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31편)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재중은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은행문을 나오는 재중에게 건우가 묻는다.
“ 실례지만, 소문에 너희 집 망해서 꽤 어렵다고 들었는데…… ”
“ 그래. ”
“ 너 그래서 몸 판다고…… ”
“ 맞는 소문이야. ”
담담하게 말하며 계속 걸어가는 재중의 옆에서 그를 쫓아가며 건우는 말했다.
“ 그럼, 그거 네가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이니? ”
“ 그런 셈이지. ”
시니컬한 얼굴로 웃어버리자 건우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 ……얼마 뽑았어? ”
“ ……? 옷도 사고 이것저것 필요하니까…… 40만원. 당분간 쓸 돈까지. ”
“ ……그래…… ”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던 건우가 갑자기 걸음을 빨리 해 재중의 앞을 막아섰다.
본의아니게 걸음을 멈춘 재중이 놀라 건우를
올려다보자 건우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그 돈, 내가 줄게. ”
“ 무슨 소리야? ”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되묻자 건우가 대답했다.
“ 그런 식으로 일해서 버는 거, 네가 좋아하는 상대라고 전에 얘기했었으니까 상관할 바는 아니겠지만……
솔직히 말해 봐, 그 날 너 그렇게 정신 나가 있었던 거, 그 사람 때문이지? ”
“ …… ”
“ 그 얘기는 결국 그 사람하고 헤어졌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 사람 돈 쓰는 거, 싫잖아. ”
“ 그럼 어떻게 해? ”
“ 내가 줄게. ”
“ 더 싫어. ”
한 마디로 거절하고 건우의 옆을 스쳐 걸어가려는 재중의 팔을 붙잡은 건우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 그럼 빌려줄게. 돈 때문에 비굴해지지 마. 네가 그 돈 쓰면 넌 그 사람한테 더 자신 없어질 거 아니야. ”
“ 상관없어, 난 그 사람 사랑하니까 비굴해져도. ”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에 건우는 즉각 내뱉었다.
“ 그럼 가장 최악이야. ”
“ …… ”
“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더 당당하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어차피 네 손 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가치가 없어.
아무리 비굴하게 매달려도 떠날 사람은 떠나니까. ”
“ …… ”
“ 난 네가, 누구에게든 당당했으면 해. ”
“ 어째서? ”
“ 내가 좋아하는 상대니까. ”
재중은 그를 노려보았다.
“ 잘도 지껄이는구나. ”
건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느 새 재중의 눈에 가득 눈물이 고여버렸다.
“ 제길. ”
재중은 난폭하게 눈물을 문질러 닦더니 그를 밀쳐내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건우가 쫓아와 다시 팔을 붙잡았지만 재중은 거칠게 뿌리쳤다.
“ 난 비굴하게 매달리지도 못했어! 알겠어?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그냥 뛰쳐나와야 했다고! 넌 몰라, 모른다고!
그 사람이 어떤 눈으로 봤는지,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걸 보고 들어야 했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넌 전혀 모르잖아! ”
다시 눈물이 넘쳐흘렀지만 재중은 닦아내지도 못했다.
“ 매달리고 싶었다고, 그 사람이 믿어주고 이해해준다면 나는 얼마든지 비참해져도 좋았어.
하지만 그 사람은 그것조차 허용해주지 않았지. 네가 알아? 네가 뭘 알아?! ”
건우는 흐느끼며 소리치는 재중을 망연히 보고 있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 사랑이라는 건, 먼저 한 쪽이,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한 쪽이 손해야.
…이상하지, 하지만 사랑에 빠져버리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
“ …… ”
“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고 하는 걸까. "
건우는 한숨을 내쉬고 아직 흐느끼고 있는 재중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 미안해. 내가 괜한 참견을 했어. 울지 마. ”
재중은 건우를 밀쳐내고 거칠게 얼굴을 닦고 다시 걸어가 버렸다.
건우는 이번엔 앞을 막아서지 않았지만 몇 발자국 떨어져서 그 뒤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