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3부 1편
정겨운 아침의 소리가 들린다. 재중은 잠에서 깨었지만 도통 눈이 떠지질 않아 그대로 누워있었다.
밤새 어찌나 울었는지 두 눈이 잔뜩 부어서 무겁게 감겨 올려지질 않았다.
게다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는 팔 또한 편안해서,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고 싶었다.
나른하게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재중은 뒤늦게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찬이한테 가봐야 하는데.
겨우 눈을 떴지만 방안 가득히 들어온 햇살이 너무 눈이 부셔 몇 번씩 다시 깜박이고 말았다.
“ 깼어? ”
익숙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건우가 재중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 ……응…… 너도? ”
그제야 간밤의 일이 생각나 어색하게 되물었던 재중은 건우의 얼굴을 보았다가 놀라 물었다.
“ 눈이 왜 그래? ”
푸석하게 붉어져 있는 눈을 보고 묻자 건우가 눈을 비비며 피식 웃는다.
“ 티 나? ”
“ 뭐가? ”
“ 거의 못 잤거든. ”
“ ……? ”
“ 네가 나한테 안겨있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잠을 못 잤어. 만약에 꿈이면 깨어나지 말자고. ”
“ 바보 같은 소릴…… ”
어이가 없어 중얼거린 재중에게 건우는 다시 웃으며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 이런 꿈이면 평생 깨어나지 않아도 좋아. ”
“ 꿈이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
“ 사랑해. ”
웃으며 장난처럼 고백한 건우의 말에 재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마 농담으로라도 그 말에 대답해줄 수 없는 것에 내심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 말만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재중의 마음을 눈치챈 듯 건우가 벌떡 일어났다.
“ 밥 먹자. 누워있어, 내가 차려올게. ”
“ 같이 해. ”
“ 아냐, 내가 차려서 너한테 갖다주고 싶어. 넌 누워만 있어. ”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건우는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옷가지들을 대강 걸치고 방에서 나갔다.
남겨진 재중은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쉰 후 무거운 눈꺼풀을 닫았다. 피곤한 아침이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편안한 아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맞은 아침 중에서 가장 공허한 아침.
……괜찮아.
재중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이제 다 괜찮아. 이제 끝난 일이니까.
하지만 재중은 버림받은 것이 자신인지 아니면 윤호인지 끝내 알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다.
지독한 두통이 덮쳐와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두껍게 내리쳐진 커튼 틈새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아침이 밝은 것 같았다.
윤호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일어났다. 주변은 무덤처럼 조용하다. 어리석게도 습관처럼 되돌아와 버린 호텔방에,
그는 혼자 있었다. 재중이 나가고
난 후 언제 그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어리석은 희망에 계속 머물고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끝났으니까.
윤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나 마셔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토막토막 끊겨 있는 기억 속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은 것은 자신이 어처구니없이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통증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세상은 야속하게도 제 할 일을 하며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와 똑같이 해는 뜨고,
사람들은 움직이고,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게, 언젠가는 잊혀질까. 모두 사라져 버릴까.
이렇게 아픈 것도, 단지 시간이 지나가면 씁쓸한 기억의 파편일 뿐일까. 윤호는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바랬지만
자신은 없었다.
……회사에 가야겠지……
둔한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왔던 윤호는 테이블에 놓여진 쪽지를 보고 걸음을 옮겼다.
창민의 글씨다. 거기엔 간결하게 몇 줄의 메모가 남겨져 있을 뿐이다.
네 차는 내가 가져다 뒀어. 두통약을 사다 뒀으니 머리가 아프면 먹도록 해.
윤호의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한 사람의 슬픔이라는 것은, 거대한 세상에 비추어 보면 이렇게도 하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두꺼운 커튼을 열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윤호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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