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87화 (87/123)

거짓말 - 3부 12편

발 밑에 수북한 담배꽁초를 보고 그녀는 그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았다.

지영은 아무렇지 않은 척 새침하게 그를 지나쳐 열쇠를 꽂으며 말했다.

“ 어쩐 일이야? 나를 다 찾아오고. ”

“ 물어볼 게 있어서. ”

“ 별 일이네. ”

지영의 뒤를 따라 아파트에 들어간 윤호는 거실에 멈춰 섰다. 지영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핸드백을 던진 후 돌아섰다.

“ 그래서 버려진 약혼녀에게 무슨 볼일이신지? ”

“ 그 애, 어떻게 했어? ”

다짜고짜 물은 말에 지영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 무슨 소리야? ”

“ 시치미 떼지 마, 네 짓이지? ”

지영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윤호를 노려보았다.

“ 갑자기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하는 소리가 그거야? 실망했어, 윤호씨. ”

“ 신 지영. 시간 끌지 말고 말해. 너랑 실갱이할 여유 없어. ”

“ 그~래? 어쩌지? 나는 전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

그녀는 우아하게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유혹적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 글쎄, 행여나 지금 윤호씨가 나랑 자준다면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

윤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 생각해보니까, 윤호씨만한 테크닉을 가진 남자는 없더라고. ”

팔을 뻗어 자연스럽게 목을 감싸오는 그녀를 윤호는 경멸하듯 노려보았다.

“ 묻는 말에나 대답해, 너와 이따위 짓 하고 있을 생각 전혀 없으니까. ”

그녀는 윤호의 말에 기분이 상한 듯 험악한 얼굴로 팔을 내렸다.

“ 그래? 그럼 돌아가시지.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라고는 없으니까. ”

“ 말하게 할 방법은 많아. ”

“ 글쎄? 뭐가 있을까? ”

팔짱을 끼고 해볼테면 해보라는 듯 여유있는 얼굴로 윤호를 노려보는데,

갑자기 윤호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 러시안 룰렛이라는 거 해봤어? ”

지영은 뜻밖의 상황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윤호의 손에 들려 있는 리볼버가 차가운 빛을 냈다.

그 금속만큼 차가운 얼굴로 윤호가 웃었다.

“ 보다시피 총알은 하나야. 단 한 번 발사되지. ”

그는 일부러 탄창을 열어 확인시킨 후 다시 닫았다. 빙그르르, 탄창이 회전을 하고 어느 것에 총알이 들어가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 영국에서 유학할 때, 꽤 자주 하고 놀았지. ”

“ ……미치기라도 했어? ”

“ 사격실력은 믿어도 좋을 거야, 클럽에서 1위를 한 경험도 있으니까. ”

윤호가 총을 자신의 머리로 가져갔다.

“ 모든 것은 운이야, 신 지영. 어디 해보자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

지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윤호가 서늘한 얼굴로 웃는다. 동시에 윤호가 방아쇠를 당겼다.

“ 그만둬……!! ”

철컥.

허무하게 내려앉은 금속음에 지영은 막혔던 숨을 겨우 토해내었다. 윤호가 빙긋 웃는다.

“ 운이 좋았군. ”

그리고 그는 서슴없이 지영의 머리로 총을 들이댔다.

“ 이번엔 네 차례야. ”

지영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머리에 총을 들이댔다면 이 정도로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윤호는 그의 머리를 먼저 쐈다. 자신을 향해서 저렇게 미련 없이 방아쉬를 당기는데,

타인에게는 어떻겠는가. 윤호가 차가운 얼굴로 웃었다.

“ 시간이 없다고 말했잖아. 말하지 않으면 그냥 쏘겠어. ”

“ 미, 미쳤어…… ”

“ 삼 초 주지. 하나. ”

“ 진심으로 쏘겠다는 거야?! ”

“ 둘. ”

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윤호의 입에서 마지막 한 마디가 새어나왔다.

“ 셋. ”

“ 서 서해안 벼, 별장 창고에……! ”

철컥.

거친 호흡소리가 이어졌다. 지영은 한동안 멍하니 윤호의 손에 들려 있는 리볼버를 바라보았다. 윤호가 다시 웃는다.

“ 너 역시 운이 좋군. ”

그리고 그는 이번엔 소파를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천둥처럼 요란한 총성이 울리고 지영은 비명을 질렀다. 윤호는 리볼버를 거두고 지영을 노려보았다.

“ 언제까지나 운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신 지영. 이번이 네 마지막 운일 테니까.

만약의 경우엔 정말로 죽여버릴 거야. ”

그리고 윤호는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지영은 거친 호흡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