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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100화 (100/123)

거짓말 3부 25편

잠깐 잠이 들었나 싶었더니 이내 깨어버렸다. 재중은 무거운 머리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깊은 어둠 속에 혼자 남겨져 있다는 공포가 새삼 뇌를 차갑게 만든다.

몇 시쯤 되었을까……?

시계소리에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꽤 여러 번 되었기 때문에 재중의 방에는 시계가 없다.

시간을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시계소리로 인한 공포를 저울에 놓고 가늠해보면서 재중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탓에 몸도 그다지 좋지 못한 것 같다.

재중은 잠시 멍하니 누워 있다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침대를 헤엄치듯 기어 침대가로 나와 발을 내딛자 발끝이 움칠한다.

창가에서 스며들어온 희미한 가로등의 빛에 의지해 아직 통증이 미미하게 남아있는 발을 천천히 움직여서

문으로 다가갔다.

달칵……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던 재중은 거실에 스탠드가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걸음을 멈췄다.

소파에 깊숙이 앉아있던 윤호가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 왜 그래? 잠이 안 오나? ”

재중은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말했다.

“ ……예…… 좀…… ”

윤호가 들고 있던 글래스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 그래? 어디 아픈 건 아니야? ”

다가온 윤호는 뜻밖에 손을 들더니 재중의 이마를 짚었다.

“ 열은 없는데? ”

이마에 서늘한 체온이 닿자 갑자기 맥박이 빨라졌다. 재중은 그 손을 붙잡아 키스를 하고 싶은 자신을 깨닫고

놀라 숨이 빨라졌다.

“ 괜찮아? ”

윤호가 고개를 숙인다. 시선이 맞닿았다. 호흡이 닿아버릴 것 같다.

순간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힘껏 윤호를 밀쳐내고 말았다.

하지만 완력이 부족했는지 윤호는 조금 뒤로 물러섰을 뿐이지만 정작 재중 본인은 균형을 잃어버렸다.

“ 앗…… ”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던 재중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넘어질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정작 몸에 닿은 것은 차가운 마루 바닥이 아니라 따스한 윤호의 팔이었다.

“ 걱정하지 마. ”

머리카락에 맞닿은 입술이 속삭였다.

“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여기는 안전해. ”

재중은 언제나 들리던 시계소리가 어느샌가 떨리는 자신의 심장소리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윤호의 셔츠를 붙잡았다. 손에는 흥건히 식은땀이 배어있다.

윤호는 팔 안에 잠겨 있는 가는 몸을 안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혼자 자는 것이 불안하면 함께 자줄까? ”

재중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나와 함께 있는 게 싫은 것이 아니었나? 예전이라면

당연히 같은 침대를 썼을 텐데 내게 방을 따로 준 것은 의무나 동정으로 나를 대해주는 것을 암암리에

명시해 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믿기지 않는 얼굴로 눈을 깜박이는 재중을 보고 윤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 아무 짓도 하지 않아, 그런 얼굴로 보지 않아도 돼. 자제심은 어느 정도 있는 편이라고. ”

재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당신이 안아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

아련히 떠오르는 진실에 재중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신이 예전처럼 안아주고, 키스해주고,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저 육체만을 원하는 거라고 해도, 당신이 나를 안아주길 바랬는데.

참지 못하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툭.

“ ……이봐…… ”

윤호가 당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재중은 울먹일 뿐이었다. 그런 일은 이제 없어.

이 사람은 더 이상 나를 상대해주지 않을 거야. 몸이 다 나으면 그 때야말로 안녕인 거야.

어쩌면 그저 책임감이 강할 뿐이어서 나를 보살펴주고 있는 건지 몰라. 그녀는 파혼했다고 했지만,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이 사람은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 때 나를 구하러 와준 거겠지.

기대하다니, 어리석어.

……그만 울고 싶은데. 이 사람은 이제 지긋지긋해 할거야. 언제나 말했잖아, 우는 것은 질색이라고.

하지만 도무지 눈물이 멈춰지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윤호는 계속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재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 그 녀석의 장례는 제대로 치러줬어. ”

“ ……? ”

“ 친척도 없고 단신이어서, 내가 보호자로 장례 치르고…… 유품도 정리해 뒀어.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내줄게. ”

그는 또 다시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재중은 그의 말을 정정할 기력도 없었다.

어느새 힘이 풀려 쓰러지려는 몸을 안아든 윤호는 그가 잠들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안아 침대로 데려갔다.

내려놓고 나가려 했지만 셔츠를 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아서, 윤호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안고 잠을 청해야 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던 윤호는 키스를 옮겨 재중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가 붓고 열이 올라 있는 눈꺼풀로

다시 옮겨갔다. 살짝 열려 있는 입술에 키스를 했지만 맥없이 스쳐간 것이 전부다.

“ 자제심은 어느 정도 있는 편이라고……? ”

윤호는 스스로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조적으로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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