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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88화 (88/123)

거짓말 - 3부 13편

의식이 몸 위로 몇 센티 정도 떠올라 있는 것 같다. 부유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싶지만 그럴 기력조차 없다.

말 그대로 손끝에서 발끝까지 뻗치는 저릿한 통증이 지독하게 고통스럽다.

칩, 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손톱 밑에 나이프를 박아 넣고 그들은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는 내내 손톱과 손가락 사이에 걸려 있는

나이프 때문에 고통스러워해야 했던 재중은

그러나 손톱이 차례로 뽑히고 난 후에 이번에는 발톱까지 뽑혀야 했다.

“ 뭐야, 칩이 모자라잖아? ”

영철은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발톱 밑에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들은 키득거리며 웃을 뿐이다. 나이프를 꽂아두었지만 손톱과는 다르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톱을 보고 영철은 다른 나이프를 꺼내 발톱과 살갗이 연결된 곳을 잘라내 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그것을 그들은 칩이라고 부르며 웃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재중은 고통으로 가득한 머릿속에 단지 그것하나만을 바랬다.

나를 죽여줬으면. 제발 어서 죽여줬으면.

빌고 싶었다. 당장 그들이 죽여주기만 한다면 어떤 짓이라도 할 것 같았다.

“ 아…… 우…… 으…… ”

겨우 신음을 뱉어내자 마침 새로운 발톱에 나이프를 박아 넣었던 영철이 고개를 들었다.

“ 응? 뭐라고? ”

재중은 눈물과 피 등으로 온통 뒤범벅이 되어 있는 얼굴에 다시 눈물을 쏟아내며 겨우 말했다.

“ 차라리…… 제발…… 죽여 줘…… ”

애원했지만 그들은 웃을 뿐이었다.

“ 안돼, 그렇게 되면 물주가 사라지거든. ”

그들은 크게 웃으며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포커가 계속되면서 재중의 머릿속에는 점차 사고가 정지하는 것 같았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 사이로 그들이 웃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웃음소리, 웃음소리, 웃음소리.

시계가 돌고 있다. 시침과 분침이

한 바퀴를 돌아 겹쳐졌다가 다시 분리된다. 세상이 부옇게 흐려졌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고통뿐이다. 생각나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없었다.

제발, 누군가 나를 죽여주세요……

재중은 겨우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고 빌었으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계소리가 들린다. 재중이 겨우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벽시계였다.

아직 3시. 재중의 머릿속은 이미 시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저걸 없애야 해.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공백이 되어 그것만을 겨우 떠올렸다. 5시. 5시가 되면 또 그들이 오겠지.

저걸 없애야 해. 없앨 거야. 없애야 해……

그는 바닥을 기어 겨우 겨우 나아갔다. 손톱과 발톱이 빠져나간 자리에 피가 엉겨붙어 움직일 때마다

저릿하게 통증이 온다.

뎅, 뎅, 뎅, 뎅.

어느새 4시가 되었다. 재중은 공포가 밀려왔다.

“ 아, 아으…… 우…… ”

신음소리는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다. 그가 기어가는 자취로 길게 핏자국이 이어졌다.

나, 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

부자유스러운 사지 때문에 고통스러워 스스로 죽을 수조차 없었다.

뎅.

시계가 벌써 4시 30분을 가리킨다. 재중은 공포에 질려 이제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시계소리에 섞여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리는가 싶더니 곧장 몇 배로 곤두박질쳤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시계소리, 계속되는 시계소리. 거기에 섞여 발소리가 들려. 그들이 오고 있어. 또다시 그들이 와……

뎅, 뎅, 뎅, 뎅, 뎅……

벌컥.

“ 아아아아아아아악―― ”

정확히 시간에 맞춰 그들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재중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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