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3부 19편
몸에 둘러져 있는 붕대를 하나씩 제거해갈수록 재중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는 점차 심해졌다.
“ 의식이 돌아오느라 그런 거야. ”
경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쉽게 납득되지를 않았다.
진통제를 요구했지만 의식이 모호한 상황에서 함부로 줄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몸에 들어 있는 피멍이 점차로 가시면서, 윤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금이 간 팔의 붕대를 풀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 저건 뭐지? ”
경우의 얼굴도 역시 일그러진다. 가까이 다가가 팔을 들어보았던 윤호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칼로 새긴 듯 남겨진 자국 주위로 검푸른 멍이 잡혀 있고, 상처는 잿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 멍이랑 이거, 자연적으로는 안 없어지겠는데. ”
경우의 중얼거림에 윤호의 손에 힘이 들어가 뼈마디가 드러났다.
남창(男娼).
두 팔에 모두 남겨진 글자를 윤호는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키득거리며 그것을 새겼을 그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 이 미친 새끼, 그만 둬! ”
경우가 소리쳤지만 이미 그 때는 윤호가 사정없이 주먹으로 벽을 내리친 후였다.
퍽―
연달아 몇 번씩 내리치는 가운데 금새 손은 피로 물들고 벽은 피칠이 되었다.
옆에서 경우의 보조를 하던 인턴과 간호사가 하얗게 질려 멍하니 윤호를 바라보았다.
“ 야, 정윤호! 썩을 자식아, 그만 두지 못 해?! ”
경우가 고함을 지르며 윤호를 말리려 했으나 그만 윤호의 주먹질에 그대로 얼굴을 맞고 말았다.
퍽―
순간 경우가 나가떨어지고 윤호는 뒤늦게 이성이 돌아왔다.
“ 씨발 새끼…… 아야야……. ”
경우는 그 와중에도 욕설을 내뱉으며 윤호를 노려보았다.
“ 염병할, 너 누구 잡으려고 작정했어? 당장 나가! 여기 내 병원이야! 나가라니까!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기만 해봐라,
메스로 네 장기 다 파헤쳐 줄 테니! 당장 안 나가? 씨발, 누구 메스 가져 와!…… ”
발악을 하던 경우가 다시금 ‘ 어이구구 ’ 하면서 턱을 감싸쥐었다.
금새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부어버린 얼굴을 보고 윤호는 자신이 대책없이 이성을 잃었던 것에
대해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 미안해, 이런 일은 없었는데. ”
피곤한 얼굴로 손을 내밀자 경우가 뿌리쳤다.
“ 치워, 씹새끼야. 응급실 가서 니 손이나 치료하고 와. ”
“ 됐어. ”
“ 똥고집은. 엿같은 새끼. ”
‘ 아야야야 ’ 하고 일어난 경우는 턱을 문지르려다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고 혼잣말을 했다.
“ 시베리안이 알면 정말 물어뜯겠어……. ”
“ 뭐라고? ”
“ 아니야, 혼잣말이야. 그보다 이 녀석 팔은 성형외과에 문의해볼게. ”
“ ……그래. ”
얼굴에 통증이 다시 오는 듯 경우는 표정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 넌 안가더라도 난 응급실 가봐야겠다. 너 잘 지켜. 한 번만 더 날뛰기만 해봐라. 그대로 던져버릴 테니. ”
다시 한 번 욕설을 퍼부은 후에 나가버린 경우의 뒤를 쫓아 인턴과 간호사가 나갔다.
남겨진 윤호는 벽에 묻은 핏자국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병실의 한 쪽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이 닿자 찢겨진 살갗이 쓰라리다.
이 정도가 아니겠지, 너의 고통은. 쓴웃음이 나왔다. 바라보는 내가 아픈 것 정도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내 심장이 아픈 것은 너에 비하면 아주 하잘 것 없는 거니까. ……다만
네가 일어나주기만 한다면……
“ ……ㅇ…… ”
세면대의 물을 잠궜던 윤호는 문득 신음소리 같은 것을 듣고 서둘러 나왔다가 놀라 멈춰 섰다.
재중이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활짝 떠진 눈으로 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공포에 젖어 크게 떨리는 상태였다. 시선을 쫓아갔던 윤호는 거기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보고 잠시 의아해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시계는 4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5시를 향해 가는 분침을 노려보는 재중의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해진다.
전신을 부들부들 떠는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윤호는 나쁜 예감에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 정신이 들어? 여기 어딘지 알겠어? ”
급히 물었지만 재중은 대답하지 않고 시계만 노려볼 뿐이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조용한 방안에 가득히 시계소리가 퍼진다. 재중은 눈을 뜨고 의식을 깨었지만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의 세계에는 오로지 시계와 시계소리뿐이다. 그것도 5시를 향해 달려가는 분침과 초침소리.
“ 아아아아아악―! ”
마침내 시계가 정확히 5시를 가리켰을 때, 재중은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 김재중! ”
윤호가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킨 재중을 억지로 붙잡아 눕혔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듯 크게 요동치는 몸을 붙잡는
것은 꽤나 큰 노력을 필요로 했다.
“ 아, 아아…… 아아악…… ”
윤호는 그가 내지르는 비명이 고통때문인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의 발작이 가라앉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링거줄이 뽑히고 피가 흘러나온다.
여기저기 상처를 묶은 붕대가 빨갛게 물들었다. 요란한 소음을 듣고 달려온 간호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급히 나가는가 싶더니 몇몇 사람들을 불러왔다. 덕분에 난동을 부리는 재중을 겨우 제지할 수 있었던 그들은
안정제를 놓고 겨우 그를 잠재웠다.
“ 어떻게 된 건가요? ”
간호사가 물었지만 윤호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시 잠이 든 그에게서 천천히 시선을 돌렸던 윤호는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묵묵히 5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