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2부 39편
건우가 오토바이를 세운 곳은 가파른 벼랑이 내리지르는 어느 고속도로의 길 가였다.
산소라는 말에 아련히 벌초를 하는 그런 묘지를 예상했던 재중
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 산소라면서? ”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물은 재중에게 건우가 피식 웃었다.
“ 응, 우리 엄마 여기에 뿌려드렸거든. ”
“ …… ”
건우는 오는 길에 샀던 국화 한 다발을 팔에 안고 서서 말했다.
“ 중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더 어릴 때 돌아가셔서 나는 엄마랑 둘이 살았어.
집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꽤 행복했다고 기억해. ”
국화를 한 송이씩 뽑아 절벽 아래로 던지며 건우가 계속 말했다.
“ 엄마는 꽤 미인이셔서, 마음먹으면 재가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나 때문에 그러질 못했어.
어린 마음에는 그것에 안도하고 또 당연하게도 여겼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후회했었지.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도 들었었고. 여자 혼자 손으로 자식 키우는 게 여간한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
“ …… ”
“ 가게를 하시다가 그게 제대로 안 돼서, 행상을 하게 되셨지. 아마 굉장히 고생하셨을 거야. 내색은 안 하셨지만. ”
“ …… ”
“ 포장마차 끝내고 새벽에 돌아오시다가, 승용차에 치여서 즉사하셨어. ”
놀라 숨을 들이키는 재중을 보고 건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 그래. 다행히 목격자가 있어서 뺑소니는 칠 수 없었지.
그런데 말이지, 나는 그 때 친구 녀석들이랑 클럽에서 놀고 있었거든. ”
“ …… ”
“ 철이 없었다고 하기엔,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었어.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사고가 나고 난 이틀 후였으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틀 후에야 그걸 알게 된 거지. ”
“ …… ”
“ 난 정말 끝까지 불효자식이었어. ”
“ …… ”
“ 그 때, 굉장히 많이 울었었는데, 울면서 생각했었어.
언젠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때는 정말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잘 해 줄거라고.
어머니한테 못 해드린 몫까지 전부 다. ”
“ …… ”
“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보상금이랑 보험금이 좀 많이 나왔었거든. 그걸로 저거 뽑았어. ”
오토바이를 슬쩍 턱으로 가리킨 건우가 웃었다.
“ 그리고 그 후에 어머니 생각하듯 소중히 아껴주고 있는 거지. ”
“ 오토바이를? ”
“ 오토바이도. ”
의미심장한 덧붙임이었지만 재중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건우는 마지막 남은 국화를 모두 집어던진 후 한동안 절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 그러니까 이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안 할 거야. ”
속삭이는 건우의 음성에 재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건우와 재중이 다시 돌아온 것은 밤이 늦어서였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먹을 쌀이 떨어졌었다.
“ 가면서 사가지 뭐. ”
건우는 가볍게 말하고 재중과 함께 편의점에 들러 쌀을 조금 샀다.
“ 간만에 영양보충 좀 할까. ”
수입 고기 쪽으로 돌아서는 건우를 뜯어말리며 재중이 야단을 쳤다.
“ 미쳤어! 광우병 도는 거 몰라? 야채 먹어, 닭을 먹던가. ”
재중이 보란 듯이 파 한 단과 계란 한 판을 집는 것을 보고 건우는 씁쓸한 얼굴로 서있었다.
“ 한우는 괜찮지 않을까? ”
“ 안돼. ”
재중은 한 마디로 거절하고 돌아섰다. 건우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얌전히 지갑을 꺼내 계산을 했다.
“ 아침에 계란찜하고…… 어제 북어 먹다 남은 거 있으니까 북어국 한 번 더 끓일까? ”
“ 되는대로 먹고 내일 오후에 장보자. ”
“ 그래. ”
어느 가게에 콩나물이 싸더라는 둥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걷던 둘은 어느 새 집앞까지 와 있었다.
“ 어라? ”
건우가 먼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기우뚱했다. 건우를 보며 말하던 재중도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크게 떴다.
웬 승용차가 집 앞에 서 있었다. 초라한
하숙집의 외관과 대조적으로 고급스러운 그 승용차는 퍽이나 낯익은 것이었다.
설마……
믿을 수 없어 크게 떠진 눈에 역시 환상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가 보여졌다.
차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리고 재중을 알아보았다.
희미하게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지려던 얼굴이 곧이어 건우를 발견하고 다시 굳어진다.
재중은 차마 건우의 얼굴을 살피지 못하고 윤호만 바라보았다. 어떻게 온 걸까. 왜 갑자기 나를 찾아왔을까.
여긴 어떻게 알았을까. 셋은 탐색하듯 서로를 보며 그렇게 한동안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