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8편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소리가 들린다……
재중은 힘겹게 겨우 눈을 들어올렸다. 창고와 같이 낡고 넓은,
침침한 공간에 남겨져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지금도 온 몸을 부서뜨릴 것같이 퍼져나가는 통증이
움직이게 되면 극대화될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재중은 눈만 깜박이는 것이 전부였다.
넓은 공간을 밝혀주는 것은 천장에 외로이 꽂혀있는 오래된 전구뿐이어서,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 안에 무엇이 있는가가 대충 보였다. 넓은 큐대와 당구큐, 벽에
세워져 있는 각목들, 그리고 몇 가지 공구들이 보였다.
뎅, 뎅, 뎅.
벽 한 쪽에 걸린 야광괘종시계가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파……
겨우 몸을 움직여 보던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과 같이 숨을 삼키고 말았다.
바닥을 기어 천천히 나아갔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힘없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숨을 몰아쉬던 재중은 자신을 경멸하며 웃고 있던 그녀를 떠올렸다.
순순히 너를 내놨으면 그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말이야, 불쌍하기도 하지.
바보는 일찍 죽는다잖아?
……건우……
부어서 열이 오르고 있는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어이가 없다. 사람의 생명이란 이
렇게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네게 말해주는 거였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재중이 눈을 감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였는데. 거짓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이렇게 가슴에 맺히진 않았을 텐데.
왜 나는 네게 말해주지 못했을까.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더라면, 거짓이라도,
너와 내가 모두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말하는 거였는데.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였는데.
“ 흐윽……. ”
작게 흐느끼며 지친 몸으로 겨우 눈물을 떨구어내던 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아련하게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재중은 다시 잔뜩 부어버린 눈을 겨우 움직여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누군가 오고 있어.
하나가 아니라 꽤 여럿이 오는 것 같이 부산한 발걸음에 재중은 기대와 불안으로 뒤엉킨 심정으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벌컥― 문이 열리고, 그와 동시에 괘종시계가 크게 소리를 냈다.
뎅, 뎅, 뎅, 뎅, 뎅.
5시.
재중은 멍하니 들어서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벽의 버튼을 눌러 몇 개의 전등이 더 켜졌다.
하지만 역시 안은 아직 어두워서, 상대의 얼굴 윤곽을 알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공포스러운 상황이었다.
“ 어이, 잘 쉬었냐? ”
히죽 웃으며 다가오는 영철의 얼굴을 보고 재중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어깨를 과도하게 흔들며 다가와 재중의 앞에 섰다.
“ 외로울 것 같아서 우리가 놀아주러 왔지. ”
재중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영철이 비열하게 웃더니
갑자기 재중의 엉덩이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퍽, 소리가 나고 재중이 비명을 지른다. 겨우 멈췄던 출혈이 다시 시작되는 듯 안에서 뭔가 뜨뜻한 것이 흘러나왔다.
“ 그런데 어쩌냐, 여긴 못 쓰게 생겼는데. 이거 말고 딴 걸로 놀아줘야 하게 생겼어. ”
그리고 그는 동의를 구하듯 뒤를 돌아보고 패거리들에게 말했다.
“ 오늘은 뭘하고 놀아줄까? 응? ”
하나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어제 이 새끼 안에 죽이게 싸댔잖아? 맺힌 건 빼줘야지? ”
“ 그렇군, 소독은 못 해줄 망정 안에 고인 건 없애줘야 하잖아? ”
그들은 키득거리며 다가와 재중의 앞에 빙 둘러섰다. 재중은 달아나고 싶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영철이 난폭하게 다리를 붙잡아 올
렸다. 허리가 꺾어지고 재중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 얼마나 고였는지 알아야 빼줄 거 아니야? ”
영철이 히죽 웃으며 말하고 새롭게 피가 흐르고 있는 재중의 엉덩이 사이로 난폭하게 손을 밀어 넣었다.
주먹이 들어가 안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놓는
바람에 출혈은 더 심해지고 비명도 더욱 커진다.
영철이 손을 빼내었을 때 그의 손은 온통 피와 정액으로 불그죽죽하게 물들어 있었다.
영철이 재중의 다리를 집어던져 땅에 내동댕이를 쳤다.
“ 아, 아아…… 아…… ”
비명과 함께 울음이 섞여 나온다. 영철이 재중의 머리를 붙잡아 끌어올리고 피에 젖은 주먹을 입에 들이밀었다.
“ 핥아. 네 거니까 네가 깨끗하게 만들어. ”
억지로 입이 벌려지고 손이 기어 들어온다. 혀끝을 내리누르는 손 때문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영철은 손을 빼지 않았다. 대충 붉은 색이 빠져나간 후에야 겨우 영철은 손을 빼고 재중의 머리를 집어던졌다.
쿵, 하고 다시 바닥에 쓰러져버린 그의 앞에 서서 영철이 말했다.
“ 검사를 해보니까, 웬만해서는 안 빠질 것 같은데. 흔들어서 빼줄까? 아니면 손으로 끄집어 내줄까? ”
웃으며 그렇게 말한 그는 고통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재중의 몸으로 돌아 다짜고짜 배를 걷어찼다.
“ 쿨럭……! ”
기침과 함께 피가 터져 나온다. 영철이 히죽 웃었다.
“ 때려서 뱉어내게 만드는 것도 좋겠는데. ”
그 말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발길질이 떨어졌다. 이어지는 구타는 사고를 정지시키고 오직 통증만을 느끼게 만들었다.
재중은 비명을 지르며 울고 흐느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마침내 재중이 정신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구타는 멈춰졌다. 힘없이 늘어진 재중을 보고 발길질을 멈추게 한 영철은
그의 숨이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계속되는 구타에 온 몸이 붉다 못해 검은색으로까지 멍들어 있다.
하반신의 출혈 또한 계속되어서 다리 사이는 또다시 피가 엉겨붙어 줄줄 흘러내린다.
얼굴도 또한 마찬가지라 멍과 피가 뒤엉켜 차마 못볼 꼴이었다.
“ 됐어, 오늘은 이만 가자. ”
영철이 말하고 그들은 돌아섰다. 창고의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누군가 말했다.
“ 잠궈야 하지 않아? ”
영철이 피식 웃는다.
“ 저 새끼 저러고 너라면 도망갈 수 있겠냐? 내일까지 정신이나 제대로 돌아오면 다행일 걸. ”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떨어지고 나자
익숙한 여자의 음성이 이어진다.
“ 오늘 일은 끝냈어. 시간은 다섯 시. ……뭐? 아아, 물론이야. 살아있어. 안다니까.
그래, 절대로 죽이지는 않아. 그럼 오늘 보수는…… 그래. ”
몇 마디 말을 더 한 후 영철은 전화를 끊었다. 패거리 중의 하나가 묻는다.
“ 그런데, 그 여자 돈도 많은 모양이야. 부자들의 생각이란……
뭐, 우리야 좋지만 말이야. 돈도 벌고 놀기도 하고…… ”
피식 웃으며 영철이 말했다.
“ 그래.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가서 그 새끼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괴롭혀주면 되는 거라고.
그 새끼가 오래 버텨주면 버텨줄수록 좋아. 하루에 수표 한 장씩, 이렇게 짭짤한 벌이가 또 어딨겠어? ”
영철이 크게 웃었다.
“ 돈은 계좌로 넣는댔지? 우리 그럼 오늘 조개나 아작내러 가볼까? ”
“ 아, 그래. 써, 쓰자고.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야. 저 새끼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 우리 돈줄이 되어줄 거라고. ”
그들은 크게 웃으며 앞으로 있을 새로운 놀이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