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5편
“ 남에게 방문을 할 때는 미리 허락을 받는 게 예의일 텐데. ”
화를 억누르듯 말하는 건우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영철이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 갑작스레 방문해서 놀래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어쩌냐?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해서 좀 가지고 놀았는데 이렇게 돼 버렸네. ”
영철이 발로 오토바이의 잔해를 툭툭 건드렸다.
“ 미안해서 어쩌지? ”
“ ……용건이 뭐야? ”
건우의 낮은 음성에 영철은 의미심장한 눈길을 재중에게로 향했다.
섬뜩한 시선을 받고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움칠하고 건우의 뒤로 숨어버렸다.
“ 그거. ”
“ 안된다고 했을 텐데. ”
영철이 바닥에 가래침을 탁, 뱉더니 건우를 노려보았다.
“ 씨발, 먼저 찍은 건 나였어. 중간에 채간 주제에 뭐라고 씨불대는 거야? ”
“ 그래서 지금 나하고 맞장뜨자는 거냐? ”
“ 지금이라도 내놓으면 옛정을 생각해서 곱게 물러나 주지. ”
그 때 뒤에 있던 누군가가 영철에게 귓속말을 했다. 영철은 얼굴을 찌푸리고 내뱉는다.
“ 약속은 나도 기억하고 있어, 넌 닥쳐. ”
무슨 말일까? 재중은 건우의 뒤에 숨은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손에 흥건하게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해야 돼?
“ 건우야…… ”
재중은 겨우 소리를 끄집어내서 말했다. 건우가 흘깃 시선을 주었다.
“ 저기…… 위험해 보이는데…… 경찰을 불러올까? 아니면…… ”
자신감 없이 잦아드는 음성에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 괜찮아, 저까짓 녀석들 금방 끝낼 수 있어. ”
“ 하지만…… ”
상대가 지나치게 많잖아, 하고 말하려는 재중을 건우가 가로막았다.
“ 최소한 빚은 갚아야지. 경찰이 오면 마음껏 패주지 못할 걸. ”
그제야 엉망으로 망가진 오토바이로 시선을 향했던 재중은 그러나 다시 창백한 얼굴로 영철의 패거리들을 보았다.
평소 알던 얼굴들보다 몇이 더 있다. 아마도 아는 다른 패거리들도 모아온 모양이다.
대충 세어도 10명은 훨씬 넘어 보이는데, 아무리 건우가 강하다고 해도 괜찮을까.
“ 건우야…… ”
다시 한 번 말려보려 했지만 건우는 재중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섰다.
“ 뭐해? 피곤하니까 어서 덤벼. 끝내고 쉬어야 겠으니까. ”
“ 끝까지 건방을 떠는구나, 이 건우. ”
이를 북북 갈며 노려보는 윤 영철에게 건우가 피식 웃었다.
“ 상대가 우스우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
“ 이 새끼…… ”
날아드는 주먹들이 매섭다. 재중은 놀라 창백한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건우를 향해 달려드는 패거리들이 2-30명은 되는 것 같았다. 건우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가득히 덤벼드는 그들 사이에서 들리는 거라고는 구타소리와 비명뿐이었다.
경찰…… 경찰을 불러야……
뒤늦게 생각을 떠올린 재중은 허겁지겁 돌아섰다가 순간 멈춰섰다.
“ 이런, 어딜 가시게? ”
앞을 막아선 패거리들 중 하나를 보고 다른 방향을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 이거 놔…… ”
팔을 뒤로 꺾여 붙들린 채 고함을 질렀지만 그들은 웃을 뿐이다.
“ 재중아! ”
한참 싸움에 몰두하던 건우는 재중의 비명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재중은 건우를 향해 내리쳐지는 쇠파이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퍽―
은빛의 파이프 너머로 붉은 색이 쏟아진다. 건우가 넘어졌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는 것은 처음 본 것이었다. 재중의 눈이 커다랗게 열린 채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 씨발…… ”
건우의 입에서 욕설이 새나왔다. 그는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그와 동시에 윤 영철이 그의 허리를 걷어찼다.
그대로 고꾸라지는 그의 위로 무수하게
발길질과 함께 각목과 쇠파이프가 내리쳐졌다.
“ 건우야! ”
재중이 다시 비명을 지른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두 팔을 모두 붙잡혀 있어서 그것은 불가능했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건우는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이어지는 구타에 몇 발자국 옮기지도 못하고 다시 넘어지곤 했다.
바닥에 흥건히 피가 쏟아져 지면은 금새 붉게 물들었다.
사람의 몸 안에 저렇게나 피가 많았던가.
재중은 멍하니 생각했다. 건우가 손을 내민다. 맞잡아주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그의 붉게 물든 시야에 한순간 재중의 모습이 비쳐졌다.
넌 항상 내 앞에 서면 우는구나.
왜 그 말이 생각날까? 왜 하필, 지금.
건우의 말을 떠올렸던 재중은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건우야……! ”
재중이 소리쳤지만 건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내가 지켜줄게.
아련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 날의 약속이 덧없이 흩어진다. 재중을 향해 내밀어졌던 손이 맥없이 떨어졌다.
미안해. 너 지켜주지 못해서.
“ 건우야아………!!! ”
울음을 터뜨리며 피를 토할 것처럼 비명을 질렀지만 건우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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