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3부 26편
두껍게 쳐진 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재중은 무거운 눈을 겨우 들어올렸다.
아침인가…… 천천히 일어나 앉았던 재중은 지난 밤 자신이 윤호에게 안겨 울다가 잠들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완전히 질렸겠구나.
재중은 창백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귀찮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 우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얼마나 내가 짜증스러웠을까.
재중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천천히 문 쪽으로 다가갔다. 몇 시나 되었을까. 집안에는 시계가 없다.
재중을 위한 세심한 배려인 것 같았지만 재중은 언제나 어렴풋이 들려오는 시계소리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밤에는 시계소리 대신 편안한 심장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달칵……
문을 열었던 재중은 뭔가 향긋한 냄새에 조금 놀랐다. 집안에는 갓 끓인 커피의 향내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조금씩 욱씬거리는 발을 움직여 향기가 나는 근원지로 향했다. 넓은 부엌에 발을 들여놓았던 재중은
식탁에 앉아 커피와 함께 신문을 보고 있는 익숙한 윤호의 모습을 발견했다. 윤호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 이제 일어났나. 기분은 좀 어때? ”
윤호의 일상적인 물음에 재중은 우물쭈물 대답했다.
“ ……좋아요…… 고마워요…… ”
“ Fine, Thank you. And you? "
“ 네? ”
갑자기 내뱉은 윤호의 물음에 재중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윤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좋아요, 고마워요. 그 다음에 오는 말이 있지 않았나? ”
재중은 그의 웃는 얼굴에 넋이 빼앗긴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 당신은요……? ”
윤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재중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 Much better, Thank you. "
재중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채로 자신도 모르게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에 묶여 있는 붕대를 본 윤호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지만 재중은 눈치채지 못했다.
“ 아침은 뭘로 먹겠어? 이 시간에 가능한 거라면 몇 가지 없어서 우선 빵을 사두긴 했지만. ”
“ ……시켜 먹어요……? ”
호텔에서야 그렇다 치더라도 집에서까지 시켜먹다니, 하고 재중은 놀라 물었다.
그러고 보니 커피향에 섞여 뭔가 다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뭐지? 탄 음식 같은……
의아한 얼굴을 한 재중에게 윤호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 상관없어, 난 어차피 먹을 수 있는 음식 같은 건 만들지 못하니까. ”
“ 예에…… ”
얼떨결에 대답을 했던 재중은 문득 싱크대 옆에 위치한 쓰레기통에 쏟아져 있는 음식 쓰레기 사이로 뭔가
시커먼 것을 본 것 같았다.
뭐든 잘 할 것 같은데, 역시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법이야……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재중은 조금 얼굴을 붉히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저어, 괜찮으시면…… 제가 뭐라도 만들어 볼께요…… ”
“ 됐어, 넌 쉬기나 해. ”
“ 계속 사 먹는 건 건강에도 좋지 못해요. ……장을 보는 것을 도와주신다면……
제가 만들고 싶어요. ……신세지고 있으니까…… ”
사실 이것은 핑계다. 장을 본다는 명목 하에 내심 다른 것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재중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윤호는 뒤의 말이 무척 거슬리는 기색이었다.
“ 신경 쓰지 마,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 ……그래도…… 음식은 만들어 먹는 게 좋겠어요…… ”
조금 고집을 세워 말하자 윤호는 얼굴을 찡그린 채 재중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 좋을 대로 해. ”
“ ……장은…… 저녁에 볼까요……? ”
조심스럽게 묻자 윤호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렇게 하지. ”
그리고 재중과 윤호는 윤호가 사두었던 빵과 커피를 마시며 가끔씩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
크로와상은 갓 구운 듯 아직 따뜻해서, 재중은 윤호가 혹시 자신이 잠든 사이에 그것을 사온 것은 아닐까
은근한 기대에 부풀었지만 곧 쓴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떨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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