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15편
“ 문 경우! ”
차에서 내려 병원문을 걷어차고 냅다 뛰어들어가 소리친 윤호를 사람들은 놀라 돌아보았다.
“ 젠장할, 병원에서는 좀 조용히 해, 빌어먹을 자식아. ”
한 쪽에서 환자를 보고 있던 웬 남자가 투덜거리며 윤호에게 다가왔다.
키가 큰 편이지만 윤호보다는 작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그는 곱상한 생김과는 다르게 입이 험했다.
약간 긴 커트머리를 쓸어 올리며 걸어왔던 그는 윤호에게 안겨 의식을 잃고 있는 재중을 보고 당장
표정이 변해 소리쳤다.
“ 개자식아, 이 꼴로 만들어놓고 나한테 데려오면 어쩌겠다는 거야?! ”
“ 시끄러, 입 닥쳐! 당장 고쳐내, 멀쩡하게 돌려놓지 않으면 너야말로 죽여버릴 거야! ”
자신보다 두 배는 큰 음성으로 소리를 지르는 윤호를 보고 경우는 순간 놀랐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 감정의 동요가 그대로 드러난 표정.
“ 너 미쳤구나. ”
절대 자신이 알고 있던 윤호의 모습이 아닌 것에 놀라워하며 경우는 중얼거렸으나 곧 이성을 되찾았다.
“ 어쨌거나 베드에 내려놔. 검사를 해봐야 알겠어. ……젠장할, 완전히 엉망이 됐군.
이러고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차트 정리 나중에 하고 여기 좀 봐줘요! ”
간호사와 인턴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고 그들은 뭐라 전문용어를 떠들어대며 이것저것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피를 뽑아야 했지만 온 몸에 가득한 멍 때문에 혈관을 찾을 수 없어 경우가 다시 욕설을 내뱉으며
대퇴 쪽에 혈관을 잡았다.
“ 산소 연결해. 전신 엑스레이 찍고, 머리 쪽은 CT도 찍어봐. 이거 응급샘플이라고 최우선으로 돌리라 그러고,
……배도 한 번 찍어봐야겠는데. 머리하고 배, 둘 다 CT찍고……. ”
윤호는 속수무책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토록 무력감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이제 아예 의식조차 없이 저렇게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재중을
보기만 해야한다는 것이 괴로웠다. 바쁜 와중에 그런 윤호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경우가 소리쳤다.
“ 너 할 일 없으면 나가서 담배나 피우고 있어. ”
쫓겨나다시피 떠밀려나온 윤호는 초조한 심정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담배를 사왔다.
돌아와 보니 재중은 벌써 엑스레이실로 날라지고 없고, 이것저것 추가로 지시를 내리던 경우가 윤호를
눈치채고 다가왔다.
“ 잠깐 쉬면서 얘기 좀 들어보자. 어떻게 된 거야? ”
“ 나도 잘 모르겠어. ”
솔직히 말하며 윤호는 경우와 함께 응급실 밖으로 나와 바로 앞의 벤치에 앉았다.
“ 파혼했다더니, 저 쪽이 이유야? ”
“ 그래. ”
언제나 눈치빠른 경우였기 때문에 역시 솔직히 대답했다. 경우가 피식 웃는다.
“ 썩을 기집애, 걔 사고 칠 줄 진작에 알았다. ”
“ ……그래, 나만 몰랐군. ”
스스로를 경멸하듯 입가를 일그러뜨리는 윤호의 어깨를 경우가 말없이 두드려주었다.
손가락에 물려 있는 담배를 빼앗아 한 모금 피운 경우가 말했다.
“ 니가 운이 나빴던 거야. 하필 그런 기집애를 만나서. ”
“ ……상태가 어때? ”
경우가 길게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 좋지 않아. 출혈이 굉장했던 모양이야. 일단 수혈준비 시키고 검사 끝나면 수술 들어갈 거야.
장 쪽은 내진(內診)도 못 했어. 그렇게 엉망으로 당한 건 처음 봐. ”
“ ……그렇……구나. ”
“ 좋은 대답 못 해줘서 미안하다. ”
“ 아니야. ”
고개를 가로 저었던 윤호가 혼잣말을 했다.
“ 사업을 배우지 말고 의사를 하는 거였는데. ”
“ 씨발새끼야, 의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알어? ”
곧장 욕설을 내지르는 경우에게 윤호가 피식 웃었다.
“ 그렇군. 난 원장 아들은 못 되니까. ”
“ 터진 아가리라고 읊어대기는. ”
경우가 다시 깊숙이 담배연기를 들이마셨다.
“ ……그런데, 진심이냐? ”
“ 그래. ”
“ 하긴, 니 성격에 진심이 아닌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할 리가 없지. ”
그는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푹 내쉰 후 말했다.
“ 몸이 나아도 앞으로 힘들겠다, 정신과 치료받을 각오해. ”
“ 난 괜찮아. ”
“ 씨발, 넌 괜찮아도 쟨 안 괜찮아. 그거 보면서도 괜찮을 거냐고 묻는 거잖아. ”
“ ……괜찮아. 있어주기만 해도 돼. ”
“ 정윤호 많이 처량해 졌구나. ”
윤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문 경우 선생님! 환자 왔어요. ”
응급실에서 급히 머리를 내밀고 소리친 간호사에게 경우는 담배를 집어던지고 일어나 쫓아가며 소리쳤다.
“ 사진은? ”
“ 함께 찾아왔습니다. ”
급히 들어가는 경우의 뒤를 쫓아가며 윤호는 다시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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