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102화 (102/123)

거짓말 3부 27편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섞여 욕설이 들려온다. 온 몸 구석구석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씨발, 원래대로라면 내가 저 속에 있었어야 했는데……

영철은 가늘게 신음을 토해내며 무뎌진 머리로 생각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 백구 ’ 라는 놈은 꽤 큰 조직의 조무래기 중 하나였다.

조무래기라고는 하지만 역시 조직은 조직이어서, 일개 고등학교 짱인 자신하고는 꽤 다르게 느껴졌다.

주먹을 쓰는 거나 돈을 쓰는 씀씀이부터도. 최근에 생각지도 않았던 소일거리가 있어서 영철도

꽤 돈 씀씀이가 커지긴 했지만, 나름대로의 로비 자금으로 그것을 백구와 함께 썼던 영철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건 그렇지 않건 언제건 조직에 들어갈 수 있게

평소 백구와의 친분을 돈독히 하고자 그렇게 애썼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어이없이 돈줄을 놓치고 나서 영철은 기분이 최악이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사내는 함께 있던 패거리들을

비롯해서 자신까지 병원신세를 지게 만들었고, 확보해 두었던 돈줄마저 들고 튀었다.

그 후로 계집애와는 연락이 되질 않는다.

씨발, 더럽게 됐다.

조금만 더 잡고 있었어도 조직과 줄이 트이는 거였는데, 하고 영철은 욕설을 내뱉었다.

다행히 상처는 심하지 않아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난 후 여기저기 붕대를 두른 채 다니던

클럽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영철은 갑자기 백구를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자 그는 느닷없이 영철에게 조직에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지금껏 내심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영철이 거절할 리가 없다. 황송해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백구는 웃으며 덧붙였다.

“ 네 밑에 있는 녀석들도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

백구의 말을 듣자마자 전화를 돌려 패거리들을 불러모았다. 꺼림칙해하는 몇몇을 빼고 모인 인원들을 끌고 가면서

영철은 내심 조직에서 자신을 탁월한 인재로 인정해주기를 기대했다.

비록 고등학교 짱에 불과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의 조직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자신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전혀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

백구가 그들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허름한 창고형의 건물이었다.

조금 이상했지만 백구가 특별히 자신들을 속일 이유는 전혀 없어 영철은 의심 없이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큰 실수였다. 패거리들이 창고에 들어선 순간,

무거운 문은 등뒤로 닫혀버렸다. 어둡던 창고에 일순간에 대낮처럼 불이 밝혀지고,

외관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꽤 넓은 창고 안에는 보기에도 험상궂게 보이는 사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싸움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내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들은 전혀 호의라고는 비치지 않는 얼굴로

영철이들을 바라보았다. 영철은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 야, 뭔가 이상한데……? ”

눈치 빠른 한 녀석이 슬쩍 귓가에 속삭였다. 영철은 짐짓 과장되게 큰 소리로 말했다.

“ 이상하긴 뭐가, 새끼야. 잠자코 있어. ”

그리고 그는 신뢰가 담긴 눈으로 백구를 바라보았다. ‘ 그렇죠, 형님? ’ 하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이.

하지만 백구는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 미안하게 됐다, 이 쪽도 일이라서 말이지. ”

“ ……뭐가…… ”

영철이 바보처럼 되묻는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그 때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내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파이프와 각목들을 본 영철은 곧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 노, 농담인 거죠? ”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철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뒤늦게 생각난 듯 크게 웃었다.

“ 아, 아아! 환영식인 거군요 그렇죠? ”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다가오는 그들을 피해 뒷걸음질을 치던 영철은 그만 벽에 등이 닿아버렸다.

옆을 보니 다른 녀석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가까이서 본 그들의 눈에 장난이라거나 거짓의 기색은 찾을 수가 없었다.

“ 씨발…… ”

영철은 낮게 욕을 내뱉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상태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은 어설픈 고등학교 패거리들이 아니다.

폭력과 살인에 익숙한 조직인 것이다. 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결과에도 순순히 순응할 수는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철은 정말로 심각하게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 우와아악! ”

영철은 고함을 지르며 가장 가까운 사내에게 덤벼들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이 여기저기서 고함소리와 함께

난투극이 벌어졌다. 곳곳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비명과 구타소리 뿐이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수적으로 열세에 게다가 처음부터 노는 물이 다르다.

더욱이 공포에 질려버린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변변히 몇 대를 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나가떨어진 영철의 위로 무수한 구타가 이어졌다.

삽시간에 입안이 터져 나가고 전신이 피로 물든다.

“ 빌어먹으을…… ”

영철은 비명처럼 욕설을 내뱉었지만 구타는 끝나지 않았다. 한참동안 그렇게 맞기만 한 것 같았지만

사실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을 때, 그들은 하나 둘 씩 뒤로 물러났다.

얻어터져 부은 눈으로 겨우 주변을 보았던 영철은 자신의 패거리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곤죽이 되어

널부러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양복을 그럴 듯 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꽤 높은 사내인 듯 그가 다가오자 다른 조직원들이 물러선다.

“ 괜찮아, 죽지는 않을 거다. 죽이지는 말라고 의뢰를 받았으니까. ”

의뢰? 의뢰라니?

일개 고등학교 조직 따위에 의뢰를 해? 이런 프로급 조직을 사주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피칠갑이 된 채 쓰러져 있던 영철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의 진행에

눈만 겨우 깜박일 뿐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더니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간단히 전화를 끝낸 사내는 영철을 향해 히죽 웃었다.

“ 네 남은 친구들도 곧 이 쪽으로 온다는구나. 외롭진 않겠군. ”

사내는 그 말을 내뱉은 후 턱짓을 했다.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뒤에서 한 사내가 어깨죽지를 안아 영철을 일으켰다. 끄응, 하고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사내가 양복 상의를 벗더니 넥타이를 풀었다.

“ 오랜만에 일선에 나서보는군. ”

그는 히죽 웃으며 두 손을 마주 껴 관절을 부딪혀 소리를 냈다. 우드득, 하고 뼈가 맞부딪는 소리에

영철은 소름이 끼쳤다.

“ 백구, 잡아라. ”

“ 네. ”

한 쪽에 서 있던 백구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영철의 한 쪽 다리를 붙잡아 들었다.

영철은 하얗게 질려 그나마 친분이 있던 백구에게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 혀, 형! 이러지 말아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형한테 제가 지금껏 얼마나 잘 했습니까? 좀 봐 줘요,

뭐가 거슬리셨는지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이렇게 잡으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백구형! ”

매달렸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영철은 구타로 피범벅이 되어 있는 다리가 붙잡아 올려지는 것을

보고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 씹새끼, 얌전히 못 있어?! ”

곧장 주먹이 날아와 머리가 꺾어진다. 영철은 다시금 입안이 터져 피를 한 웅큼 뱉어내었다.

도르륵하고 뭔가가 떨어진다. 영철은 피칠이 되어 있는 그것이 자신의 이빨이라는 것을 알았다.

와이셔츠의 사내가 영철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의 뱀같이 가는 눈이 히죽 웃는다.

“ 조금 아플 거야. ”

선심 쓰듯 말한 그는 갑자기 무지막지한 힘으로 영철의 발을 붙잡아 꺾어버렸다.

“ 우, 우와아아아아악!!! ”

무지막지한 비명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까드득하는 마찰음이 귀를 때린다.

바스라져 버린 듯한 발목이 너덜거렸다. 사내는 애석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 도망가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라서 말이지…… ”

몸을 뒤에서 지탱해주던 사내가 손을 놓아버리자 영철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끄으응, 하고 신음과 함께 흐느낌이 새어나온다. 통증에 울부짖는

영철을 향해 사내는 말했다.

“ 이제 겨우 시작인데 엄살이 심하군. ”

이제 시작? 시작이라고?

영철은 통증으로 아득한 가운데 겨우 생각을 떠올리고 공포에 질려 버렸다. 사내는 돌아서더니 명령했다.

“ 끌고 온 새끼들 손목하고 발목 모두 부러뜨려. 도망치지 못하게. 자살해버리면 곤란하니까 혀도 뽑아. ”

뭐, 뭐라고……?

영철은 바닥을 기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사내는 나가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의뢰인에게 전화를 해야겠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