 날려! 빨리!”
“예, 예!”
조교들은 허겁지겁 무전기를 꺼내, 긴급 상황을 보고했다.
김민준의 동기들 또한, 갑작스러운 이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야, 이거 뭐야. 상황 종료된 거 아니냐?”
동기들은 김민준을 쳐다보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여기 변화형 던전이잖아. 개방형이고. 그냥 열려 있는 문이 닫힌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김민준의 태평한 대답.
훈련병들은 순식간에 메워진 던전 입구를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게 말이 되냐?”
“하운드 다 잡고 딱 나가는 타이밍에 폐쇄형으로 바뀐다고?”
지금까지 수많은 헌터 훈련병들이 거쳐 갔던 훈련 장소다.
조교들이나 근처 부대의 간부들이 일과가 끝나면 헬스장 드나들 듯 오가는 곳이기도 했고.
즉, 변수가 거의 없다시피 한 안전한 던전이라는 말이었다.
“김호준 상병님! 안 됩니다. 던전이 너무 빨리 변했습니다.”
“무전 안 되냐?”
“그렇습니다!”
“일단 애들부터 모아!”
훈련소 조교들은 던전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것을 확인하고, 훈련병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들도 알아차렸겠지만, 던전에서 변수가 발생했다.”
김호준 상병은 별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매뉴얼대로 이곳에서 1시간 대기한다. 그 뒤에도 던전 입구에 변화가 없으면, 앞쪽을 향해 움직인다.”
폐쇄형 던전에서 나갈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처리하는 것뿐.
예외가 있다면, 개방형 던전이 폐쇄형으로 바뀐 경우다.
이 경우에는, 가만히 기다리면 다시 개방형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실전 경험이 없는 훈련병 6명하고 조교 2명이라.’
거기다 조교들은 어디까지나 훈련병들의 관리와 감독을 위해 들어온 상태.
이렇다 할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
‘몬스터를 잘못 만나면 그대로 끝이다.’
변수가 발생한 던전은, 어떤 몬스터가 출현할지 몰랐으니까.
“다들. 앞쪽으로 움직인다. 정렬해.”
1시간이 지났지만, 던전의 입구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호준 상병은 훈련병들을 이끌고 던전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 망했다. 훈련 마지막 날에 뭐 이딴 개 같은 일이 터져?”
“고블린만 나와도 우리 다 죽었다.”
훈련병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조교들의 뒤에 따라붙었다.
‘냄새가 나긴 하는데… 뭔가 익숙하단 말이지.’
김민준은 던전 안쪽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이스가르드에서 저런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었는데.
“무전은 아직도 안 되냐.”
“그렇습니다.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너, 맨몸으로 고블린 상대할 수 있냐?”
“…장비가 없으면 힘듭니다.”
“상황 한번 엿 같네.”
앞서 걷던 조교들은 답이 없는 상황에, 입에서 험한 말을 내뱉었다.
‘주 무기가 없으면 빡센데.’
상병인 김호준 역시, 주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고블린 한 마리를 처치하는 것만으로도 10분 이상이 걸린다.
‘뒤에 있는 놈들은 보호 슈트를 착용하고 있다곤 해도, 시간문제다.’
보호 슈트는 어디까지나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장비.
철저히 방어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 보니,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무식하게 무겁다 보니, 체력이 빨리 고갈되기도 했고.
‘저놈들을 방패막이로 세울 수는 없다.’
보호 슈트의 방어 성능은 우수하다.
훈련병들에게 전방을 맡긴다면 살아 돌아갈 확률이 높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자신도 겪었던 그 개 같은 훈련을 꿋꿋이 버텨 온 녀석들이다.
수많은 던전을 클리어하고 상병을 단 자신이, 아무 경험 없는 훈련병들을 전방으로 배치한다?
‘안 될 일이다.’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김호준이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향하던 도중.
“컥….”
“억!”
그를 시작으로, 옆에서 같이 이동하던 조교까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조교님!”
“괜찮으십니까!”
훈련병들은 그 광경을 보고, 반사적으로 조교들을 향해 달려갔다.
“뒤로 빠져! 이 이상 앞으로 나오면 너희들도 똑같이 된다.”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김민준은 동기들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었다.
녀석들이 30미터 이상 뒤로 밀린 것을 확인하고, 앞을 향해 달렸다.
‘마기를 품었다 이거지?’
왠지 익숙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마기였을 줄이야.
‘넌 절대 안 놓친다!’
김민준은 조교들을 데리고 입구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한 뒤, 모습을 감췄다.
“아니, 야! 너 미쳤냐?”
“돌아와! 훈련 매뉴얼 있잖아!”
“김민준! 너 진짜 뒤진다고!”
동기들이 김민준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뜯어말렸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즐거운 표정으로 속도를 올렸다.
**
김민준은 마기가 짙어지는 방향을 향해 이동했다.
‘거리가 이 정도 떨어져 있는데 조교들이 기절했단 말이지.’
마기의 농도를 보면, 평범한 몬스터는 아니다.
이스가르드에서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마기를 품고 있었지만, 지구는 달랐다.
‘최전방 군부대에서 가끔씩 출현한다고 했었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많아 봐야 한 마리에서 두 마리.
마기를 품은 몬스터는 그만큼 마주칠 확률이 낮았다.
‘나한테는 보물이지.’
평범한 인간들은 마기가 몸 안으로 스며드는 순간, 발작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는다.
그건 이스가르드인들도 마찬가지.
그놈들의 경우에는, 마기를 막아 주는 특별한 가호를 두르고 몬스터들을 상대했었다.
“너 뭐야?”
잠시 후.
문제의 몬스터를 마주한 김민준의 얼굴에서, 황당함과 당혹감이 묻어났다.
“으르르….”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이스가르드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인 다크 하운드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하운드와 다크 하운드.
앞에 단어만 하나 덧붙었을 뿐인데도, 다크 하운드 쪽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하운드는 훈련을 거친 훈련병들도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검은 놈은 숙련된 헌터군 병사 여러 명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
“지긋지긋한 놈. 그래도 이럴 땐 반갑다? 마기가 좀 필요했거든.”
김민준은 이스가르드에 소환되고 나서, 처음 1년간은 지옥을 경험했었다.
그때는 마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에, 저 검은 개 한 마리를 잡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다.
“크레에엑!”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던 다크 하운드가 입을 벌리며, 공격하려 할 때였다.
“이놈들은 어떻게 된 게 발전이 하나도 없어?”
놈의 행동을 예상한 김민준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다크 하운드가 공격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3초 정도.
그에게 있어서는 매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크르륵.”
1초 만에 다크 하운드에게 도달한 김민준은 놈의 목덜미를 잡고, 그대로 쥐어뜯듯이 잡아 뜯었다.
놈은 검은 피를 세차게 뿜어내며 절명했다.
스스스-
동시에 놈의 몸 안에 있던 마기도 함께 새어 나와, 던전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더러운 것도 여전하고.”
김민준은 코웃음을 치며, 점점 짙어지는 마기를 흡수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밖으로 뻗어 가던 연기가 방향을 틀어 몸속으로 들어갔다.
다크 하운드가 까다로운 이유.
그것은 놈들이 죽은 뒤에 방출해 내는 마기 때문이었다.
“피 냄새 한번 고약하네.”
거기다 다크 하운드의 몸 안에 흐르는 피는 독 성분이 있다.
보통 사람이 뒤집어쓰게 되면, 피부가 3일 안으로 썩어들어 간다.
그 때문에 이스가르드인들은 원거리에서 다크 하운드를 죽인 뒤, 새어 나오는 마기를 사제가 막는 방식으로 상대했다.
“후우. 오랜만에 마기가 들어오니까 불끈불끈하네.”
김민준은 마기의 기운이 몸 안에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다크 하운드치고 상당히 많은 마기가 응축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을 스마트폰 배터리로 비유하자면, 0%에서 5%까지 충전된 수준.
“그런데 왜 지구에 이놈이 있는 거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마기를 충전하게 된 건 좋았지만, 지구에서 다크 하운드를 만나게 된 것이 영 찜찜했다.
물론 던전에서 출현한 놈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다크 하운드가 나타났다는 기록 자체가 없었으니까.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가 차원을 이동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흑마법사의 정점에 오른 자신이나, 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성녀 정도가 아니면 차원 이동은 불가능했다.
그 정도로 고도의 기술이며, 제약이 많다는 말이다.
김민준은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다크 하운드의 시체를 들어 올렸다.
“보고하려면 이놈의 시체가 있어야겠지.”
놈의 마기를 모두 빨아들여, 다크 하운드는 그냥 하운드와 다를 바 없는 외관이 된 상태였다.
**
같은 시간.
던전 입구 근처에서 누워 있던 조교들이, 의식을 되찾았는지 몸을 일으켰다.
“끄어!”
“진짜 개 같은 기분이네. 너희들! 괜찮냐?”
김호준 상병은 의식을 잃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황급히 고개를 돌려 훈련병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자신들 말고는 아무 이상 없는 듯했다.
“조교님. 그런데….”
“그런데 뭐?”
“김민준이 던전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