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35편
수술은 꽤 긴 시간을 끌었지만 정작 수술실에서 나온 경우는 밝은 얼굴이었다.
“ 그다지 정확한 사격수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게다가 차유리를 통과하면서 과녁이 빗나가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스쳤어. 10도만 더 각도를 잘 맞췄어도 한 방에 끝나는 거였는데 말이야.
……중환자실? 그걸 저 새끼가 왜 가? 거긴 아무나 가는 덴 줄 알아?
병실도 없는데 입원시켜주는 것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
도저히 친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말을 한 경우는 휘파람을 불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 때까지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재중은 그의 말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윤호가 병실로 옮겨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재중은 서둘러 희태에게 전화를 했다.
짤막하게 경과를 알려주고 다시 병실로 들어간 재중은 그의 옆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그가 깨어나기만 기다렸다.
이번에야말로 윤호가 뭐라고 하건 한 번 매달려 볼 셈이었다. 그가 어떤 얼굴을 하건,
설령 욕을 하고 발로 차 쫓아낸다고 해도 나 이제 정말로 많은 거 바라지 않을 테니까 부디 옆에 둬두기만 해달라고
울면서라도 매달릴 작정이었다. 우는 것을 싫어
한다고 해도 그의 동정심만 얻어낼 수 있다면 뭐라도.
재중은 그의 차가운 손을 붙잡고 몇 번씩 간절히 바랬다. 부디 그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어나 자신을 봐주기만을.
다음 날 점심 때 쯤 되자 창민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 때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윤호와
그 옆에서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는 재중을 보고 창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 식사 제대로 안 했지? 잠깐 먹고 오자. ”
“ 싫어요…… ”
“ 네가 여기 붙어있어야만 이 녀석이 눈을 뜨는 건 아니잖아. 밥 먹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이러다 너까지 쓰러져버리면 어쩔 거야? 몸도 성치 않은 놈이. ”
“ …… ”
“ 너 이러고 있는 거 일어나서 보면 윤호 녀석이 꽤나 좋아하겠다. ”
비꼬는 그의 말에 재중은 조금 동요했다. 그렇지, 부담을 주는 것은 싫다. 재중은 다시 한 번 윤호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에게 몇 번이나 당부의 말을 하고 창민의 뒤를 쫓아갔던 재중은 그 사이에 윤호가 눈을 떴던 것도,
남들 눈을 피해 지영이 다녀갔던 것도 전혀 모른 채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자신이 병실을 나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는 윤호를 보고 재중은 한숨과 함께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잠시 그의 얼굴을 보고 있던 재중은 푸석거리는 눈을 비비다 무심코 하품을 했다.
전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이다. 재중은 몇 번씩 졸음을 쫓으려 애쓰다가 결국 침대옆에 엎드려 잠들고 말았다.
“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
귀에 익은 앙칼진 목소리에 재중은 놀라 잠에서 깨 벌떡 일어났다.
맵시있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불쾌한 듯 비죽거리는
입술조차 육감적인 그녀가 말했다.
“ 뻔뻔하기도 하지, 정말 너한테는 두 손들겠구나. ”
지영은 재중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 어떻게 해야 떨어져줄 거야? 도대체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정말 혼나볼래?
더 이상 윤호씨랑 나를 얼마나 망쳐놔야 속이 시원해? 빌어먹을 새끼, 당장 나가! ”
그녀는 고함을 지르며 재중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켰다. 재중은 어이없이 그대로 그녀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 시계소리가 끝나지를 않았다.
콰당―
지영은 재중을 난폭하게 복도로 집어던진 후에 소리쳤다.
“ 재수없는 새끼, 네가 나타나면서부터 윤호씨도 나도 되는 일이 없어! 다 네 탓이라고!
다신 나타나지 마, 개자식아! ”
쾅―
그녀가 욕을 퍼부으며 문을 거칠게 닫아버린 후, 재중은 거칠게 울려대는 시계소리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렇게 망연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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