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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85화 (85/123)

거짓말 - 3부 10편

학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화로웠다. 시계를 흘낏 보니 벌써 2시가 넘었다. 제길, 점심시간은 공쳤군.

작게 혀를 차며 학교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수위가 고개를 빼꼼이 내민다.

“ 무슨 일로 왔소? ”

“ 학부형입니다. ”

그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희태의 체격이 만만치 않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캐어묻지 않았다.

희태는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곧장 학교 안으로 들어

갔다.

자, 이제 어쩐다.

무작정 학교에 오긴 했지만 이렇다할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건우라는 녀석은 죽었다는데,

그 뒷조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학교는 마침 수업시간이라 체육을 하러 나온 아이들 말고는 꽤 조용했다.

때마침 수돗가로 달려온 한 아이를 보고 희태는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이봐, 물어볼 게 있는데. ”

위 아래로 검은 색 양복을 쫙 빼입은 그를 보고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흡사 조폭을 보는 것 같은 반응이다.

희태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말했다.

“ 이 건우라고, 알고 있어? ”

“ 에. 에에. 에! ”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희태는 그가 알고 있다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 이 건우가 같이 다녔던 패거리들이 누구야? ”

“ 에, 에에, 에에…… 여여여여영철이파요! ”

“ 영철이 파? ”

얼굴을 찌푸리고 되묻자 그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에, 에에. 전에 영철이파랑 같이 다녔는데 무슨 일인지 맞장 뜨고 나서 같이 안 다니던데요…… ”

“ 그런가. 그럼 그 영철이파는 어디 있어? ”

“ 오, 오, 옥상에 자주 몰려 있어요! ”

“ 옥상이라…… 어느 건물? ”

아이는 가녀린 손을 들어올려 한 건물을 겨우 가리켰다.

“ 고마워. 공부 열심히 해라. ”

나름대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렸지만 그의 표정은 굳어진 채 풀리질 않았다.

희태는 급히 부산한 걸음을 그 쪽 건물로 향했다.

피리리릭. 피리리릭.

전화벨 소리에 윤호는 서류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스피커폰을 눌렀다.

“ 네, 정윤호입니다. ”

“ 비서는 어쩌고 네가 직접 받아? ”

익숙한 창민의 음성에 윤호는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 잠깐 출장갔어. 용건은? ”

“ 별 건 없고…… 요즘 어떻게 지내? ”

“ 별 거 없으면 끊어. ”

막 스피커폰을 누르려는데 창민이 다급하게 다시 말했다.

“ 아아, 알았어! 말할게, 말한다고! ”

“ …… ”

윤호는 그를 재촉하는 대신 얼굴을 찌푸린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지영이랑 연락해 봤어? ”

“ 내가 왜 그래야 하지? ”

시니컬하게 대꾸한 윤호의 말에 그는 긴장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지영이, 벌써 며칠 째 연락이 안돼. ”

“ 또 잘 빠진 남자라도 구한 모양이지. ”

여전히 무관심한 대답이 이어졌으나 창민은 쉽게 전화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 그게 아니야, 이상해. 그 애, 뭔가 저지를 것 같다고. ”

“ 나와는 상관없어. ”

“ 넌 그 애를 몰라도 너무 몰라, 약혼까지 한 주제에. ”

“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싶은 거야? ”

잔뜩 짜증이 섞여 들어간 윤호의 음성에 창민이 말했다.

“ 그 애, 네 앞에서는 잘도 감추고 있었던 것 같지만, 보통내기 아니야.

마음에 안 들거나 거슬리는 상대 있으면 정말 끝까지 해댄다고. ……넌 모를 거야. ”

“ …… ”

“ 네가 파혼한 이유, 지영이는 그 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

“ 잘 아는 군. ”

“ 정윤호…… ”

창민은 피곤하다는 음성으로 짜증을 냈다.

“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정말 모르겠다는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뭔가 해보란 말이야! ”

“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

“ 재…… ”

윤호는 다시 뭔가 말하려는 창민을 가로막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창민이 한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민이 그 애에 대해서 저렇게 걱정하고 말하는 것은 불쾌하다.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만 아니었다면 나는 계속 모른 척 할 수 있었어. 그랬으면 이렇게 일이 꼬이지는 않았을 거야.

의미 없는 원망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호는 달리 수가 없었다.

누구든 원망하지 않고는 속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괴었던 윤호는 얼굴을 찌푸리고

다시 전화를 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떨어지고 난 후 희태의 음성이 이어졌다.

“ 어떻게 됐어? ”

다짜고짜 물은 말에 희태는 평소처럼 침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조사중입니다. ”

“ 조사중이라니? ”

“ 이 건우는 패싸움에 휘말려 죽었다는군요. 그래서 학교의 패거리들이 김재중을 끌고 간 모양인데,

학교에는 그 패거리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저기 묻고 있습니다. ”

윤호가 이를 악물었다. 미간이 심하게 좁혀지며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 알았어, 그럼 그 패거리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 ”

전화를 끊고 나서 윤호는 창민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내가, 그녀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지영은 단지 버릇없이 자란 귀한 아가씨가 아니었나? 성격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어쨌다는 거야?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뭔가가 있었던 건 아닌가?

……왜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오르지……?

윤호는 호텔에 있던 당시 갑자기 재중이 히스테리를 일으켜 호흡곤란까지 갔던 일을 기억해냈다.

뭔가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윤호는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슈트를 들고 사무실을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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