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32편)
“ 형은요? ”
패스트 푸드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찬이 혼자 들어오는 건우를 보고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건우는 다정하게 웃으며 맞은 편에 앉아 대답했다.
“ 화장실. 곧 올 거야. ”
울어서 붉어진 눈과 눈물자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건우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말한 후 화장실로 향한 재중을 보며
건우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괜한 참견을 해서 울려버렸잖아……
언제나 건우는 너무 쉽게 말을 해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그만 기분이 앞서버려서…
…
다시 사과를 하면 받아줄까……
한숨을 푹 내쉬는 건우를 보며 눈치를 살피던 인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저, 형…… 물어볼 거 있는데요…… ”
“ 응? ”
뒤늦게 인찬의 존재를 자각하고 서둘러 되물은 건우를 보며 인찬이 말했다.
“ ……저기…… 형…… 우리 형이랑 많이 친해요……? ”
“ 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난 니네 형이 제일 좋아. ”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재중의 경우는 어떤지 몰라도 건우의 입장에서는 친한 정도가 지나칠 정도니까.
인찬은 건우의 뒤를 열심히 살피며 다시 입
을 열었다. 마치 재중이 모습을 드러내면 곤란하다는 듯이.
“ 저, 형……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
“ 얘기해. ”
“ ……호모가 뭐예요……? ”
순간 건우는 놀라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버릴 뻔했다. 인찬은 잔뜩 그늘이 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 학교에서 애들이…… 호모 동생이라고 막 놀리는데…… 아무도 그게 뭔지 안 가르쳐 줘요…… ”
건우는 멍하니 인찬을 바라보기만 했다.
“ 애들이…… 왜? ”
겨우 물은 건우에게 인찬은 중얼거렸다.
“ 저도 모르겠어요. ”
인찬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애들이 놀리는 거 보니까…… 그거 나쁜 말이죠? ”
건우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학교에서야 별별 소문이 다 돌고 있지만 어떻게 동생의 학교에 그런 소문이 돌까. 알 수가 없
는 일이었다. 하지만 캐어 물아봐야 인찬이 역시 속시원한 대답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그를 안심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건우는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왜 네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
“ 친구 아니에요, 그 녀석들. ”
울컥해서 내지르는 인찬을 보며 건우는 이렇게 작은 애가 꽤 마음 쓰며 살았던 모양이구나, 하고 내심 씁쓸해졌다.
“ 그래, 그럼 너희 학교 애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일단 너에게 호모가 뭔지부터 얘기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음, 그건 말이지……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경우에 그렇게 말 해…… ”
인찬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건우는 자신이 어째서 이런 난처한 상황에 직면해야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으면서도
필사적으로 그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 말을 고르고 골라 계속했다.
“ 그러니까 그게…… 인찬이는 학교에서 좋아하는 애 누구 없어? ”
“ 없어요. ”
담백하게 나오는 대답에 암담해하며 건우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 그, 그러면 반에서 누구 누구가 누구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뭐 그런 소문도 없어? ”
“ 다솜이가 진규 좋아한다던가, 보라가 경헌이 좋아한다던가 하는 거요? ”
“ 그래. ”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건우가 계속했다.
“ 이름 보니까 다솜이랑 보라는 여자애지? 진규랑 경헌이가 남자애니? ”
“ 네. ”
“ 그렇게 여자애가 남자애를 좋아하던가 남자애가 여자애를 좋아하지 않고
남자애가 남자애를 좋아하는 걸 말하는 거야. 그렇지, 진규랑 경헌이가 좋
아하는 거라든가. ”
“ 항상 둘이 같이 붙어 다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아요…… ”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인찬을 보며 건우는 놀라 말했다.
“ 아, 아니. 난 예를 든 것뿐이고…… 둘이 같이 다닌다고 해서 둘이 좋아한다는 얘기가…… ”
“ 알았어요, 나쁜 자식들. 내일 학교 가서 그대로 말해 줘야지. 지들이 호모면서 우리 형을 놀려. ”
씨근거리는 인찬을 보고 건우는 내막은 자세히 알 수 없어도 짐작컨대 재중을 호모라고 소문내고 인찬을 놀리는 것이
그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때문에 건우는 기껏해야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상대로 분노하는 자신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인찬을 말리지 않았다.
“ 나쁜 녀석들이네. 가서 욕만 하지 말고 때리는 것도 해라. ”
“ 하지만 전 힘이 약해서 그 녀석들한테 맞으면 맞았지 때리는 건 상상도 못 하는 걸요. ”
재중과 꼭 닮은 얼굴이었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그보다 더 계집애 같은 얼굴의 인찬이 말하는 것을 듣고
건우는 테이블 너머로 인찬의 손을 꼭 잡고
열의에 불타오르는 얼굴로 말했다.
“ 아니야, 세상은 힘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네가 만약에 힘이 부족하다면 스피드로 커버해.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거지. 잘 봐, 형이 가르쳐 줄게…… ”
“ 뭘 가르쳐? ”
때마침 자리로 온 재중이 묻는다. 건우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아무 것도. ”
그리고 그는 재중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쩍 인찬에게 속삭였다.
“ 재중이 없을 때 형이 아는 기술 다 가르쳐 줄게. ”
인찬 역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중은 그런 그들의 은밀한 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말했다.
“ 인찬이 많이 기다렸지? 뭐 먹을래? ”
“ 치킨! 콜라! ”
냉큼 대답하는 인찬에게 고개를 끄덕인 재중이 건우를 바라봤다.
“ 너는? ”
“ 난 됐어. ”
“ 사줄게. ”
“ 네가 그렇게 번 돈으로 먹고 싶지 않아. ”
건우의 말에 재중은 안색이 창백해져 입을 다물어버렸다.
건우는 다시금 그를 상처입혔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덧붙였다.
“ 더럽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야. 나는……
네가 그렇게 상처받아가면서까지 힘들게 번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뜻이야. ”
“ 상관하지 마. 먹기 싫으면 굶어. ”
단단히 화가 난 듯 재중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둘의 대화를 들으며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눈만 깜박이는 인찬을 보고 건우는 씁쓸
하게 웃었다. 인찬의 학교에서 돌고 있는 소문을 알게 된다면 재중은 더욱 상처받겠지.
건우는 뒤늦게 진지한 얼굴로 인찬을 이해시키려 했다.
“ 인찬아, 호모가 꼭 나쁜 건 아니야. ”
“ 그럼요? ”
“ 글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것도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거거든.
인찬이는 재중이 형 좋아하지? ”
“ 좋아요! 세상에서 제일 좋아! ”
“ 그래. 형도 재중이 형이 제일 좋아. 단지 상대가 여자고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거야.
내 말 이해하지? ”
인찬이 정말로 이해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건우는 계속해서 애를 썼다.
“ 인찬이 네가 좀 더 커서 누구 좋아하게 되면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해.
어쨌거나 상대가 누구든 다른 누구를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 놀리는 것은 나빠.
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해 줘. ”
“ ……알았어요…… ”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인찬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재중이 돌아올 때까지 건우는 인찬에게 상대의 허리로 파고
들어 바디 훅을 멋지게 날리는 방법과 한 방에 코피를 터뜨릴 수 있게 주먹을 쥐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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