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34편
“ 이런 씨발, 돌아가면서 속을 썩이는군! ”
응급실에서 제일 먼저 고개를 내밀었던 젊은 의사는 윤호를 보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돌봐주었던 의사임을 기억해낸 재중은 엉거주춤 앰뷸런스에서 내렸으나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 곧장 뇌 사진 찍고 수혈 준비해. ……이거야, 이렇게 쏟아놓고 몸에 피가 남아있는지 의문이네.
빌어먹을 새끼, 또 어디서 성질부리고 이 꼴 돼서 온 거야. ”
곧장 안으로 실려가는 윤호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재중은 멍하니 희태에게 물었다.
“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
“ 기다려야죠. ”
고개를 푹 숙이자 희태가 재중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 차라도 마시지 않겠어요? 이 앞에 카페가 하나 있던데. ”
“ ……아니오…… 저는…… ”
안타까운 얼굴로 응급실을 바라본 재중에게 희태가 말했다.
“ 어차피 우리는 있어봐야 도움도 되지 않아요, 아마 수술 들어갈 텐데 그럼 또 몇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고.
게다가 문 경우 선생님, 입이 험해서 그렇지 실력 하나는 끝내주니까 믿어도 좋아요. ”
“ ……그래요……? ”
평소 그의 거친 언동을 보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던 차에 희태의 말은 놀라운 것이었다. 눈을 둥글게
뜨고 되물은 재중에게 희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신경외과에서 알아주는 전문의니까요. 전 의료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매스컴도 꽤 여러 번 탔다고 하던데. ”
“ 젊어 보이는데…… ”
“ 그러니까 더 유명한 거죠. ”
그리고 희태는 먼저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재중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어쩔 수 없이 희태를 쫓아갔다.
“ 마셔요. ”
재중에게 생과일 주스를 시켜준 희태가 말했다. 자신의 몫으로 우유를 시킨 그를 보고 재중은
내심 지독한 괴리감으로 인한 패닉에 빠졌으나 입밖에 내어 말했다가는 기분이 상할 지도 몰라 잠자코
고맙다는 말만 했다. 190이 넘을 것 같은 키에 양복아래 뭉쳐진 근육이 보일 것 같은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우유라니! 한동안 앞에 놓여진 음료수만 바라보고 있던 재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수술은 얼마나 걸릴까요……? ”
“ 글쎄, 수술이라고는 맹장을 뗀 것이 전부라서. ”
“ 그래요…… ”
그리고 재중은 정말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머릿속은 온통 윤호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시계소리는 어느샌가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재중은 그것이 그다지 기쁨으로 와닿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