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2부 35편
재중은 이마를 두 바늘 정도 꼬매고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건우에게 업혀 집에 돌아왔다.
평소라면 걸을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울 만도 한데 재중은 묵묵히 건우가 하는 대로 조용히 있었다.
말도 꺼내기 피곤하다는 듯이.
자리에 뉘어주자마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해 이내 깊은 숨을 몰아쉬는 그를 지켜보며
건우는 그날 하루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건우는 학교는 무시하고 재중의 옆에 있으려 했으나 전날 있었던 일의 후유증이
학교에 얼만큼 파급이 되어있는지 궁금해 간단히 쪽지를 남기고 학교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학교는 뒤숭숭하기 짝이 없었다. 소문의 주인공은 역시 재중으로,
집이 망해서 사채업자가 쫓아와 행패를 부렸다느니, 돈 많은 여자
양다리를 걸쳤다가 들통나 혼쭐이 났다느니, 심지어는 약을 하고 돈을 갚지 못해 도망갔다느니
하는 얘기까지 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소문에도 ‘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걔 남창했대 ’
라는 것은 꼭 끼어 있었다.
빌어먹을 계집애.
건우는 이를 갈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계집애 잡았을 때 입을 부숴서라도 말을 바꾸게 하는 거였는데.
건우는 그것이 못내 분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의 학생들을 상대로 모두에게 협박을 할 수도 없어서 재중이 나아 다시 학교에 올 때까지
그저 소문이 가라앉아 주기나 바랄 뿐이었다.
오전 수업만 하고 갈까, 하고 생각해 교실에서 늘어지게 앉아 있는데, 때마침 영철이 다가왔다.
“ 소문 들었어, 이 건우. ”
건우는 성가시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영철이 비열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 너 그 새끼 엉덩이 졸졸 쫓아다니더니, 벌써 따먹었냐? ”
“ 입 닥쳐, 새끼야. ”
기분이 나빠졌다. 영철의 웃는 얼굴이 저렇게 짜증스럽기는 처음이었다.
건우는 누구를 상대로든 그다지 화를 내는 법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꽤 자주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영철이 계속해서 말했다.
“ 아직 안 해봤으면 같이 하든가, 아님 넘겨. ”
이번에는 영철이 좀 더 심각하게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 지금까지 참고 있었지만 너 그 정도면 꽤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어? 그러니까 넘기라고. ”
그리고 영철이 다시 비죽 웃었다.
“ 설마 너, 아직까지 못 따먹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고자새끼가 아닌 이상. ”
“ 윤 영철. ”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건우가 이를 갈며 영철을 노려보았다.
“ 난 걔 못 넘겨. 앞으로도 그래, 너한테 넘길 일은 없어. 그만 포기해. ”
“ 뭐라고? ”
영철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는 눈에 잔뜩 힘을 줘 건우를 노려보더니 이를 간다.
“ 너, 지금 내 말을 거역할 거냐? ”
“ 거절이겠지, 윤 영철. 난 단 한 번도 네 휘하에 있은 적은 없으니까. ”
“ 각오하고 하는 말이겠지? ”
“ 물론. ”
“ 좋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지금껏 참아왔지만 네 태도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옥상으로 와. ”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난폭하게 성큼성큼 앞서갔다.
건우 역시 불쾌한 얼굴로 망설이지 않고 일어선다. 어차피 한 번은 겪을 일이었다.
단지 지금이라는 것이 때가 좋지 않게 여겨지긴 했지만. 옥상에 쫓아 올라갔을 때,
건우는 영철이 패거리들이 몰려서 있는 것을 보았다.
“ 뭐야, 집단 린치냐? ”
이죽거리며 말하자 영철이 대꾸한다.
“ 설마, 1:1이다 이 건우. 너 따위는 내 손으로 간단히 끝낼 수 있으니까. ”
“ 재미있겠군. ”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허리를 곧게 세운 건우가 말했다.
“ 조건이 있어. 이 승부에서 내가 이기면 다시는 그 자식 근처에서 얼씬도 하지 마. ”
“ 너야말로 지면 얌전히 그 새끼 뱉어내. ”
영철의 말에 건우가 피식 웃었다.
“ 그럴 일은 없을 걸, 난 지지 않을 거니까. ”
“ 이 자식……! ”
영철이 고함을 지르며 갑작스레 덤벼들었다. 건우는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해 비어있는
등쪽 으로 돌아 어깨를 가격했다. 영철은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졌지만 곧 몸을 추스려 다시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질러온 주먹에 건우는 피하지 못하고 배를 맞아버렸다.
뒤로 주춤 물러선 사이에 다시 영철이 공격을 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피한 건우가 달려드는 영철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고꾸라진 그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다. 퍽, 하고 한 주먹에 콧대가 비틀어지는 감각이 전해져왔다.
피가 터져 나왔지만 건우는 멈추지 않았다.
“ 이 새끼……! ”
영철이 고함을 지르며 건우에게 뭔가를 휘둘렀다. 팔에 뜨끔한 통증을 느낀 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물러서고 말았다. 붉고 뜨거운 것이 팔에서 흘러내린다.
영철은 급히 일어나 한 손에 칼을 움켜쥐고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건우를 노려보았다.
“ 죽여버릴 테다, 개자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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