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헌터군 훈련소-3
오.
그렇단 말이지.
김민준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동기들을 향해 너희들 몫까지 맛있게 먹겠다고 말한 뒤, 실실 웃었다.
“개 같은 놈.”
“제발 좀 죽었으면.”
나머지에 해당하는 훈련병들은 입맛만 다시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다들 주목!”
단상 위에 있던 소대장이 시선을 모은다.
“훈련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는데, 겨우 절반만 기준치에 통과했다. 이번 기수는 저번 기수에 비해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
사실 그렇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소대장은 일부러 격차를 크게 부풀렸다.
“이대로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으면, 한 달 안에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갈 거다. 내 말이 거짓말 같나?”
물론 이것도 과장된 사실이다.
소대장은 훈련병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매 기수마다 이런 거짓말을 해 위기감을 조성했다.
“쓴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소대장이 포상을 하나 걸겠다.”
채찍으로 때렸으니, 이제 당근을 줄 차례.
“이제 훈련소 수료까지 7일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있는 던전 적응 훈련이 가장 평가 점수가 높다.”
소대장은 던전 적응 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훈련병 한 명에게, 언제든 사용 가능한 포상 휴가를 주겠다며 말했다.
“당연히 긴급 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훈련도 빼 준다.”
하루도 아니고, 무려 2박 3일의 포상 휴가.
거기다 자대에 들어가서도 유효한 휴가권이다.
이쯤 오면 장병들이 의욕을 불태워야 했다.
‘응? 얘네들 표정 왜 이래.’
소대장은 예상외의 시들한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휴가권의 주인이 정해진 것처럼 체념한 듯한 훈련병들의 표정.
‘이번에도 잘 먹을게, 얘들아.’
김민준은 동기들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어 줬다.
군대 생활.
생각보다 너무 즐거운걸?
**
“와. 돌았다. 이게 헌터리아라고?”
“소고기 패티가 몇 겹이냐.”
훈련병들은 최후의 만찬으로 불리는 햄버거를 보고 환호성을 뱉었다.
왜 헌터리아가 최후의 만찬으로 불리느냐고 묻는다면, 이 뒤에 있을 최악의 훈련이 장병들의 영혼을 털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갈 땐 가더라도, 헌터리아는 괜찮잖아?”
“뭔 죽을 사람처럼 말하냐?”
김민준은 입가에 소스를 왕창 묻히며 먹는 동기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야. 이거 미쳤다. 내가 이 정도인 줄 알았으면, 진작 죽기 살기로 달렸다.”
동기의 극찬에 김민준도 헌터리아를 한 입 베어 물어 본다.
주르륵-
“오, 미친!”
패티에서 배어 나오는 육즙이 입가를 적시다 못해 입 밖으로 넘쳐흘렀다.
일반 햄버거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
밖에서 이 정도 퀄리티의 햄버거를 사 먹으려면, 기본 만 원은 무슨.
2만 원은 써야 할 정도였다.
“옆 훈련소는 군대리아 나온다더라.”
“군대리아? 거기는 맛있냐?”
“먹으면 변비에 직빵이라는데.”
“그거 먹을 바에 놋데리아 먹고 말지.”
김민준은 동기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대화를 이어 갔다.
딱히 그들을 제재하는 간부는 없었다.
훈련소 수료 전, 최악의 훈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
훈련병들은 오후에 있을 던전 적응 훈련을 대비해, 오전에는 이론 교육을 받았다.
“던전 안에서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먼저 1번 항목부터 설명하자면….”
훈련병들에게는 마지막 훈련이며, 가장 중요한 훈련.
그러나 소대장의 자장가 같은 강의에, 그들은 하나둘 고개를 떨궜다.
헌터군 훈련소에 입소하고 나서,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강도 높은 훈련만 계속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지. 스킬인가.’
그리고 하루에 1시간 정도 수면을 취해 온 김민준도 마찬가지.
분명 육체적인 피로는 없는데, 소대장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잠이 솔솔 오는 느낌이었다.
“자, 그럼 여기까지 하고. 다들 실전이라 생각하고 훈련에 임하도록 한다.”
소대장은 절반 이상의 훈련병들이 잠에 빠졌음에도 딱히 깨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잠에 빠질수록 좋았다.
그래야 녀석들이 던전의 매운맛을 톡톡히 볼 테니까.
**
오후 2시.
훈련병들은 부대에서 1㎞ 가까이 떨어진 던전 앞에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동굴과 유사하게 생긴 던전 입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가 오전에 설명했던 던전이며, 훈련장이다.”
소대장은 작은 지휘봉을 꺼내, 한쪽 지점을 가리켰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6명씩 조를 짜, 저 변화형 던전 안으로 들어간다.”
실시간으로 내부 구조가 변하는 변화형 던전.
던전은 보통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는 순간 사라지지만, 간혹 저렇게 모습을 유지한 채로 남아 있는 던전도 있었다.
그럴 경우, 헌터들에게는 훌륭한 훈련장이 되어 주었다.
“너희들은 저 던전 안에서 1시간 동안 하운드를 상대하면 된다. 무슨 수단을 써도 상관없다. 위기 대처 능력과 전투 능력을 주로 보겠다.”
소대장이 설명을 마침과 동시에, 군용 차량이 줄지어 들어왔다.
“크르륵!”
“…저걸 상대하라고?”
훈련병들은 실물로는 처음 보는 몬스터, 하운드를 목격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저 앞에 배치된 두꺼운 보호 슈트들을 보면, 자신들이 어떤 훈련을 받게 될지 예상할 수 있었으니.
“겨우 하운드가지고 겁먹을 거면 헌터군에는 왜 지원했나!”
소대장은 겁먹은 훈련병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하운드는 몬스터 중 가장 약한 개체다.
훈련을 거친 병사들에게 있어, 협동만 잘한다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라는 말.
“자대 가서도 그딴 식으로 할 거냐!”
“아닙니다!”
“소대장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냐고!”
“아닙니다아!”
“그럼 빨리 보호 슈트 착용하고 준비해!”
소대장의 일갈에 훈련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건 뭐 이렇게 무식하게 만들어 놨어.’
김민준도 다른 동기들을 따라 슈트를 입었다.
착용감이라고는 1도 고려하지 않은 슈트.
그냥 두껍기만 한 철판을 압축시킨 느낌이다.
이런 무식한 슈트가 하나에 5천만 원씩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게 마지막 훈련이라고 했나.’
김민준은 철창에 갇힌 하운드들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중에는 같이 노려보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겁먹은 듯 시선을 회피하는 놈들도 있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 배치부터 본격적인 헌터군 생활이라고 했지.’
훈련소 생활을 게임에 비유해 본다면, 기껏해야 튜토리얼을 완료한 수준이라는 조교의 말이 떠올랐다.
“128번 헌터군 훈련병 김민준. 소대장님께 질문 있습니다.”
“해 봐.”
김민준은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무식한 철판을 벗고 싶어, 손을 높이 들었다.
“저 하운드를 처리하면 훈련은 끝나는 겁니까?”
“그래. 제한 시간 내에 모두 처리만 한다면 문제없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자만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할 법도 한 상황.
하지만 말하는 대상이 훈련 성적 압도적 1위인 김민준이다 보니, 소대장은 순순히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에이. 아무리 훈련 1등이었어도, 저건 다르지.”
“야. 너 진짜 그러다 다친다. 말이 훈련이지, 그냥 반실전이라고.”
동기들은 아무리 김민준이라고 해도, 하운드를 단시간에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보호 슈트만 빨리 벗고 싶다. 답답하네.’
정작 본인은 별생각이 없었다.
“지금부터 던전 적응 훈련을 시작한다! 1조!”
“예!”
잠시 후.
훈련병들의 감독 역과 보호 역을 동시에 수행할 조교들이 도착하고, 훈련이 개시되었다.
‘아. 이런 미친!’
빠르게 훈련을 끝낼 생각이었던 김민준은 하필 마지막 조에 걸렸다.
꼼짝없이 다른 동기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야. 하운드 달려들면 쫄지 말고, 이렇게 다리 두 개씩 잡은 뒤에 반으로 접어 버려. 이렇게.”
김민준은 하운드를 10초 안에 죽일 수 있는 꿀팁을 동기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미친 소리 하네.”
“그건 이승호 병장이 와도 안 되겠다.”
물론 동기들에게 미친놈 취급을 받았지만.
“하운드 투입!”
“투입하겠습니다!”
1조가 던전으로 들어간 지 20분쯤 지났을까.
소대장의 지시에, 조교가 던전 입구에서 하운드의 속박을 풀었다.
자유를 되찾은 3마리의 하운드는 던전 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하운드가 우리한테 안 달려드는 게 신기하네.”
“몬스터 본능이지 뭐. 하루 종일 갇혀 있다가 눈앞에 집이 있다고 생각해 봐라. 안 들어가고 배기나.”
김민준은 동기와 잡담을 나누며 자신의 순서가 오길 가만히 기다렸다.
“허억… 헉….”
“후욱….”
1시간이 지나고, 1조가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다.
깔끔했던 보호 슈트에 잇자국과 발톱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한 고전을 치른 듯했다.
“1조. 고생 많았다. 뒤로 빠져서 대기해라.”
소대장은 감독 역으로 들어간 병사의 진술에 따라, 꼼꼼히 평가표를 작성했다.
“그다음 2조! 바로 들어가라!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훈련 내용에 대해 묻거나 발설하는 순간 강제 퇴소다.”
소대장의 으름장에 정보를 캐내려던 훈련병들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다음!”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드디어 마지막 순서인 30조의 차례가 왔다.
‘이럴 거면 보호 슈트는 왜 미리 입혀 놨어?’
김민준은 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슈트에 툴툴거리며,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
30조가 던전 안으로 들어간 지 30분.
김민준은 하품을 하며, 동기들의 뒤를 따랐다.
그냥 던전 입구에서 가만히 기다리다가 하운드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면 쉬웠겠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동기들은 훈련이 되질 않는다.
‘나만큼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 또 없지.’
자신은 이세계에서 구를 만큼 구르고, 힘을 얻어 귀환했다지만 다른 훈련병들은 다르다.
최대한 훈련소에서 많이 배워 가야 했다.
“이제 슬슬 올 것 같은데.”
“오케이. 포지션 잡자. 최대 4마리까지 생각하고 있어라.”
장병들은 하운드를 상대하기에 수월한 지형을 선점한 뒤, 각자 맡은 포지션으로 이동했다.
김민준은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5명의 동기들을 전부 케어해 줄 생각이었다.
“온다!”
잠시 후.
하운드 3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훈련병들을 향해 달려왔다.
“쫄지 말고 그냥 싸워! 보호 슈트 튼튼하니까!”
김민준은 머뭇거리는 동기들에게 겁먹지 말라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며, 안쪽으로 파고들어 오는 하운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크릉!”
“어쭈, 피해?”
하운드는 몸을 틀어 김민준의 주먹을 피한 뒤,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미, 미친!”
“어, 어어!”
장병들은 위로 튀어 오른 하운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우물쭈물했다.
미리 동기들과 수차례 의견을 나눴는데도 막상 실전이 되니 몸이 굳어 버리는 듯했다.
“어딜 가, 이놈아.”
김민준은 땅을 박차고 점프해 하운드의 뒷다리를 잡아, 땅에 내동댕이쳤다.
“깨엥!”
“깨엥은 무슨. 그냥 뒤져!”
그리고 놈이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몸통을 가격했다.
‘흑마 보통 펀치!’
뻐억!
단 한 대.
주먹질 한 번에, 하운드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미친… 레드 스톤 들어 올렸다는 게 진짜였어?’
‘한 방 만에 저렇게 된다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조교들은 김민준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