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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112화 (112/123)

거짓말 - 3부 37편

식사를 하는 내내 남자와 재중은 거의 말이 없었다.

말을 하는 건 주로 경우 쪽이었는데, 그나마 그에게는 전혀 말을 걸지 않고 시종 재중에게만

이거 먹어봐라, 저게 맛있다 하면서 떠들어댔다.

종내 디저트까지 정해주는 데는 정말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식사하는 내내 입 꾹 다물고 식사만 하면서 간혹 죽일 듯이 노려보는 시선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저렇게까지 나오면……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들고 있던 나이프를 던져버릴 기세로

주먹을 부르르 떨었으나 결국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설마 테이블을 뒤집어엎는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했던 재중은 그의 초인적인 인내심에 새삼 감탄을 했다.

결국 디저트까지 꼼꼼히 모두 챙겨먹은 다음에야 비로소 경우는

의자등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 자, 가자. ”

자연스럽게 재중의 손을 잡아끌고 일어선 경우를 쫓아가며 재중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 저, 저기…… 계산은…… ”

“ 저 자식이 할거야. ”

하지만, 하고 돌아봤던 재중은 이미 이런 일은 익숙한 듯 웨이터를 불러 카드를 건네주는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다시 한 번 암담한 기분이 되었다.

차에 기대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던 경우는 잠시 후에 나온 남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 삐졌냐? ”

“ 조금 불쾌할 뿐입니다. ”

“ 그게 삐진 거잖아, 새끼야. ”

무뚝뚝한 남자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후, 하고 담배연기를 내뱉은 경우가 말했다.

“ 임마, 넌 그래봤자 하나도 안 귀여워. ”

“ 귀여워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

“ 하지만 내심으론 부럽지? ”

경우는 다짜고짜 재중을 끌어당겨 머리에 마구 입술을 비비며 키득거렸다.

“ 거울 좀 봐라, 네 얼굴 아주 볼만 하니까. ”

“ 경…… ”

“ 타, 늦었으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 ”

경우는 그가 뭔가 말을 하려는 것을 가로막고 차문을 열어 재중을 밀어 넣었다.

얼떨결에 밀려들어간 경우는 차를 돌아 운전석에 앉으려다가 남자에게 그만 팔을 붙잡혀 버렸다.

“ 또 왜 이래요? ”

“ 뭐가? ”

“ 나를 도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화를 냈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왜 이래요? ”

“ 네가 나한테 눈을 부라렸잖아, 개새끼야. ”

“ …… ”

남자는 어이가 없는 듯 경우를 바라보았다. 경우는 계속해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 의심했지? 저 꼬마랑 무슨 사이일까 또 온갖 생각 다 했지? 빌어먹을 새끼야, 난 의심받는 게 제일 싫어.

그 정도로 해댔으면 됐지, 내가 네 페트냐?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어?

하여간 너 같은 자식은 한강물에 던져서 폐까지 구정물로 가득 채워서 게워내야 정신 차릴 걸. 이거 놔! ”

거칠게 팔을 뿌리친 경우는 그대로 운전석에 앉아 차를 출발시켰다.

“ 벨트 매. ”

이미 속도계를 마구 높이면서 중얼거린 그의 말에 재중은 허겁지겁 안전벨트를 맸다.

뒤에 남겨진 남자는 황망히 서있었지만 그것은 곧 백미러에서 자취를 감췄다.

“ 하아아~ 시원하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들이킨 경우가 말했다.

재중은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부여잡고 토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경우의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냅다 욕실로 달려가야 했다.

“ 쯧쯧, 한참 나이 녀석이 이렇게 약해서 어디다 써. ”

등을 두드려주며 경우가 말했지만 재중은 원망의 말을 할 수도 없는 자신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었다.

넓은 소파에 기대어 기절하다시피 엎드린 재중의 맞은 편에 편안히 앉아 맥주를 마시던 경우가

리모콘으로 오디오를 켰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씨크릿 가든의 음악을 들으면서 재중은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계속해서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둘의 편안한 분위기는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해서,

잠시 후 난폭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 씨발, 저 개새끼 끝까지 말썽이야. ”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섰던 경우는 문을 열자마자 냅다 들고 있던 맥주를 끼얹어버렸다.

“ 야, 이 새끼야! 정말 자꾸 시끄럽게 굴래? ”

버럭 소리를 내지른 경우에게 일상 있어왔던 일인 듯 문이 열리기 무섭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살짝 몸을 피했던 그는 경우의 팔을 붙잡고 으르렁거렸다.

“ 얘기 좀 해요. ”

그래도 액체를 모두 피하지 못해 셔츠가 조금 젖어버린 것에 그나마 조금 분이 풀렸는지 경우가 말했다.

“ 나랑 싸우러 온 거야 아니면 자러 온 거야? ”

“ 자고 난 다음에 싸울 겁니다. ”

“ 그 때는 화가 사라졌을 텐데? ”

어느새 키득거리는 경우를 노려보며 그는 전혀 웃지 않고 대답했다.

“ 그건 그 때 문제지요. ”

그리고 그는 곧장 경우를 들어 어깨에 메고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놀라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재중에게 그대로 들려가면서 경우가 소리쳤다.

“ 어이, 너 저 방에서 자라! 문단속 좀 해 줘! ”

어깨에 거꾸로 들려서 가는 주제에 잘도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방을 가리키는 경우를 향해

재중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우는 활짝 웃으며 ‘ 바이바이 ’

를 했지만 그와 동시에 문은 난폭하게 닫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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