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4화 (4/212)

4. 헌터군 훈련소-2

“그럼 그쪽이 생각했던 헌터는 어떤 이미지인데요?”

“막 멋있는 스킬 쓰고, 몬스터 잡으면 레벨 쭉쭉 오르는 헌터를 생각했습니다.”

아.

그럼 이스가르드로 가면 딱일 텐데.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힘내 보자고 훈련병의 어깨를 툭 쳤다.

“30분 안에 완주한 훈련병에게는 외출권을 주겠다.”

출발 전, 이승호가 품에서 외출권을 꺼내 보라는 듯이 흔들었다.

훈련병들의 사기 충전용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외출권은 자신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는 거의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웠다.

“하아… 또 저러시네.”

“저건 캡틴 아프리카 데려와도 안 됩니다.”

훈련병들은 한두 번 당한 게 아닌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절대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주고, 당근을 흔들다니.

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김민준만이 눈을 빛냈다.

‘저건 내 거다.’

훈련소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치킨이 땡기기 시작했다.

김민준은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가장 선두에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빨리 올라가시면 나중에 힘듭니다!”

“체력 배분을 잘하셔야 됩니다!”

동기들은 계단을 뛰어가듯이 올라가는 김민준을 보고 나중에 큰일 난다고 말렸지만,

‘이게 힘들다고?’

정작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치킨과 던파가 나를 기다린다!’

“저, 저 자식 뭐 하는 놈이야?”

병장 이승호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끝부분에 다다르려 하는 김민준을 보고 경악했다.

레드 스톤을 들어 올릴 때도 심상치 않았는데, 경사가 점점 높아지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을 줄은.

“허억! 저게 말이 되냐.”

“보고도 안 믿긴다.”

다른 훈련병들이 1시간 이상 올라가야 하는 계단을 김민준은 고작 20분 만에 완주했다.

사실 이것도 천천히 즐기면서 한 수준이었다.

“외출권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 어어… 여기 있다.”

이승호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김민준을 보며, 순순히 외출권을 건네주었다.

‘이런 미친놈. 저 자식 수료하고 자대 배치받으면… 아니지. 체력이 좋다고 다가 아니다.’

헌터군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몬스터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물론 기본이 되는 스텟들이 받쳐 주는 건 당연히 필수고.

‘아직 판단하긴 이르지만, 저 녀석을 눈여겨볼 필요는 있겠다.’

전반적인 체력 훈련은 오후 6시가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훈련병들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을 하며, 다리를 후들거리고 있었다.

“스, 스텟 올랐다! 체력이 1 올랐다!”

“와… 원래 스텟 몇이었습니까?”

그중 한 명이 스텟이 올랐다며 소리를 질렀다.

김민준은 스텟 1에 서로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헌터는 약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스가르드에서 몬스터를 잡다 보면, 스텟이 10단위로 오르는 건 일도 아니었기에.

‘아니지. 아직 입대한 지 1일 차인데.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김민준은 고개를 저으며 동기들을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럼 다들 식사 맛있게 하고, 그 뒤는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병장 이승호는 내일 있을 훈련을 간단히 안내한 뒤, 자리를 떠났다.

“와… 미친.”

김민준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래서 헌터군, 헌터군 하는 거였나.

한식, 중식, 양식, 거기다 디저트류까지.

이곳이 군대 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퀄리티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보통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교도소 음식과 비교될 정도로 군대 음식은 최악이라고 들었는데.

헌터군쯤 되면 격이 다르다 이건가.

“이거 전부 먹어도 되나요?”

“예. 뷔페식입니다.”

이런 미친!

거기다 뷔페식이란다!

동기들의 설명을 들어 보자면, 나름 잘나가는 셰프들도 섞여 있다고 했다.

“이거 요즘에는 일반군도 이렇게 잘 나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헌터군 훈련소만 이럽니다. 걔들은 오늘 코다리 조림이랑 해물 비빔 소스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오우 쉣.”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만 들어도 더럽게 맛없을 거라는 느낌이 확 왔다.

김민준은 헌터군으로 들어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안 맞으면 없는 마기를 쥐어짜 내서라도 튀려고 했는데.’

이스가드르에서 미친 듯이 구르고 왔는데, 지구로 귀환하자마자 군대로 오란다.

누가 가고 싶겠는가?

하지만 오늘 그 지옥 같다는 훈련을 받아 본 결과, 김민준은 이곳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당히 체력 떨어지지 말라고 운동도 시켜 줘, 맛있는 밥도 줘. 돈도 빵빵하게 줘.’

거기에 던파 13강 종결 무기까지!

다른 남성들이 들으면 미쳤냐고 쌍욕을 박는 수준이겠지만, 김민준은 정말 군대가 괜찮았다.

“오늘 외출권 따셨는데, 언제 사용하실 겁니까?”

“전 이승호 병장님한테 외출권 따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황홀한 군대 음식의 맛을 즐기는 중, 훈련병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앉았다.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그들과 말을 나눴다.

자신이 흑마법사일 적, 이스가르드의 사람들은 불길하다며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훈련소 생활… 생각보다 할 만하네.’

김민준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근처에 있는 게임방으로 향했다.

헌터군 훈련소는 일반군과 다르게, 굉장히 개방적이었다.

두발은 훈련상 스포츠 컷.

일과 시간이 끝나면 아무런 터치도 없다.

거기다 저녁 점호도 없다니.

정작 여기가 군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래도 중간에 훈련을 이수하지 못하고 퇴소하는 훈련병들이 많습니다.”

옆자리에서 그의 말을 듣던 훈련병이, 잘해 주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거의 뭐 사람을 한계로 몰아넣는 무식한 훈련만 시키는데, 이렇게라도 풀어 주지 않으면 열이면 열 퇴소할 겁니다.”

무식한 훈련이라.

아까 모래주머니를 달고 계단을 오르는 뭐 그런 것 말하는 건가?

“거기다 마지막 주에는 훈련 강도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가는데,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던 훈련병은 김민준의 모니터 화면을 슥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던파다.

주위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던파를 하고 있다.

“왜요? 그쪽도 던파 하세요?”

“아… 아닙니다. 전 먼저 들어가서 쉬겠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던파에 몰입한 김민준을 보니, 가까이 지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은 1시간 정도만 자 두지, 뭐.’

그날.

김민준은 던파 피로도를 알뜰하게 전부 소진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

훈련 마지막 주.

훈련병들은 무식한 체력 강화 훈련을 열심히 버티며, 스텟을 하나둘씩 올려 갔다.

-이름이 뭐예요~

새벽 6시.

생활관에서 기상나팔 소리가 아닌, 아이돌의 싱그러운 목소리가 훈련병들의 잠을 깨웠다.

“끄어어….”

“허리 끊어질 것 같다… 씁.”

싸구려 매트리스가 아닌, 푹신한 침대 여기저기서 앓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잘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여기 매트리스 죽이네.”

김민준은 무려 2시간이나 수면을 취해, 개운한 기분을 느끼며 일어났다.

이스가르드에서는 하루에 1시간 자면 많이 자는 수준이었는데, 역시 고향에 돌아오니 나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진짜 김민준 너는 대단하다.”

“하나도 안 피곤해 보이네.”

고단한 훈련의 연속이다 보니, 동기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특히 압도적인 성적으로 훈련을 소화해 내는 김민준을 보며, 그들은 오히려 의욕을 다졌다.

“어제 자로 던파 만렙 10개 찍었다.”

“미친 자슥….”

“어제도 게임 하러 갔냐? 어제 훈련 개빡셌는데.”

저렇게 즐길 걸 다 즐기면서도 훈련 1등이라니.

정녕 저 인간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빨리 나가자. 구보해야지.”

다른 훈련병들 역시 오락 시설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곯아떨어지기 바빴으니까.

그들은 뭉그적대며 전투복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새벽 6시 10분부터 2시간 동안 실시되는 헌터 구보를 하기 위해서다.

“2시간에 40㎞를 어떻게 뛰어.”

“미쳤다. 그냥 나를 죽여라.”

“헌터도 사람이야 사람!”

훈련병들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연병장으로 향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연병장은 훈련병들로 가득 채워졌다.

“알아서 정렬하고, 지금부터 1분간 몸 푼다. 실시.”

“실시!”

소대장으로 보이는 간부가 단상 위로 올라가, 1분 뒤 헌터 구보를 실시하겠다며 말했다.

“몸 풀면서 듣도록. 우리 헌터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식 동작을 대충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와 열 제대로 맞춰!”

“예!”

“알겠습니다!”

“헌터 군도 군인이다! 자대 가서도 그렇게 어물쩍거릴 거냐!”

“아닙니다!”

소대장의 일갈에, 훈련병들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열을 맞췄다.

“2시간 안에 40㎞ 달성 못 한 훈련병들은 아침밥 없다.”

갑작스러운 소대장의 폭탄 발언에, 훈련병들이 저마다 탄식했다.

“그러니까 안 되면 악으로라도 되게 해 봐. 출발한다!”

소대장의 출발 신호에, 훈련병들이 우르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음. 이번 기수는 살짝 불안한데.’

그사이.

소대장은 각 훈련병들의 평가표를 읽어 가며, 앞으로의 훈련 강도를 더 높여야 하나 고민했다.

던전을 안전하게 클리어하는 것에 있어서, 체력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몬스터와 처음 보는 지형의 던전은 훈련병들의 체력을 그만큼 빠르게 갉아먹으니까.

‘음? 이 녀석은….’

평가표를 하나둘 읽어 내려가는 도중.

유독 눈에 띄는 평가가 보였다.

‘김민준이라.’

이승호 병장이 김민준의 평가표에, 장래가 유망한 헌터라며 강조 표시를 해 놓다니.

‘그러고 보니 이놈, 훈련 성적이 압도적으로 좋아.’

저런 훈련병을 아직까지 몰라봤다니.

‘이런 놈들은 후방으로 보내면 안 되지. 손해야, 손해.’

소대장은 앞으로의 훈련까지 지켜본 뒤, 김민준을 최전방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1시간 58분 컷!”

“물! 물 좀!”

“헤엑! 헥!”

헌터 구보가 끝나자, 훈련병들은 흙바닥에 드러누워 대자로 뻗었다.

김민준은 적당히 즐기며 1시간 만에 구보를 끝낸 뒤, 태평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자. 입 벌려라. 물 들어간다.”

그는 동기들에게 자신의 수통에 든 물을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이 정도야 자신에게 있어, 가벼운 아침 조깅 수준이었으니.

“야. 김민준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것 봐라.”

“아니, 40㎞를 1시간 만에 뛴다고? 저게 말이 되냐?”

“괴물 같은 놈.”

“뭐? 물 마시기 싫다고?”

“괴물 같은 체력을 자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동기님.”

김민준은 동기들과 가볍게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아예 수통을 통째로 던져 주었다.

소대장이 정한 제한 시간이 끝나고, 뒤늦게 들어온 훈련병들은 분한 듯이 발을 굴렀다.

“아. 오늘 아침 헌터리안데!”

“헌터리아는 또 뭐냐. 놋데리아랑 비슷한 그거냐?”

“그딴 곳이랑 비교하지 마라. 셰프들이 비싼 소고기 패티를 더블로 올려 주는 햄버거가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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