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3부 23편
교문 앞에 서서 학교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재중은 몇 번씩 저 쪽 모퉁이에 주차해 있는 승용차를 돌아보았다.
윤호의 차다. 함께 기다리겠다는 그를 말리면서 재중은
“ 동생이 낯선 사람을 많이 꺼려해요. ”
하고 변명을 했다. 뭐라고 해도 이전에 건우와 함께 왔을 때 있었던 일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건우 생각이 다시 떠오르자 재중은 비어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귓가에 또다시 울려오는 것 같은
시계소리에 심장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가
싶더니 초조하게 달려나간다.
괜찮아.
재중은 불안한 시선으로 윤호가 있는 차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양팔에 둘러져 있는 붕대가 무겁게 느껴진다. 상처는 거의 다 나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자국 때문에
재중은 긴 팔을 입고 붕대를 감은 상태였다. 경우가 성형외과를 알아 봐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수술은 이른 상황이었다.
“ 우선은 체력을 회복해야지 ” 라고 한 마디 한 경우를 생각해내고 재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아이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뛰어나왔다.
쏟아지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동생의 모습을 찾던 재중은 한참만에 멀리서 어깨를 늘어뜨리고
나오는 인찬을 발견했다.
“ 인찬아! ”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동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 ……형?! ”
재중이 팔을 벌리자 인찬은 들고 있던 신발주머니를 던져버리고 냅다 달려와 울음을 터뜨렸다.
“ 형! 형― 혀엉― ”
한참동안 우는 인찬을 안고 있던 재중이 겨우 울음을 참고 말했다.
“ 우리 인찬이, 형 많이 기다렸어? ”
인찬이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형, 왜 그 동안 안 왔어? 형 죽었다고…… 그러고…… 형도 나 버리고 간 거라고 그러고……
나 그래서 얼마나 형 보고 싶었는데…… 형은 나 안 보고 싶었어? 왜 이제 왔어? ”
“ 누가 그래, 형이 죽었다고? ”
“ 규헌이랑 진규가. 진규는 형이 나 버리고 간 거라 그러고 규헌이는 형이 죽었댔어. ”
“ 나쁜 아이들이구나. ”
예상했던 대답에 재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런 얘기는 믿지 마, 형이 어디 좀 다녀오느라고 그 동안 못 온 거야. 이제 주말마다 꼭 올게.
우리 인찬이 걱정할까봐 형이 일부러 학교까지 보러 온 거잖아. 그지? ”
“ ……응…… 그런데…… ”
겨우 울음을 그친 인찬이 붉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 건우형은? ”
순간 재중은 심장이 콱 막혀버리는 것 같았다.
“ 건우형은 어딨어? 왜 같이 안 왔어? ”
“ 건우……는…… ”
재중은 한참만에 겨우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 ……응…… 일이 있어서…… 먼 곳에 갔어. 그래서 같이 못 온 거야…… ”
“ 그래? 그럼 언제 와? 건우형이 나 오토바이 태워준다고 해서 나 기대했었는데…… ”
말을 하다 말고 인찬이 입을 다물었다. 재중이 예전에 오토바이는 안된다고 나무라던 것을 기억해낸 모양이다.
재중은 그러나 이제 인찬을 나무라기보다는 또다시 새어나오려는 흐느낌을 겨우 억누른 것이 전부였다.
“ ……건우는…… 아마 꽤 오래 못 올 거야. 굉장히 멀리 갔거든. ”
“ 그럼 언제 오는데? ”
“ 인찬이가 더 커서……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면. ”
“ ……엄마 아빠처럼 나 싫어서 가버렸어? ”
기가 죽어서 묻는 인찬에게 재중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건우는 우리 인찬이 아주 보고 싶어할 거야. 그러니까 착하게 말 잘듣고 있으면 건우가 만나러 와. ”
“ 형이랑 같이? ”
“ 그래. ”
여전히 서운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인찬은 나름대로 재중의 말에 수긍하려는 기색이었다.
“ 형, 나 집까지 바래다줄 거야? ”
“ 그래. ”
재중은 인찬을 잠시 교문앞에 세워두고 윤호의 차로 다가갔다.
“ 저어, 동생을 할머니 댁에 데려다주려고 하는데요…… ”
먼저 들어가세요, 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 때까지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던 윤호가 말했다.
“ 같이 타, 데려다 줄게. ”
“ ……괜찮아요…… ”
“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만들지 마라. ”
짜증스럽게 내뱉은 윤호의 말에 재중은 허겁지겁 돌아서서 인찬을 데려왔다.
인찬을 먼저 뒷좌석에 앉히고 조수석에 앉은 재중은 차가 출발하기 전에 서둘러 말했다.
“ 인찬아, 인사해. ”
“ 안녕하세요…… ”
윤호의 위압적인 분위기에 압도된 듯 인찬이 죽어 가는 음성으로 겨우 말했다. 윤호는 인찬을 보더니 혼잣말을 했다.
“ 꽤나 안 닮았군. ”
인찬은 재중에 비해서 상당히 예쁘장한 얼굴이다. 도저히 사내녀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물론 아직 어리니까 좀 더 자라면 달라질 지도 모르지만 재중은 때때로 자신도 어릴 때 저런 얼굴이었던가
하고 내심 걱정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것을 저렇게 함부로 말하다니, 불쾌하다. 재중은 내심 기분이 상해서 내뱉었다.
“ 인찬이는 귀여워요. ”
윤호가 피식 웃는다.
“ 그거야 당연하지. 네 동생이니까. ”
저 말은 무슨 뜻이지? 내 동생이니까 당연히 내 눈엔 귀여워 보인다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 재중에게 윤호가 능숙하게 차를 몰며 말했다.
“ 오늘 별다른 일없으면 식사 같이 할까? ”
“ 아니오, 됐어요. ”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내지른 재중은 조금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 인찬이, 집에 가서 숙제랑 공부해야지. ”
“ ……할머니 집…… 가기 싫은데…… ”
오랜만에 다시 본 재중과 헤어지기 싫어하는 기색으로 동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재중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냉정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다시 본 재중과 헤어지기 싫어하는 기색으로 동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재중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냉정하게 말했다.
“ 안돼, 일찍 들어가. 할머니 걱정하시니까. ”
“ 할머니는 나 걱정 안 하는 걸! ”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려는 인찬에게 재중이 날카롭게 말했다.
“ 인찬이 너, 자꾸 버릇없게 굴래? ”
인찬은 흠칫해서 입을 다물었지만 못내 흐느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윤호가 흘깃 재중을 보더니 말했다.
“ 저녁 정도야 괜찮지 않나.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이유를 모르겠군. ”
“ 제 동생이에요. 참견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군요. ”
윤호에게조차 날카롭게 새어나간 음성을 재중은 뒤늦게 깨닫고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차안은 돌이킬 수 없이 긴장된 상태였다.
“ 알았어, 주제넘게 나서서 미안하군. ”
윤호는 불쾌한 듯 말하더니 이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차안에는 작게 흐느끼는 인찬이의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재중은 두통이 일어나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괜한 기대를 갖게 하고 싶지 않아. 건우의 일만으로 충분해. 내밀었던 손을 뿌리쳐진다는 것이
어떤 건지 당신은 모를 테니까, 상관하지 말란 말이야.
어차피 당신도 우리를, 나를, 동정할 뿐인 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