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113화 (113/123)

거짓말 - 3부 38편

“ 좋은 아침~ ”

식탁에 앉은 채 주스를 마시다가 상쾌한 얼굴로 인사를 하는 경우를 향해 재중은 핼쓱한 얼굴로 마주 인사를 했다.

“ 왜 그래? 한숨도 못 잔 것 같은 얼굴이네. ”

경우의 경쾌한 음성에 재중은 원망에 찬 시선을 던졌다.

못 잔 것 같은, 이 아니라 사실 못 잤다. 밤새 들려오는 이상야릇한 소리들 때문에

전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급 아파튼데 벽이 이렇게 얇을 수가.

바로 옆방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가 죄다 들려와서 어떻게도 잠을 잘 수가 없던 재중은

결국 멀리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도할 정도였다.

토스터기에 토스트를 굽고 있던 남자가 흘깃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돌린다. 경우가 목을

돌려 말했다.

“ 야, 쟤 밥 줘. ”

“ 밥까지 할 시간 없어요. 난 경우씨만 먹이면 되니까 저 녀석 먹이고 싶으면 경우씨가 해주던가. ”

“ 너 많이 컷다. 그럼 좋아, 내가 지금 의자에서 일어설 수도 없을 지경으로 만든 건 어디의 누구지? ”

“ …… ”

“ 밤새 전혀 잠을 못 자게 해서 수술하다가 전두엽을 자른다는 게 측두엽을 자를지도 모르고…… ”

“ …… ”

“ 수술 한 번 시작하면 5-6시간은 기본인데 허리가 아작나서 머리 열어두고 자빠져 버릴 지도 모르고…… ”

“ …… ”

“ 오늘 하루 종일 설사만 하다가 장에 구멍이 날 지도…… ”

“ 너. ”

종내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재중을 노려보며 말했다.

“ 자리에 앉아.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토스트뿐이니까 입 닥치고 먹어. 불평하면 가만 안 둘 테다. ”

재중은 그의 험악한 얼굴에 질려 서둘러 경우의 맞은 편에 앉았다.

경우가 토마토 주스를 한 모금 마신 후 씨익 웃는다.

“ 신경 쓰지 마, 저 자식 생긴 건 저래도 말은 잘 들어. ”

당신이니까 그런 거겠지……

재중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미 충분히 알아버린 경우의 성격을 떠올리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우가 내내 ‘ 개자식 ’ ‘ 빌어먹을 새끼 ’ ‘씨발 놈’ 으로 부르는 그가 구워준 토스트는

조금 탔지만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전날부터 통틀어 그가 부른 명칭 중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은

‘ 시베리안 ’ 이었다. 대충 식사가 끝나고 나자 경우가 말했다.

“ 난 오늘 병원 못 가겠으니까 네가 이 녀석 병원으로 실어다 줘. ”

그 말만큼 무서운 말을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었던 재중이 하얗게 질려 소리쳤다.

“ 저, 저어 길만 가르쳐주시면 제가 혼자 갈게요! ”

하지만 경우는 끝까지 마이 페이스다. 재중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린 경우가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 너 왜 대답 안 해? ”

“ ……알았어요. ”

“ 그래, 그럼 난 좀 누워야겠어.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남자는 경우를 안아들었다. 경우는 예의 혼을 빼놓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재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윤호 놈한테 안부 전해라. 오늘쯤은 깰 거야. 어쩌면 어제부터도 깼었을지 모르고. ”

“ ……네에…… 감사합니다. ”

깊이 인사를 하자 경우는 ‘ 그래 그래 ’ 하고 말하며 ‘ 시베리안 ’ 에게 안겨서 침실로 갔다.

“ 쟤 정말 예의도 바르고 귀엽지? ”

하는 경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시베리안이 그것에 뭐라고 답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시베리안은 차를 몰고 가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경우를 원망하며 재중은 어서 빨리 차가

병원에 닿기만 바랬다. 경우에 비하면 훨씬 조용한

그의 운전실력은 정말 편안했지만 마음이 이렇게 불편해서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결국 멀리 병원이 보였을 때 재중은 너무 기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 감사합니다. ”

병원현관에 차를 대어준 그에게 예의바르게 허리를 숙이자 그는 흘깃 재중에게 눈길을 주었다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재중은 잠시 그렇게 서있다가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좋을까……

병실에 아직 지영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차마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재중은 윤호와 지영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저 막연히 윤호와 지영이 화해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멍하니 서있던 재중은 문득 들려온 하이힐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허겁지겁 몸을 숨겼다.

벽 한 귀퉁이에 서서 고개만 겨우 내밀고 있던 재중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현관으로 걸어가는 지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지하주차장으로 향해가는 것을 본 재중은 기적과 같은 타이밍에 기뻐하면서도

섣불리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윽고 주차장의 출구에 그녀가 탄 차가 모습을 드러내고 잠시 후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비로소 재중은 다급한 마음으로 윤호의 병실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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