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귀환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만 묻겠습니다. 진정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네.”
신을 모시는 재단 앞.
드넓은 공간 안에, 남성과 여성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고 돌려보내 주세요. 이 정도 부려 먹었으면 됐죠.”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고 있는 남성이 불쑥 몸을 일으켰다.
이곳에서 미놀드라고 불리고 있는 한국인, 김민준이었다.
“하아….”
성녀라고 불리는 여성은 그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미워서 흑마법사라는 직업을 드린 게 아닙니다.”
“전 성녀님이 미워 죽겠는데요.”
“입이 험한 게 조금 문제지만, 뒤에서 묵묵히 우리 제국을 위해 도와주신 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녀는 김민준을 설득하기 위해 한동안 어린아이를 달래는 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세계에서 흑마법사는 나쁜 인식이 있는 직업이었지만, 당신으로 인해 그 인식을 바꿀 계기가 생겼습니다. 당신이 그동안 이룬 업적은 세지도 못할 정도고요.”
“그럼 뭐 해요. 이곳 사람들은 나를 몬스터 보듯이 쳐다보던데.”
“그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김민준은 성녀의 회유를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는 이세계에서 천대를 받으면서도, 흑마법사의 정점에 올랐다.
힘, 명예, 그리고 부.
원한다면 여자들까지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위치.
‘어째서….’
하지만 김민준은 그것들을 포기하는 데 아무 미련이 없어 보였다.
“당신이 가진 힘. 그리고 명예. 막대한 부. 원하신다면 뭐든지 취할 수 있으실 텐데, 굳이 그걸 버리려고 하시나요.”
“이딴 같잖은 연극은 그만하자, 이제.”
“네?”
“토 나올 것 같다고.”
김민준은 성녀를 노려보았다.
당장에라도 죽일 듯한 눈빛.
성녀는 그 눈빛에, 흠칫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억지로 나를 끌고 와서 미친 듯이 굴려 놓고. 이제 와서 뭐? 여기서 네놈들 뒤나 열심히 닦으라고?”
그리고 성녀에게 보라는 듯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거 알아? 여기 새겨진 문양만 없앨 수 있었으면, 너부터 죽었어.”
현재 김민준의 손등에는 성녀의 가호가 새겨져 있었다.
말이 가호지, 목줄을 채운 것이나 다름없는 문양.
“지금까지 당신이 받은 대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남아만 주신다면, 제가 뭐든지 하겠습니다. 미놀드! 당신이 없으면 우리 제국은….”
“치킨 가져와.”
“…예?”
“그리고 족발도.”
처음 듣는 단어에, 성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거 알아? 여기 음식 더럽게 맛없는 거. 무슨 칼로리 높은 과자나 먹이고.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
“그, 그건! 앞으로 개선해 보겠습니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그다음은 속도 빵빵한 인터넷이랑 괴물 같은 사양의 컴퓨터 가져와.”
“…….”
성녀는 입을 닫고 침묵을 유지했다.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이것이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이유다.
물론 성녀가 내린 직업이 흑마법사라는 인식 쓰레기에, 성능 쓰레기인 직업이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미놀드 님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니, 알겠습니다. 귀환 의식을 시작하죠.”
결국 성녀는 체념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오른편에 설치된 마법진으로 향했다.
“빨리 끝내라. 돌아가면 던파 4차 각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아니면 5차 각성이 나왔을 수도 있지.”
“더, 던… 파? 그게 뭔가요?”
“갓겜 중의 갓겜이지. 돌아가면 출석 체크부터 할 거야. 그리고 휴면 유저 보상까지 받을 거다.”
“…하아. 알겠습니다.”
치킨이니, 던파니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결국 성녀는 미놀드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 이상 그를 자극했다가는 무슨 난동을 부릴지 몰랐으니까.
잠시 후.
마법진 위에서 귀환 의식이 시작됐다.
“기사 안 불러도 되겠냐? 너 문양 제거하면 나한테 죽을 수도 있는데?”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모두 제가 자초한 일이니까요.”
“재미없기는.”
김민준은 성녀의 가호가 사라질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다음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하니까, 넌 나가 있어.”
“…예? 아악!”
김민준은 손등의 문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성녀를 들어 멀리 날렸다.
물론, 최소한의 배려로 푹신한 천이 깔려 있는 곳을 향해 신사답게 던졌다.
“내가 어떻게 쌓아 온 힘인데, 이걸 놔두고 갈 것 같냐? 힘을 포기한다는 건 당연히 구라지.”
스스스스-
김민준의 양손에서 검은 마기가 일렁거리며, 세차게 방출되기 시작했다.
마기는 순식간에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포탈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만나서 엿 같았고, 다시 만나면 나한테 뚝배기 깨질 줄 알아.”
“미놀드 님! 차원 이동은 그렇게 섣불리 할 것이….”
“알아.”
그래서 1,000번 넘게 연습했다.
흑마법의 정점에 오른 이 내가 말이다.
김민준은 성녀를 향해 중지를 한 번 치켜세워 준 뒤, 포탈 안으로 몸을 날렸다.
“니네 엄마 아빠 만수무강해라. 이 개 같은 년아!”
기기긱!
검은 포탈은 김민준이 들어가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아….”
홀로 남은 성녀는 골치 아픈 듯이 눈을 감았다.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미친 자식.”
**
파지지직!
2평 남짓한 원룸 안에 포탈이 열렸다.
“크억!”
그리고 남성을 하나 뱉어 낸 뒤, 작은 입자가 되어 흩어졌다.
“후… 차원 이동하다가 압사하는 줄 알았네.”
김민준은 몸을 일으킨 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귀환을 대비하며 틈틈이 연마해 온 흑마법이었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한국 아니어도 좋으니까, 제발 지구 안이기만 해라. 부탁한다.”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면 골치 아파진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실험해 본 좌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는 먼저 책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아… 이 그리운 감촉.”
약간 어설픈 손놀림으로 조작해 화면을 띄워 보니, 그가 설정했던 배경 화면과 함께 한국 시간이 뜬다.
[2020년 1월 25일]
[오전 5시 1분]
“내 폰 확실하네.”
김민준은 배경 화면으로 지정된 던파 일러스트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건 예전에 그가 사비를 주고 웹툰 지망생에게 개인적으로 외뢰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여긴 내가 살던 원룸 안이고.”
곰팡이 핀 벽과 천장.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게이밍 노트북 한 대.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김민준은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쁨에 소리를 질렀다.
“아, 내 정신 좀 봐라. 던파 피로도 초기화 50분 남았잖아!”
김민준은 재빠르게 노트북을 조작해, 게임을 실행했다.
20년 넘게 이세계에서 생활한 남성치고, 익숙한 조작이었다.
“내 예상대로 4차 각성까지 나왔네. 휴면 보상받을 수 있을라나 몰라.”
**
김민준.
2020년 기준으로, 21살이 된 청년이다.
그는 2018년 수능 준비로 한창인 고등학교 3학년 때, 성녀의 부름에 의해 다른 이세계로 소환됐다.
그 이세계의 이름은 이스가르드.
게임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었다.
흔한 먼치킨 양판소 클리셰대로 성녀에게 특별한 힘을 받아 무쌍이라도 찍었다면 좋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민준은 성녀에게 흑마법사라는 직업을 받아, 공식적으로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활동했다.
왜냐.
그만큼 흑마법사가 천대받는 직업군이었으니까.
“개 같은 거. 원래는 그놈들 도와줄 생각 1도 없었는데.”
김민준은 강해지기 위해, 아니.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주변의 몬스터들과, 때로는 적국의 병사들과도 미친 듯이 싸웠다.
강해지다 보면, 분명히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스킬이 하나쯤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물론, 그 일이 그가 소환된 제국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줬다는 건 늦게 가서 깨달았지만.
“그동안 죽기 살기로 힘을 길렀는데 그걸 돌려주고 온다? 미친 소리지.”
현재 몸 안의 마기는 텅텅 빈 상태이며, 신체 능력 역시 예전 같지 않았지만 별 상관없었다.
앞으로 이 힘은 쓸 일이 별로 없을 것이었기에.
이대로 100년, 아니.
던파가 망하면 회사를 인수해서라도 인생을 즐겨 주지.
김민준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게임 화면이 출력되길 기다렸다.
“에이 씨. 여기 인터넷 왜 이래? 다운 속도 200㎅ 실화야?”
“크레에엑!”
그가 느린 인터넷 속도를 불평하는 사이.
밖에서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왔다.
타앙! 탕!
그리고 연이은 총성까지.
“시끄럽잖아. 이 근처에 하운드라도 나타났나?”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게임 패치 노트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던전이라는 현상이 나타난 게 분명 내가 7살 때였나.
그때도 몬스터가 나타나, 군인들이 때려잡았던 기억이 나네.
“크르릉!”
“아오! 이 개새끼들! 시끄러워 죽겠네!”
도무지 멎을 줄 모르는 총성과 괴성.
김민준은 창문을 열고, 도대체 이놈들이 뭔 개짓거리를 하고 있나 내다봤다.
“…잠깐만.”
그는 창밖의 광경을 보고, 재빠르게 집 밖으로 나갔다.
뭔가 이상하다.
이곳은 본래 그가 알고 있던 한국이 아니었다.
“뭐야? 왜 이래?”
불과 100m쯤 떨어진 거리에서 하운드와 헌터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가끔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무리를 이루어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여기에 던전이라도 생겼나?”
주위를 둘러보면.
몬스터 시체들밖에 없었다.
몬스터의 시체가 썩어 가는 냄새와, 피 냄새.
거기다 무너진 건물들까지.
흡사 전쟁터?
아니, 아포칼립스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허억! 이곳에 던전 브레이크라도 터졌답니까! 하운드들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겨우 상병인 내가 뭘 알아! 한 마리 그쪽으로 간다!”
10명 남짓한 군인들은 서로 역할 분담을 하며, 하운드를 능숙하게 처리해 나갔다.
“저 아저씨들한테 뭐라도 물어봐야겠네. 내가 아는 한국이랑 너무 다르잖아.”
김민준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군인들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 최인호 상병님!”
“힘들어 뒤질 것 같은데 왜!”
“저, 저기! 민간인 한 명이 있습니다!”
“뭐라고?”
앞 열에서 하운드의 옆구리에 칼을 쑤셔 박고 있던 최인호는, 후임의 다급한 말에 시선을 돌렸다.
녀석의 말대로, 학생 1명이 자신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미친! 여기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라고! 딱 봐도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데, 경계 서는 새끼들은 뭐 하는 거야?!”
최인호는 곧바로 대열에서 이탈했다.
헌터군의 메뉴얼대로, 민간인을 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뭐야? 저 아저씨는 왜 나한테 오는 거야?”
김민준은 군인 한 명이 그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다 표정도 다급해 보이고.
화장실이라도 급한가?
“학생! 빨리 이쪽으로 와!”
“최인호 상병님! 오른편에 하운드 한 마리 더 나왔습니다! 위험합니다!”
“이런 씨벌!”
군인은 그 말을 듣자, 허리춤에서 마나건을 꺼냈다.
그리고 김민준의 오른편에서 달려오는 하운드를 향해 위협 사격을 가했다.
“크륵! 크륵!”
그러나 하운드는 그게 대수냐는 듯, 네 발로 땅을 박차며 김민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학새앵!”
최인호는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예감하며, 순간 눈을 감았다.
이제 저 하운드는 힘없는 민간인의 목덜미를 자비 없이 물어뜯을 것이었고.
그는 그 광경을 눈앞에서 봐야 했기에.
“…어?”
그러나 그가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