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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91화 (91/123)

거짓말 - 3부 16편

수술실 앞에 앉아있었던 것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윤호는 흘깃 시계를 보았지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불과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절망해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경우는 찾아온 사진들을 보여주며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 머리쪽은 그다지 심하지 않아. 피가 고여있는 건 아마도 구타 때문일 거야.

저건 자연적으로 흡수되길 바라는 수밖엔 없어. 혈관이 심하게 터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장 쪽인데 ……상대가 꽤 많았던 모양이야. 게다가 심하게 당해서……

이 쪽은 일반외과쪽하고 더 얘기를 해봐야 겠어. 일반외과 말로는 어느 정도 장을 잘라내야 할 것 같아.

열어봐야 알겠지만 복구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니까…… 그리고 늑골이 세 대 나갔어.

팔 다리는 한 쪽씩 금이 가 있고. 손 발톱 역시 심하지만 그건 시간 지나면 다시 날 거야.

늑골이 부러지면서 폐를 찌른 것 같은데, 아마 그래서 출혈이 더 심했다고 봐.

그래서 몇 가지 관을 박아야 할 것 같은데…… ”

몸 안에 고여있는 피를 빼내기 위한 일시적인 관이라든가 수술에 관한 동의서를 쓰자마자 수술이 시작됐다.

예정되어있던 환자의 수술을 미루게 되었지만 경우는 시니컬하게 한 마디 했을 뿐이다.

“ 지방제거수술 따위 하루 늦어지면 어때. ……오해하지 마, 빌어먹을 자식아.

네가 엿같은 친구라서가 아니고 환자가 응급상황이라서야. ”

끝까지 욕설을 지껄이고 돌아선 경우는 곧장 수술실로 향했다.

그리고 윤호는 이제나 저제나 초조하게 수술실문이 열리고 그가 나와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피리리릭. 피리리릭.

전화벨소리가 들린다. 윤호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천천히 핸드폰을 꺼냈다.

“ ……네, 정윤호입니다. ”

“ 사장님, 정희태입니다. 일은 모두 깔끔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마를 조금 다쳐서 치료를 받았는데,

오늘은 일찍 퇴근해도 괜찮을까요? 와이프가 마중을 와서. ”

“ 그래, 수고했어. ”

전화를 끊어버린 후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스파크를 일으킬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심호흡을 하는데, 갑자기 수술실의 문이 열리고 경우가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윤호를 보고 경우가 쓴웃음을 짓는다.

“ 아직 수술 안 끝났어, 손 바꾸느라 나온 거야. ”

“ ……아아…… 그래…… ”

눈에 띄게 어깨가 늘어져버렸다. 다시 털썩 앉아버린 윤호에게 경우가 물었다.

“ 한 대 피우러 갈 건데, 너는? ”

윤호는 대답대신 고개를 젓는다.

“ 소문난 골초인 주제에, 안 피우고 괜찮겠냐? ”

“ 여기 있을 거야. ”

고집스럽게 말하는 윤호를 보고 경우는 하아, 한숨을 내쉬며 옆에 털썩 앉았다.

“ ……어…… 땠어……? ”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움직여 묻는 윤호에게 경우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되물었다.

“ 진심으로 듣고 싶어? ”

“ …… ”

“ 교통사고로 아작난 시체도 그렇게 엉망이진 않겠더라. ”

“ …… ”

“ 씨발, 미친 새끼들. 꽤 해본 솜씨던데. 주먹질 전문으로 까는 새끼들도 있었던 모양이야.

너도 봤지? 피부가 온전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어. 죄다 피멍이 들어서.

차라리 상처가 나서 피가 밖으로 나오면 나았을 텐데, 혈관이 터져서 그 피가 죄다 몸 안에 고여 있었던 거라고.

저렇게 되면 골병든다고. 쟤, 고등학교는 졸업했냐? 저렇게 어린 녀석이 완전히 폐인 되게 생겼어.

날 궂으면 아프다고 우는 건 예사 일 거다. ”

“ ……내 탓이야. ”

“ 얼씨구. ”

경우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윤호를 노려보았다.

“ 자책할 시간 있으면 저 꼬마를 위해서 뭘 해줄까나 고민해보지 그래? ”

그리고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 어쨌거나 니가 그러고 있어봤자 도움 될 거 하나 없어. 네 덕에 난 오늘 꼼짝없이 병원에 틀어박히게 생겼다고.

나중에 크게 써. ”

말을 마치자마자 울려온 전화벨 소리에 경우가 전화를 들었다.

“ 네. ……아아,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어쩌냐. 나 오늘 응급환자 생겨서 못 나가. 다음으로 하자구.

……너, 시베리안인 주제에 지금 주인을 물겠다는 거냐?…… ”

일반적인 대화보다 욕설이 더 많은 경우의 전화를 흘려들으면서 윤호는 생각을 되짚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이대로 그 애를 잃게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윤호의 이마가 깊게 패이며 인상이 험악해졌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너희 중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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