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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111화 (111/123)

거짓말 - 3부 36편

시계소리에 머리가 아파온 재중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막 의국에서 나오던 경우가 재중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 뭐야? 넌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

재중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팔을 붙잡아 일으켜세운 경우는 말했다.

“ 아직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여기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씨발, 애써 고쳐놨더니 또 고장내지 마. ”

“ 죄, 죄송합니다. ”

뭐가 미안한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왠지 그에게 사과를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라 재중은 겨우 우물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경우는 재중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당연히 그래야지. ”

긴 눈매가 한순간에 휘어지더니 반달형이 됐다. 재중은 놀라 눈을 몇 번씩 깜박였다.

저 사람, 웃으니까 정말…… 뭐랄까, 그냥 예쁜 얼굴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모자란 묘한 매력이 넘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재중은 한동안 말을 골랐다.

“ 밥 먹으러 가자. ”

“ 예?! ”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다짜고짜 손을 잡아끄는 경우에게 이끌려가면서 재중은 놀라 물었다.

“ 저, 저 배 안 고픈데요…… ”

“ 주치의가 먹으라면 먹는 거지 무슨 잔말이 많아. ”

그는 한 마디로 쏘아붙이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재중은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그의 말에 어이없는 얼굴로 무작정 끌려가야 했다.

지하 주차장에는 보기에도 매끈하게 잘 빠진 새하얀 캐딜락이 놓여 있었다.

이거, 이 사람 차? 놀라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예상대로 그는 휘파람을 불며 차 문을 열더니 재중을 앉혔다.

“ 저, 저기요…… ”

차에 시동을 거는 그에게 급히 입을 열었지만 그는 한 마디로 재중의 말을 가로막아버렸다.

“ 배고프면 예민해지니까 더 이상 말하게 만들지 마. ”

일종의 경고에 해당하는 그 말을 내뱉은 후 그는 재중이 놀라 허겁지겁 안전벨트를 매기가 무섭게

차를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 아아, 역시 스트레스는 스피드로 풀어야 해. ”

상쾌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는 그의 뒤를 따라 휘청거리며 내렸던 재중은 급기야 길가에 서 있는 나무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 저런, 아직 어린 녀석이 정말 약하군. ”

그는 안타까운 듯 말하며 재중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몸이 약해서가 아니라 당신 때문이란 말이야!

재중은 소리치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올라오는 쓰디쓴 위액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낮에 겨우 한 끼 먹었는데, 그나마 죄다 토해버린 재중은 현기증이 났다.

벌써 시간은 밤이 되어버려서 캄캄한데, 이제 와서 돌아가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 스피드로 1시간도 넘게 달렸는데 여기가 또 어딘줄 알아서…… 도저히 밥을 먹을 컨디션이 아니었지

만 언제나 제멋대로인 경우를 거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우는 재중이 좀 가라앉기가 무섭게

“ 자아, 속에 든 걸 다 비웠으니 다시 채워야지~ ”

하고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더니 곧장 재중의 목덜미를 잡아채 걷기 시작했다.

싫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 재중은 제발 이 곤욕스러운 시간이 어서 지나가 주기만 바래야 했다.

얼마 걷지 않아서 별장처럼 보이는 목조건물이 보였다. 그것이 별장이 아니라 레스토랑이라는 것은

간판으로 알 수 있었지만.

“ 경우씨! ”

듣기에도 웃음이 듬뿍 달린 경쾌한 음성이다. 재중은 경우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신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현관에 서 있던 그는 정말 즐거운 듯이 활짝 웃고 있었지만

재중을 발견하는 그 순간 웃음이라고는 자취가 없어져 버렸다.

크게 휘젓던 손도 내려버리고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재중은 순간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경우는 그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재중을 붙잡아 끌고 그의 곁을 스쳐가며 말했다.

“ 아아, 배고프다. 뭐 시켜놨어? ”

“ ……이 애는 뭡니까? ”

“ 시간 맞춰서 뭐든 시켜놓으랬지? 했어, 안 했어? ”

“ 이 애는 뭐길래 데려왔느냔 말입니다! ”

이 아저씨도 꽤 한 성질 하는 것 같다. 재중은 으르렁거리듯 이를 가는 그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경우 역시 만만치 않은 성격인 것은 한 가지였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 너, 지금 나한테 짖은 거냐? ”

“ 묻는 말에 대답해 주세요. ”

“ 시베리안인 주제에, 까딱하면 주인을 물겠구나. 씨발, 누가 너한테 그 따위 행동하래? 눈 내리깔지 못해? ”

“ 저, 저기 저는…… ”

재중이 끼어들려 했지만 경우와 그 남자가 동시에 노려봤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내가 낳아왔다. 됐어? ”

“ 뭐라구요? ”

경우의 성의 없는 대답에 저 쪽은 아예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모양이었다.

정말 분노의 화신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한 눈에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가 아닌가.

재중은 더더욱 하얗게 질려 자신도 모르게 경우의 뒤에 숨었다. 재중보다 10센티 정도 큰 경우는

재중을 든든하게 가려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 내가 그러니까…… 너, 몇 살이지? ”

등뒤에 숨어있는 재중을 돌아보며 묻는 경우에게 재중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 18살이요. ”

“ 그래, 18년 전에 낳은 아들이다. 됐냐? ”

“ 말이 되는 소리를…… ”

“ 비켜, 씨발 새끼야. 배고파! ”

그리고 경우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냅다 그를 밀치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재중은 그에게 끌려가면서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는 온 몸으로 분노를 눌러 참는 듯 죽일 듯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괜히 돌아봤어…… 재중은 후회했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그의 모습이 뚜렷이 각인 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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