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63화 (63/123)

거짓말 (2부 29편)

“ ……토요일이구나……. ”

멍하니 중얼거린 재중의 말에 민철이 고개를 기우뚱했다.

“ 그래, 그러고 보니 너 아까부터 책이 안 보이더라? ”

교과서의 행방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전날 챙겨왔던 가방을 그대로 들고 왔으니

수업 시간표가 제대로 맞을 리가 없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던

재중은 그 날 쇼핑 목록에 교과서를 추가했다.

인찬이한테 가야 하는데.

매주 주말에 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지만 가끔 미처 가지 못할 때에는 그 다음주에 가곤 했는데,

그럴 때면 언제나 인찬이는 다른 때보다 배로

울곤 했다.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다. 아직 어린애가 얼마나 외로우면 그럴까, 싶어서 인찬이를 만날 때마다

재중은 같이 울지 않기 위해 마음을 모

질게 먹고 가야 했다. 생각해보면 저번 주도 가지 못했다. 또 얼마나 혼자 울었을까.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져서 재중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

다.

오늘은 꼭 가봐야지.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렸던 재중은 종이 울리고 종례를 마치자마자 후다닥 일어나 가방을 들었다.

막 교실문을 나가려는데 그와 동시에 고개를 내밀

었던 건우와 부딪히고 말았다.

“ 이런, 어딜 그렇게 급히 가? ”

항상 웃는 얼굴의 건우가 묻는다. 재중은 그의 곁을 스쳐가며 중얼거렸다.

“ 동생 만나러. ”

“ 동생? ”

건우는 놀란 표정으로 쫓아왔다.

“ 따로 살아? ”

“ 그래. ”

짧게 대답하고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 건우가 쫓아와 팔을 붙잡았다.

“ 같이 가자. ”

“ 왜? ”

얼굴을 찌푸리자 건우가 웃었다.

“ 점수 따려고. ”

“ 무슨 소리야? ”

“ 그런 게 있어. 하여간 같이 가자. ”

“ ……하지만…… ”

“ 네 동생 만나고 난 후에 곧장 네 물건 사서 같이 들어가면 좋잖아. ”

나름대로 합리적인 얘기라 재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가 웃는다.

“ 그래, 그럼 어서 가자. ”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재중의 팔을 붙잡고 빠르게 걸어가던 건우가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

“ 그런데, 네 동생도 너처럼 예뻐? ”

“ 뭐라고? ”

기가 막혀서 버럭 소리를 질러 버리자 건우는 크게 웃었다.

……왜 여기 앉아 있는 걸까.

윤호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교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히 회사로 가려고 했는데, 왜 여기 있을까.

“ 빌어먹을. ”

이런 상황은 딱 질색이었다. 윤호는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예정

에 없이, 그것도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와 있더라, 하는 말 따위는 변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냥, 괜찮은지만 보고 가면 되는 거야.

어줍잖은 책임감쯤은 있으니까, 그렇게 쫓아내고서 괜찮은지 보고 가는 것 정도는 해야 겠지.

또 다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운전대를 붙잡고 차안에 앉아있던 윤호는 때마침 수업이 끝났는지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심장소

리가 둔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바이크 소리가 들린다. 학교에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녀석이 다 있군, 하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윤호는 빠르게 교문을 빠져나가 그대로 도로를 질주해 가는 바이크를 보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상

대는 분명히 그 때 보았던 그 녀석이다.

한동안 바이크가 사라진 자취만 바라보던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뭐야, 그런 거였나.

스스로가 너무도 바보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끝났어. 모두 괜찮아. 책임감을 느낄 필요 따위는 없어.

확인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관여하지 않

아도 좋아. 그에게 나는 전혀 필요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대로 이렇게 지나치면 되는 거야.

나 또한 그렇게 너를 잊을 거니까.

“ 빌어먹을. ”

낮게 욕설을 내뱉은 윤호는 거칠게 기어를 넣고 차를 출발시켰다. 다시는 이런 바보짓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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