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27편)
그날 밤 재중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몇 번씩 뒤척였다.
건우의 평온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재중은 어느샌가 다시 머릿속을 차지해버리는 윤호에
대한 생각으로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가끔씩 보이던 그의 웃는 얼굴도, 낮게 가라앉은 듣기 좋은 음성도,
자신을 안을 때 열정적으로 들뜨는 그의
눈동자도, 이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난다.
하지만 자고 있는 건우를 깨울까 두려워 차마 속시원히 웃을 수도 없었다. 겨우
심호흡을 하고 울지 않기 위해 애썼다. 어서 날이 밝아 다시 세상이 시끄럽게 일어나 준다면 좋겠는데.
이렇게 조용한 밤에는 도저히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건우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부시시 눈을 떴다. 습관처럼 등을 돌려 누웠던 건우는
건너편에 깨끗하게 개켜져 있는 이부자리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아아, 그렇지.
전날의 일을 뒤늦게 기억해내고 머리를 긁적였던 건우는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했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자는 기색이더니 좀 잤나. 몇 번씩 뒤척이
는 소리에 건우 또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같은 방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재중이다.
그렇게 도발적으로 자신을 들뜨게 만들었던 그. 건우는
그 때의 일이 생각나자 문득 민망해져 얼굴이 붉어졌다.
그다지 예민한 신경이라고는 할 수 없는 건우로서는 옆에서 뒤척이는 소리쯤으로 잠을 못 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뒤척이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그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꾸 열이 나려는 하반신을 어떻
게든 달래기 위해 자는 척을 하며 어떻게든 다른 것을 생각하느라 양을 세기도 하고 지루한 수업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다가 새벽에 겨우 잠이 들어버
린 것 같다. 전날 재중의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보여서 제안한 것이었지만 자꾸 이런 식이면 오히려 건우 쪽이
위험하게 여겨졌다. 정신수양, 정신수
양. 건우는 어릴 때 악몽을 꾸고 깨어나 울 때마다 할머니가 외워주곤 했던 불경을 외워볼까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생각나는 불교 말귀라고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뿐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거라도 외워둬야겠다,
하고 건우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중얼거리며 불경을 외웠다.
“ 일어났어? ”
문소리가 들리고 문제의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중은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그것이 또 한 구석을 들뜨게 만들어 건우는
멍하니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건우를 오해한 재중이 피식 웃었다.
“ 잠이 덜 깼구나? 일어나, 지각하겠어. ”
너, 나를 잡으려고 작정했구나.
건우는 속도 모르고 웃고 있는 재중을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역시나 건우에 대해서 오해만 하는 재중이 말했다.
“ 그런 얼굴해도 학교는 가야해. 아침 준비 내가 했으니까 먹고 학교가자. ”
“ …… ”
“ 고등학교는 졸업을 해야 뭘하든 할 거 아니야. ”
한마디 더 덧붙인 재중은 건우가 잠든 사이에 편의점에서 사온 반찬거리와 함께 냉장고를 뒤져 차린 상을 들고 들어왔다.
“ 밥을 오랜만에 해서 좀 물이 많아. ”
어색하게 말하는 재중에게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 아냐, 내 팔자에 남이 차려준 밥을 먹는 게 어디냐. 됐어. 잘 먹겠습니다. ”
건우가 막 젓가락을 집었을 때였다. 재중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건우에게 말했다.
“ 너, 세수도 안 하고 밥 먹어? ”
“ 먹고 이빨 닦으면서 하면 되잖아. ”
다시 밥을 먹으려는 건우를 재중이 노려보았다.
“ 안돼, 나가서 씻고 와. ”
“ 넌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냐, 계집애들처럼…… ”
“ 먹지 마. ”
그 순간 밥공기를 확 채가는 재중을 보고 건우는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야 이 새끼야, 니가 제 정신이냐? 여긴 내 집이
라고! 내 방! 내 쌀! 내 상!!
하지만 자신이 언제 웃었냐는 듯 흉악한 얼굴로 건우를 노려보고 있는 재중의 기세에 건우는 차마 항의할 수도 없었다.
결국 건우는 내키지 않는 얼
굴로 일어나 주춤주춤 마당에서 세수를 했다.
“ 씻고 먹으니까 상쾌하지? ”
상쾌는 개뿔이……
건우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다시 미소짓고 있는 재중의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 중간 인터뷰-_-;
(보석이 마구 달린 여왕님 의자에 앉아있는 재중. 그리고 그의 앞에 선 창민, 건우, 윤호. 그들의 대화 한 도막.)
창민 : 너, 니네 부모가 나한테 빚진 거 알고 있지?
재중 : 이제 당신한테 안 가도 된다며....
창민 : 젠장! 그래도 빚은 빚이야! 내가 갚으라고 하면 갚아!
건우 : 치사한 새끼... 하긴 수갑 재활용할 때부터 알아봤다.
돈도 많은 게... 재중아, 무시해. 그나저나 어떠냐? 지내보니 내가 젤 낫지?
창민 : 낫긴.
건우 : 돈이야 젊으니까 얼마든지 벌 수 있잖아. 역시 중요한 건 맘이 아니겠어?
창민 : 그 맘으로 그럼 내 빚 갚아봐.
건우 : 당신 치사한 거 아니까 빠져줄래?
창민 : 능력도 없는 놈이.
건우 : 나이도 많은 주제에 그만 쪼그리고 있으라고. 난 창창하니까 앞으로 벌면 돼.
창민 : 니가 나정도 돈 벌어놓고 정신차리면 나보다 더 늙어 있을 걸?
재중 : 시끄러워요. 둘 다 나가서 싸워.
(그 때까지 묵묵히 있는 윤호의 눈치를 살피는 재중. 두근두근. 어째서 당신은 암말도 안 하는 거야?)
윤호 : ...너.
재중 : 네, 네?(두근두근. 어떤 고백을 해주려고 저럴까?)
윤호 : ...처음 추운 겨울에 오갈 데 없이 얼어죽을 뻔했던 너를 누가 거둬주고 입혀주고 먹여줬는지 잊지 마라...
재중 : ......(헉...)
윤호 : 그리고 니가 멍하니 이 놈 저 놈 마구 페로몬 뿌려댈 때도 난 눈감아 줬고...
건우/창민 : 이 놈 저 놈? 그게 누구야?
재중 : 시끄러워 둘 다!
윤호 : 니가 바람 피우다 걸려 붙잡히자 잘못을 빌기는커녕 냅다 도망갔을 때도 난 참아줬다...
재중 : ........(정말 예쁜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안 해주는 나쁜 자식...-_-+)
창민 : 니가 젤 치사해.
건우 : 게다가 황제병까지 있군.
윤호 : (둘을 무시하고) 니가 손톱만큼이라도 양심이 살아있다면 이 상황에서 누굴 선택해야 할 지 알 거다...
재중 : .............(삐질삐질)
건우 : 과거에 얽매이지 마, 재중아. 네 인생은 네 거야.
창민 : 니 인생 내가 책임진다니까? 나한테 와.
재중 : ............나,
건우/창민 : 응?(눈을 반짝)
재중 : 작가한테 얘기해서 새로운 공 내보내달라고 할래요...
건우/창민 : 헉...OoO;;;
재중 : 창민씨만큼 돈 많고, 건우만큼 착하고, 윤호씨만큼 후까시맨으로 달라고 할거야...-_-
건우/창민 : (윤호를 노려보며) 너 때문이야!! 어떻게 할 거야 이 책임!
윤호 : 걱정하지 마. 아마 더 이상 내보낼 조연은 없을 걸... 그 인간도 게을러서 새인물 만드는 거 싫어해... 생각해 봐, 우리가 벌써 2부가 훨씬 넘게 출연했는데 그 중에서 출연 횟수가 얼마나 되나...
건우/창민 : 하, 하긴.
(음... 윤호는 넘 많은 걸 알고 있어...-_-+)
건우/창민 : 그래서 넌 누굴 택할 거야?!
윤호 : ........(눈으로 위협)
재중 : 우와아아아앙~ㅠo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