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3부 28편
피리리릭. 피리리릭.
윤호는 이것저것 야채를 들고 신선한 것을 고르는 재중을 보며 전화를 꺼내 들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기다리던 음성이 흘러나온다. 나름대로의 경과보고다.
“ ……예. 그런가요. 수고하셨습니다. ”
짤막하게 대답을 하자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
“ 처리를 저희 쪽에 맡기셔서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저희 쪽에서 새로이 사업을 시작해서
그 쪽에 투자를 했으면 하는데요…… ”
뜸을 들이며 사내가 말을 이었다.
“ 아시다시피, 돈이 있어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해서 저희가 생각해 낸 사업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인데요. 어디건 희생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
서두가 길다. 윤호는 그가 하려는 말을 금새 눈치채고 역시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 시간이 길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어떤 결과든 상관치 않습니다. ”
사내는 냉큼 말을 받았다.
“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단번에 적출해 내면 저희 쪽도 곤란하지요.
필요한 부위별로 한 단계씩 공급할 예정입니다. 물론 적출해낸 자리엔 인공장기를 넣어서
가급적 다른 기관이 오래 보존되도록 해야겠지요. ……아아, 팔 다리는 모두 절제했습니다.
그 부위는 그다지 필요한 부위도 아니라서 말이죠…… ”
“ 알겠습니다. ”
윤호는 재중이 호박과 두부를 들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 처음 의뢰했던 조건만 지켜주시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긴 시간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그것만 지켜주신다면 방법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
“ 물론입니다, 의뢰인의 조건을 지키는 것은 필수지요. ”
그리고 그는 전화를 끊고 싶어하는 윤호의 기분을 눈치채고 말을 맺었다.
“ 그럼 윤화기업의 일은 마무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
“ 수고하셨습니다. ”
전화를 끊자 타이밍 좋게 재중이 멈춰 섰다.
“ 바쁜 일 있으신가요? ”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그저 경과보고일 뿐. 물건은 다 골랐나? ”
카트에 호박과 두부를 집어넣은 재중은 산 물건들을 훑어보고 말했다.
“ 콩가루를 사야겠어요. 그런데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
“ 콩가루? ”
윤호가 얼굴을 찡그렸다.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을 처음 접하는 것 같은 반응이다. 재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 예, 된장국에는 콩가루를 넣어야 맛있어요. ”
“ 된장국이라…… ”
난감해하는 윤호를 보며 재중은 말했다.
“ 저, 잘 끓여요. 순두부 찌개도 잘 하는데, 내일 아침엔 그걸 할까. ”
“ 하아…… ”
이번엔 계란을 사기 위해 돌아선 재중을 보며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쏴아아아……
빗소리가 들린다. 재중은 찌부둥한 눈을 겨우 떠 몇 번을 깜박였다.
넓은 킹 사이즈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전 날 저녁을 함께 먹은 윤호와 재중은 별다른 얘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꽤 편안한 분위기였다. 재중은 윤호와 그러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못내
기뻐 말을 나누지 않고도 꽤 행복했다. 가끔 건우가 떠오를 때면 언제나 심장은 죄책감으로 주눅이 들고
귓가에는 시계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날 밤도 다르지 않아서 잠옷을 갈아입고 윤호와 함께 TV를 보다가
인사를 한 후 일어나 또 다시 덮쳐오는 시계소리를 예감하며 비장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는데,
뜻밖에 윤호가 따라왔다.
“ 같이 자줄게. ”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엉거주춤 서있는데 윤호가 재중을 안아들었다.
“ 거, 걸을 수 있어요! ”
놀라 소리쳤지만 윤호는 듣지 않았다. 부드러운 침대에 등이 닿자 문득 심장이 두근거린다.
사이드 테이블에 놓여있는 스탠드의 불빛이 전부인 방은
어두워서 붉어진 얼굴은 들키지 않겠지만 거침없이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들켜버릴까
두려워 재중은 한껏 숨을 몰아쉬었다. 윤호가 옆에 눕더니 재중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규칙적인 심장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윤호는 재중이 편안히 잠들게 하려는 듯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지만
그것은 되려 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지.
재중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어찌할 바 모르고 윤호에게 꼭 매달려 있었다. 어떻게 해. 눈치채여 버릴 것 같아.
어떻게 해. 재중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 때까지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윤호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심장이 지금까지보다 몇 배로 더 빠르게 두근거린다.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더운 호흡이 느껴지더니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았다.
떨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기다
렸다는 듯이 윤호의 혀가 밀려들어왔다. 윤호가 키스를 하며 재중의 몸 위로 올라왔다.
키스가 계속되는 사이 재중은 머릿속에 열이 오르는 것 같은
기묘한 착각에 빠졌다. 온 몸에 느껴지는 윤호의 무게에 마음이 편해지는 한 편 맥박이 곤두선다.
몸은 벌써 기대하면서 달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음란해, 하고 재중은 문득 생각했지만
윤호를 멈추게 할 의지는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키스가 목덜미로 옮겨지더니
부드러운 혀의 감각이 느껴졌다. 거친 흡착소리가 이어진다. 얇은 셔츠를 헤치고 윤호의 손이
메마른 재중의 피부를 더듬었다. 천천히 쓸어 내리는 손가락 사이에 아직 덜 자란 유두가 걸린다.
목덜미를 빨아들이던 입술이 옮겨가 그것을 입에 담았다.
“ ……ㅎ…… ”
가늘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재중은 이를 악물고 몸을 젖혔다. 깔깔한 혀의 감촉이 민감한 유두를 통해 느껴진다.
윤호의 손이 내려가더니 바지 속으로 들어가 부끄럽게 일어선 재중의 것을 쓰다듬었다.
긴 손가락이 놀리듯 그것을 어루만지자 그것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떨기 시작했다.
“ 응, 으……ㅇ…… ”
참으려 해도 자꾸만 새어나오는 신음소리 때문에 재중은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시트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들어 입을 막으려 했지만 윤호가 그것을 붙잡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 참지 마,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
귓가에서 속삭이는 윤호의 목소리와 손짓에 재중은 서서히 끓어오르던 열이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져버리는 것 같았다.
할 것 같아.
한 손이 윤호의 손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던 재중은 안간힘을 써
신음과 함께 배출을 참고 있었다. 허리를 가늘게 떠는 그를 보고 윤호가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뗀다.
참고 있긴 했지만 정작 그가 손을 치우니 아쉬움과 함께 실망감이 찾아왔다.
……화장실…… 화장실이라도 가지 않으면……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재중은 다시금 윤호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재중을 다시 침대에 눕히고 침대 밑으로 가 재중의 양손을 붙잡은 윤호가 고개를 숙였다.
“ ……아! ”
이번에는 좀 더 크고 강렬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윤호의 입안에서 다시금 열기를 가진 그것이 허리를
욱씬하게 만들었다. 손으로 해줄 때도 가버릴 것 같았는데, 너무해. 재중은 저릿저릿한 뇌로 겨우 생각하며
윤호를 원망했다. 어떻게든 손을 빼내려 했지만 윤호에게 붙잡혀 있어 입을 막을 수도 없다.
이를 악물고 있어도 어느 틈엔가 비명처럼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 아, 아아…… 응! "
날카롭게 쏟아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점차 높게 치달아갔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마침내 분출만을 바라게 되었을 그 때, 갑자기 재중의 머릿속에 시계소리가 울려왔다.
귓가에 울리는 것은 시계소리만이 아니다. 그것에 섞여 또 다른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seeking the hole, seeking the hole, the hole of prostitute
구멍을 찾아서, 구멍을 찾아서, 창녀의 구멍을 찾아서.
온 몸이 경기라도 일으키듯 한순간에 굳어졌다. 머릿속은 온통 한가지 생각뿐이다.
재중은 다시금 자신이 창고에 버려진 듯한 착각에 공포로 질려버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윤호가 고개를 든다.
“ ……왜 그래? ”
윤호의 얼굴도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재중은 어느새 이성을 잃고 말았다.
“ 저리 가, 비켜…… 아아악…… ”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하는 재중을 겨우 붙잡았지만 그는 말을 들을 기세가 아니었다.
이미 환각에 사로잡혀버린 그가 윤호를 알아볼 리가 없다. 윤호는 억지로 그를 끌어안고
그가 진정하기만을 바라는 것 외에는 수가 없었다.
“ 괜찮아, 진정해. 여기에 그들은 없어. ”
“ 이거 놔…… 싫어어어!! ”
윤호는 계속해서 속삭였지만 재중은 막무가내였다. 마침내 기운이 다해 탈진해 버린 후에야 비로소 잠잠해진 재중을
그 후로도 윤호는 한참동안 안고 있었다. 온통 땀으로 젖어버린 채 잠든 재중의 얼굴을 보며 윤호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던 윤호는 일어나 수건을 물에 적셔왔다.
그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전신의 땀을 닦아준 윤호는 잠시 그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이윽고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 앉아 어둠 속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던 그가 빗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는 이미 수중의 담배를 모두 태운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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