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4편
식사를 하는 동안에 셋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중은 불편한 마음에도 어떻게든 분위기를 무마시켜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일주일에 겨우
한 번 보는 동생인데, 이런 분위기라니.
“ 나, 손 좀 씻고 올게…… ”
중얼거리듯 말한 재중이 복도끝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건우가 말했다.
“ 아까 그 녀석들이 전에 네가 말한 놈들이니? ”
“ 예. ”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인찬을 향해 건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 진작에 혼내주지 그랬어? 형이 가르쳐 줬었잖아. ”
“ ……그치만…… ”
“ 왜? 상대가 빠르기까지 해? ”
인찬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왜 그래? ”
답답한 마음에 캐어묻자 인찬이 한참만에 울먹였다.
“ 1:1도 아니구…… 둘인데 어떡해요…… 때리려고 했지만…… 다른 녀석이 붙잡는 바람에…… ”
“ 비겁한 녀석들이군. ”
아까 재중이 말리건 말건 흠뻑 패주는 거였는데, 하고 이를 간 건우는 혼자 울분에 빠져 미처
인찬의 다음 말을 듣지 못했다.
“ ……호모동생이라고…… 바지 벗기고…… ”
훌쩍거리는 인찬을 보고 건우는 냅킨을 꺼내 건네주었다.
“ 울지 마, 사내새끼가. ”
인찬의 말을 미처 듣지 못한 건우로서는 애들이 좀 심하게 놀렸겠거니, 하는 생각 외에는 하지 못했다.
하긴 아까 그 녀석들 하는 거 보니까 만만치 않겠던데……
건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든 약자를 괴롭히는 녀석들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것이 하필 인찬이를 노린 것은 인찬이의 운이 나빴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건우는 울먹이는 인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또 그 녀석들이 괴롭히면 말해, 형이 혼내줄게. ”
“ …… ”
인찬이는 대답대신 흐느끼기만 했다. 건우가 이번에는 좀 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 정말이야. 자, 여기 번호. 언제든 전화해. 너네학교까지 달려갈게. ”
냅킨에 핸드폰번호를 적어 건네주자 인찬은 울다 말고 의아한 얼굴로 건우를 보았다.
“ 형, 우리 형 굉장히 좋아하나 봐요…… ”
친한 것치고는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말하는 인찬을 보며 건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 니네 형 없이는 못 살 정도로 좋아하지. ”
“ ……그거, 호모라는 거지요? ”
눈치 빠르게 말하는 인찬에게 건우는 멋적은 얼굴로 웃었다.
“ 형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나한테 이럴 것까지는 없어요. 형은 형이고 나는 나니까. ”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지 어른스럽게 말하는 인찬을 보고 건우는 입을 다물었다.
때마침 재중이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 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어. ”
재중은 갑작스러운 건우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찬도 고개를 들어 건우를 바라본다.
“ 그래서 언제나 따뜻한 가족이 있는 애들이 부러웠어. ……아마 그래서 일거야,
너한테 이렇게 관심이 가는 게. 재중이 동생이라서만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이유의 하나겠지만, 난 그보다 더 가족이라는 걸 가지고 싶어. 너랑, 나랑, 재중이랑. ……안돼? ”
양해를 구하듯 재중에게 미소를 짓는 건우를 보고 재중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건우가 계속해서 말했다.
“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건, 난 네 형 좋아하고…… 사랑해. 그러니까 지켜주고 싶어. 너도, 재중이도. ”
건우의 진지한 말을 듣고 있던 인찬이 재중에게 물었다.
“ 형도…… 건우형 좋아해? ”
“ 좋아해. ”
“ 사랑도 해? ”
앞의 말은 망설이지 않고 나왔지만 뒤의 말은 차마 이어지지 못했다.
재중은 말없이 자신 앞에 놓여진 반쯤 먹은 음식을 노려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맛없는 식당이 다 있을까. 반도 안 먹었는데 전혀 손이 가질 않는다.
침묵하는 재중 때문에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졌다. 건우가 재빨리 말했다.
“ 인찬아, 식사 대충 했으면 우리 놀러갈까? 어디로 갈래? ”
“ 형 오토바이 태워줘요! ”
눈을 빛내는 인찬을 보며 건우가 난처하게 웃었다.
“ 오늘 오토바이 안 가져 왔는데. ”
즉각 실망하는 인찬에게 건우가 서둘러 말했다.
“ 다음에 올 때는 꼭 가져올게. ……그래, 학교로 마중갈까? ”
“ 정말?! ”
“ 안돼, 위험해! 오토바이는 타지 마. ”
재중이 끼어들었지만 이미 둘의 대화는 그를 제외하고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다음 주말에 건우가 오토바이를 타고 인찬의 학교에 찾아가는 것으로 얘기는 끝났다.
하지만 재중은 내심 인찬이 오토바이에 타지 못하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인찬을 집에 바래다주고 건우의 하숙집으로 향했을 때는 밤이 되어서였다.
“ 오토바이는 안돼. ”
버스에 내려 걸어가며 재중이 먼저 말을 꺼냈다. 건우가 웃는다.
“ 어때, 별로 안 위험해. ”
“ 안 된다면 안돼. 인찬이는 아직 어려서 더 안돼. 마중만 나가고 태우지는 마. ”
고집을 부리는 재중을 보고 건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 알았어. ”
“ 그래. ”
꼿꼿이 머리를 들고 걸어가는 재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건우가 갑자기 뒤에서 재중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 뭐야?! ”
놀라 비명을 지르며 끌려간 재중의 머리에 건우가 입을 맞추며 키득거렸다.
“ 큰일났어, 이렇게 삐진 얼굴도 예뻐 보이니. ”
“ 이거 놔, 누가 보겠어. ”
“ 아무도 안 봐. ”
건우는 고집을 부리며 재중의 턱을 붙잡아 올려 입에 키스를 했다.
“ 아까 인찬이 있어서 얼마나 참았는데. ”
“ 좀 더 참아, 집에 갈 때까지. ”
매몰차게 건우의 팔을 떼어낸 재중의 뒤를 건우는 웃으며 쫓아왔다.
“ 아아, 야속하기도 해라. ”
건우는 냉큼 재중의 뒤를 따라붙어 속삭였다.
“ 각오해, 오늘 안 재울 거니까. ”
“ 저질. ”
재중이 온통 붉어진 얼굴로 건우에게 눈을 흘겼다. 건우가 크게 웃는다.
자연스럽게 허리를 안고 걸어갔지만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았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해서 열쇠를 꺼내려던 건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 왜 그래? ”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덩달아 멈춰선 재중이 물었다.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갔던 재중의 얼굴이 놀라 굳어졌다.
하숙집 앞에 세워두었던 건우의 오토바이가 형체도 없이 무참히 부서져 있었다.
바퀴고 뭐고 제대로 남아있는 부속이라고는 없다. 건우는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 어떻게…… ”
마른침을 삼키고 겨우 중얼거렸던 재중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한 떼거리의 사람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 어이, 이 건우. 빚 갚으러 왔다. ”
건우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자신을 향해 히죽 웃고 있는 윤 영철과 패거리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