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89화 (89/123)

거짓말 - 3부 14편

피리리릭. 피리리릭.

“ 네, 정윤호입니다. ”

윤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붙잡은 채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 믿음직스러운 비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 말씀하신 별장에 가고 있습니다. 어디쯤 계십니까? ”

윤호는 시계를 흘깃 보고 말했다.

“ 두 시간쯤 걸릴 것 같아. ”

“ 그러십니까. 저 역시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우선 최대한 밟아서 가보죠. ”

“ 알았어. ”

간단히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문득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마치 유령처럼 창백하다.

게다가 미간은 심하게 찌푸려져 있어 험악하

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체면을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 제길. ”

기어를 바꾸고 차를 질주시킨다. 벌써 150이 예전에 넘은 속도계가 위험스럽게 까딱거렸다.

하지만 윤호는 보다 더 빨리 가지 못하는 자신이 저주스러울 정도였다. 왜 아직도 이렇게 멀기만 한 걸까.

이토록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데. 그는 제발 재중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 환영이 꽤나 요란하군. ”

영철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중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이런, 그렇게 당당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건우 새끼한테 이걸 꼭 보여주고 싶은데, 유감인 걸? ”

한참 웃고 있던 그들 중 하나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 어라, 저 새끼 이제 보니 몸이 아주 그럴 듯 한데. ”

그는 재중에게 성큼 다가가 발로 몸을 걷어찼다. 재중이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질렀다.

“ 이것 봐, 여기는 내가 만든 거라고. ”

검게 변한 멍자국을 신발 뒷꿈치로 내리찍는다. 다시금 비명이 나왔지만 그들은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며칠 전 구타로 인해 남은 온 몸의멍자국을 하나하나 짚으며 그들은 떠들어댔다.

“ 그래, 이건 내가 만든 건데. ”

“ 푸하하, 이 새끼 이거 이대로 내놓으면 정말 꼴 좋겠어. ”

“ 어디 가도 이렇게 예쁜 남창 없을 걸. ”

“ 그래, 그럼 더 예쁘게 만들어 줘야겠는데. ”

누군가의 말에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빛냈다.

“ 좋은 생각이야. ”

“ 또 뭘 하게? ”

“ 보고만 있으라고. ”

그들은 움칠거리며 공포에 떨고 있는 재중을 등지고 뭔가를 가져왔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가져온 것을 내민다.

하얀색 초크(chalk)가 눈에 띄

었다.

“ 이 정도로 예쁘게 몸이 물들었는데, 무늬도 새겨줘야지. ”

“ 그만 둬, 계집애들처럼 뭐하는 짓이야. ”

누군가 말했지만 그들은 키득거리며 대꾸한다.

“ 싫으면 넌 빠져. ”

“ 미친 새끼들. ”

몇몇은 흥미가 없는 듯 뒤로 물러서서 자기들끼리 담배를 피워대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 고갯짓을 하며 재중의 몸을 붙잡았다. 재중의 얼

굴이 하얗게 질리며 공포의 빛이 가득 차 올랐다. 영철이 또 다시 나이프를 꺼내더니 울긋불긋하게 멍이 든 재중의 팔을

붙잡았다.

“ 아주 예쁘게 새겨주지. ”

칼끝이 깊이 살갗을 파고든다. 재중이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을 치고 싶지만 통증과 함께 몸을 내리누르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한참 살갗을 찍어 내리던 칼이 멈추는가 싶더니 영철이 들고 있던 초크를 신발로 으깨고

담뱃재를 섞어 넣었다. 가루를 손으로 집어 피투성이가 된 팔에 문지른다.

쓰라린 감촉에 재중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키득거리며 다른 팔을 붙잡았다.

다시 칼끝이 파고든다. 이제 재중의 머릿속은 시계소리와 그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할 뿐이었다.

팔에서 다시 피가 흘러나온다. 그토록 출혈이 심했는데 아직도 자신의 몸에 피가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영철이 다시 담뱃재와 초크를 섞은 가루를 거칠게 팔에 문질러댔다.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것조차도 쉽지 않다니. 그 때 영철이 피우고 있던 담배를 입에서 떼었다.

“ 여긴 재떨이가 없는 게 흠이란 말이야. ”

치직―

“ 아악――! ”

몇 백도의 뜨거운 열이 살갗에 그대로 문질러졌다. 재중의 비명소리가 다시 터져 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거친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콰당―

“ 뭐, 뭐야?! ”

패거리들은 놀라 난데없이 등장한 웬 남자를 보고 소리쳤다.

그는 다짜고짜 창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자신을 막아서는 패거리들을 간단히 물리치기 시작했다.

“ 이 새끼……! ”

욕설과 함께 덤벼든 누군가도 한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그는 한꺼번에 달려드는 패거리들을 상대로 구석에 놓여있던 각목을 집어 크게 휘둘렀다.

몸에 배인 무도가의 그것에 다들 주춤한다. 그 때까지 재중을 붙잡고 있던 패거리들도 갑작스러운

그의 출연에 놀라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퍽―

“ 정 희태, 여기 있나? ”

마지막 한 녀석을 막 때려뉘었을 때, 윤호가 소리치며 들어왔다.

그는 널부러져 있는 수많은 패거리들보다 먼저 재중을 발견하고 하얗게 질려 다짜고짜 그 쪽으로 달려갔다.

“ 이봐, 괜찮아?! ”

초점이 모호한 재중의 눈은 그러나 윤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하얗게 질려 곧장 재중을 안고 밖으로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 정 희태! 여기는 모두 네가 정리해! ”

“ 알겠습니다. ”

그는 급히 자신의 차로 재중을 안고 가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그를 눕히고 과속으로 차를 몰아가며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 문 경우, 급히 봐줘야 할 환자가 있다. ……빌어먹을, 자리가 없으면 누구든 퇴원시켜서 만들어!

아니면 병실을 하나 늘리던가! ”

윤호는 난폭하게 전화를 끊고 창백한 얼굴로 차를 몰았다. 몇 대의 차를 추월했는지 알 수가 없다.

머릿속은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다. 제발 무사하기를. 제발 무사해 주기를.

그토록 열심히 무언가를 빌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윤호는 이제껏 신을 믿지 않았던 자신을 저주하면서

제발 자신의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