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93화 (93/123)

거짓말 3부 18편

재중이 일반 병실로 옮겨진 것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간간이 의식이 깨인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정작 윤호가 그것을 확인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윤호가 찾아갈 때면 그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뜨고 자신을 보아주기를 간절히 바래보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겨우 병실로 옮겨진 후에 윤호는 아예 병원으로 거처를 옮기다시피했다.

“ 열남 났구나. ”

경우가 비아냥거렸지만 무시했다. 튜브라던가 붕대가 처음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보다는 많이 적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꽤 중상으로 보였다.

“ 늑골은 그냥 내버려두고 붙길 기다려야 해. ”

경우는 그렇게 말했다. 덕분에 간간이 기침을 할 때면 재중은 괴로운 듯이 신음을 삼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윤호는 안타까워 그의 손을 잡아보지만 역시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전신에 붕대를 감다시피하고

누워만 있는 그를 볼 때마다 윤호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분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밤이 되자 열이 올라 재중은 붉어진 얼굴로 식은땀을 흘려댔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던 윤호는 재중의

손을 붙잡고 기도를 했다.

뭐든지 바치겠습니다.

당신이 바라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좋으니, 더 이상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간절히 바랬지만 재중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 ……일어나…… ”

피곤에 지친 음성으로 윤호는 속삭였다.

“ ……부탁이야, 눈을 뜨고 나를 봐줘…… ”

그 어떤 것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는데, 어째서 너는 나를 보아주지 않는 걸까. 무슨 꿈을 꾸고 있어?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어? 나는 여기서 이렇게 애타게 너를 기다리는데, 왜 너는 돌아와 주지 않는 거야……?

밤새 윤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재중의 곁을 지켰지만 상태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 말씀하신 서류입니다. ”

회사에서 서류를 병원으로 들고 온 희태가 말했다. 노트북에서부터 필요한 최소한의 기기 전반을 병실에 들여놓고

재중을 간호하는 틈틈이 일을 하

는 윤호를 보며 희태는 충고했다.

“ 이러다가 사장님이 먼저 쓰러지시겠습니다. ”

“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 여긴 왜 숫자가 틀린 거지? ”

한 마디로 일축하고 서류의 한 쪽을 짚는 윤호에게 두 손들었다는 듯 희태는 대답했다.

“ 시정하겠습니다. ”

“ 그래. 주주를 더 모아봐. 싯가의 몇 배라도 좋으니까 최대한 사들여. 해외지사는 어떻게 되었지? ”

“ 준비중입니다. ”

“ 또 다른 건 얼마나 알아냈나? ”

“ 신 지영씨와 접촉한 일당은 이 건우와 같은 패거리였는데…… ”

말을 하던 희태는 갑자기 윤호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윤호는 급히 침대가로 다가가 재중을 살펴본다.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 어디가 아픈가? 안 좋아? ”

사색이 되어 묻는 윤호의 얼굴에서 재중에게로 시선을 돌렸던 희태는 창백한 얼굴로 낮게 신음을 쏟아낼 뿐

의식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내심 측은한 기분이 들었다.

윤호는 한참 재중의 안색을 살피다가 그가 다시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희태에게로 돌아섰다.

“ 계속 해 봐. ”

“ ……네. 이 건우와 한때는 같이 다녔던 패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는 물론이고 그 일대 ‘ 짱 ’으로 통하던

녀석 같은데, 이 곳 저 곳 꽤 헤집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조사해 본 결과 상당히 큰 조직의 일원과도

아는 사이더군요. ”

“ 그런가. ”

윤호는 무심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의 눈에 서늘한 미소가 스치는 것을 희태는 놓치지 않았다.

“ 그 쪽의 간부와 협상을 해보지. 약속을 잡을 수 있겠나? ”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윤호는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후 희태를 돌려보냈다. 다시 의자를 끌어와 재중의 옆에 앉은 윤호는

열이 올라 있는 재중의 손을 붙잡아 손등에 입을 맞췄다.

“ 모두 다 없애줄 거야. ”

속삭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는 깊은 증오가 숨겨져 있었다.

“ 너를 이렇게 만든 모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매달리게 만들어 주겠어.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