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44편
“ 합격 축하해. ”
재중이 웃으며 조그만 선물을 꺼내 내밀었다. 민철은 금새 감동한 얼굴이 된다.
“ 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 너무 고맙다. 풀어봐도 돼? ”
“ 그럼. ”
상기된 얼굴로 포장을 풀었던 민철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섬세하게 세공된
넥타이핀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 민철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 야! 이거 비쌀 텐데 뭐 이런 걸 샀냐! 이 돈으로 차라리 너 먹을 쌀을 사지! ”
“ 그래도 대학합격 선물인데, 좀 받아 줘. 그리고 그거 그렇게 안 비싸. 나 가난하잖아. 많이 비싼 건 못 해줘. ”
“ 그래도 이건…… ”
“ 입학식 할 때 정장 입을 거잖아. 그 때 쓰라고. 양복은 부모님이 해주신다지? ”
“ 응…… 고맙다 정말. 이거 꼭 하고 사진찍을게. ”
“ 그래. ”
순수하게 기뻐해 주는 민철을 보며 뿌듯하게 웃은 재중은 내심 다른 주머니에 있는
또 하나의 넥타이핀을 만지작거렸다. 그 사람, 오늘 시간이 될까…
…
“ 물론 있어. ”
수화기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반색을 하는 창민에게 재중은 조심스레 물었다.
“ 저, 급한 건 아니니까 다음에 느긋할 때 뵈어도…… ”
“ 아니야, 별 거 아닌 모임이니까 빠져나가도 돼. 어디야? 마중갈까? ”
재중이 먼저 전화를 걸어준 것에 기쁜 듯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창민에게 재중은 머쓱해져 말했다.
“ 저, 저기 오래 걸리진 않아요. 아르바이트도 곧 가야 하고…… 잠깐이면 되니까…… ”
“ 알았어. 아르바이트하는 데까지 바래다줄게. 그래서 지금 어디야? ”
들뜬 음성으로 말하는 창민에게 자신이 앉아있는 카페를 설명해준 후 재중은 전화를 끊었다.
맞은편에 앉은 민철이 묻는다.
“ 곧장 아르바이트 가는 것 아니야? ”
“ 선물할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든. ”
“ 에에…… ”
“ 정말 과분할 정도로 신세를 져서, 감사의 표시로. ”
“ ……그렇구나…… ”
민철은 중얼거렸다가 다시 물었다.
“ 그럼 자리 비켜줘야겠다. 잘 들어가고, 전화해. ”
“ 그럴 필요 없어…… ”
“ 아니야, 모르는 사람하고 같이 모여있는 것도 어색하잖아. 먼저 들어갈게. 선물 정말 고맙다. ”
간단히 인사를 하고 민철은 카페를 나갔다. 남겨진 재중은 커피 리필을 부탁한 후 창민을 기다리며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 제기랄. ”
지영은 신경질적으로 아파트 키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소파에 던져버렸다.
저 사람은 왜 기억을 잃고서도 저렇게 쉽지 않을까. 내년 2월로 날짜까지 잡았을 때는 정말로 이제 됐구나,
싶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5시도 되지 않았다. 지영은 짜증을 내며 난폭하게 부엌으로 가
아이스티를 만들 준비를 했다.
뻐꾹, 뻐꾹, 뻐꾹, 뻐꾹, 뻐꾹.
딩동―
뻐꾸기 시계가 5시를 알림과 동시에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혼자 사는 아파트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실내화를 끌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 누구세요? ”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경쾌한 남자의 음성이었다.
“ 정윤호씨로부터의 선물입니다. ”
지영의 눈이 커지며 얼굴에 금새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다급하게 현관으로 쫓아가 자물쇠를 열고 체인을 내렸다.
이래서 그 사람 일찍 돌아간 거구나. 시간에 맞춰서 날 귀가시키려고.
행여나 내가 곧장 집으로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짓궂어, 하고 짧은 순간 온갖 행복한 상상으로 들떠있던 지영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양복을 그럴 듯하게 차려입은 사내들이 대 여섯 정도 모여 있었다.
그들이 히죽 웃었다.
“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