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28편)
간단한 아침을 먹고 건우의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재중은 학교로 갔다.
들고 나온 것은 가방이 전부라, 학교가 끝나고 나면 간단하게 생필품과 옷을
사기로 했다. 윤호가 만들어준 카드는 결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수중에 현금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윤호가 주었던
돈은 죄다 옷과 함께 두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재중은 자신이 카드를 씀으로써
윤호가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생각하
고 또한 그것에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학교로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더 그에게
흔적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학교에서 몇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왔을 때,
갑자기 건우가 오토바이를 세웠다. 한적한 골목에 멈춰
선 오토바이 때문에 재중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 고장났어? ”
건우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 아니, 여기서부터는 따로 가자고. ”
이해를 하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는 재중에게 건우가 설명했다.
“ 나랑 같이 등교하는 거 애들한테 보이면 또 이상한 소문 날 지 모르잖아. ”
재중은 건우의 배려에 새삼 놀랐다. 잊고 있었지만 학교에는 자신에 대해 꽤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아침에 함께 등교해 버리면 거
기에 또 양념을 치게 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보나마나 재중이 건우와 밤을 보냈다는 소문따위겠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재중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지적해내고 말한 건우에 대해 할 말을 잊었다. 건우는 알면 알수록 재중을 놀라게 했다.
처음엔 그저 껄렁한 교내 폭력배 패거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자상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도 알고, 생각도 꽤 깊어 보였다.
“ ……고마워. ”
오토바이에서 내려 우물거린 재중에게 건우가 피식 웃었다.
“ 별 말씀을. ”
그리고 건우는 오토바이를 출발시켜 먼저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재중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터벅터벅 학교로 향했다.
골목을 나와 얼마간 걷고
있던 재중은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 재중아! ”
상대는 보나마나 민철이다. 역시나 손을 흔들며 다가온 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재중은 민철이의 떠드는 소리를 흘
려들으며 멍하니 걷고 있었다. 바로 전날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윤호는 방안 가득히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굳어버린 몸을 겨우
일으켜 천천히 욕실로 향했다. 머릿속이 이렇게 하얗게 비어버린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저 기계처럼 정해진 일과대로 몸을 움직였다.
달라진 것은 없다. 아침은 여전히 밝아오고, 사람들은 움직이고, 세상은 돌고 있다.
야속하게도 세상은 전혀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가 여기에
없는데도.
윤호는 면도를 하다가 얼굴을 베이고 말았다. 금새 붉은 피가 스며 나오더니 턱을 타고 흘러내린다.
어이가 없군.
윤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면도를 하다가 얼굴을 베이는 일 따위는 사춘기에도 하지 않았는데.
상처를 피해 면도를 끝낸 후 욕실을 나
왔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아서 피는 곧 멎었고, 2, 3일 정도면 사라질 것 같았다.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맸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 네, 정윤호입니다. ”
기계처럼 중얼거린 음성에 상대방이 말한다.
“ 사장님, 오늘은 회사에 나오실 겁니까? ”
단정하게 흘러나오는 비서의 음성을 들으며 윤호는 말했다.
“ 그래. ”
“ 알겠습니다. 스케줄을 조정해 두겠습니다. ”
그의 대답을 들은 후 윤호는 전화를 끊었다.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무너지는 슬픔을 겪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 또 다시 상처받는 이
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해주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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