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3부 32편
윤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재중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의 얼굴에 어쩌면 저렇게 표정이 없을 수 있을까. 재중은 그의 말을 기다리면서 일말의 변화도
찾을 수 없는 그의 얼굴에 절망을 느꼈다.
당신이 틀렸어.
재중은 창민의 말을 생각하며 그를 원망했다.
저것 봐, 그는 저렇게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잖아. 이제 나를 비웃을 거야. 아니 아예 화를 낼 지도 몰라.
하지만 윤호는 여전히 물끄러미 재중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어떤 말이건 그다지 좋은 대답 같지는 않다. 재중은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처입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내심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윤호는 계속해서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
피리리릭.
“ 네, 정윤호입니다. ”
갑작스레 핸드폰이 울리고 재중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윤호는 평소와는 다르게 벨이 제대로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사무적인 음성을 흘려들으면서 재중의 얼굴은 점차 창백해졌다.
싫은 거야.
재중은 결론지었다.
내 말을 듣고, 차마 거절하지는 못한 채 말을 고르고 있었던 거야. 어떻게든 나를 단념시킬 말을.
어쨌거나 나는 아직 아프니까.
그 말을 뒷받침하듯 윤호가 전화를 끊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 회사에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 안 들어올 지도 모르니까 일찍 자. ”
그리고 윤호는 재중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슈트를 대충 집어들고 나가버렸다.
콰당―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허망하게 울려 퍼진다. 재중은 공허한 울림 속에서 망연히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급히 올라탄 윤호는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초조한 듯 손가락을 맞부딪히며 서 있었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내려선 윤호는 멀찍이 주차해 둔 자신의 차로 쫓기듯 걸어갔다.
달칵.
차의 문을 열고 시트에 앉은 윤호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마치 유령같다.
하얗게 질려 식은땀까지 배어있는 몰골이라
니. 윤호는 가늘게 떨리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다른 손으로 그것을 마주잡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녀석은. 윤호는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거야.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다니. ……내가 아니잖아. 네가 원했던 건 내가 아니었잖아.
그 때 그렇게 나를 거절했던 것은 그 녀석 때문 아니었어? 아니면 그 녀석이 죽고 나니까 누구든 상관없는 거야?
……만약에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믿지 않아……
그건 진실이 아닐 테니까.
아까 재중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그대로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미리 손을 테이블 밑에 두지 않았다면, 아마도 재중은 눈치챘을 것이다.
깍지 낀 두 손이 하얗게 질려 마디가 불거질 정도로 세게 쥐어져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어.
윤호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나는 이제 또 다시 너를 잃을 수는 없어. 이제 겨우 찾았는데, 그걸로 만족하려 했는데,
어째서 너는 나를 이대로 놔두지 않는 거야?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 같았다. 윤호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한숨을 내뱉었다.
백미러를 보게 된 것은 그 때였다. 거기에 자신의 얼굴 외에 다른 것이 비쳐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그것이 지영의 얼굴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차 뒤쪽에 좀 떨어져 서서 총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언제 나타났을까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 정윤호……! ”
비명 같은 그녀의 고함소리와 함께 거친 폭발음이 들렸다.
타앙―
윤호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재중의 우는 얼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