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25편)
창민이 지영으로부터 파혼소식을 듣게 된 것은 오후의 일이었다.
물론 그것도 창민이 먼저 전화를 걸어서 캐어물은 결과 알게 된 것이었지만.
“ 이제 속이 시원해? 나한테 선전포고를 하다니, 정말 간이 크지 뭐야. ”
악의에 가득 찬 말을 내뱉으며 지영이 말했다.
“ 이제 너도, 윤호씨도 더 이상 그 새끼 감싸면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 없어.
앞으로 내 멋대로 할거야. 끼어 들지 마. ”
익히 그녀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창민은 그녀가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을지 내심 불안했지만
그녀를 말릴 힘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면목이 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윤호에게 찾아갔다.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호텔의 직원은 손쉽게 스페어 키를 내주었다.
삑―
카드키의 체크소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던 창민은 이미 밤이 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스탠드 불빛 하나 비치지 않는 방안에 서둘러 불을 켰다.
확, 하고 불이 들어오자 창민은 뒤늦게 그 때까지 벽에 기대어 초췌한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윤호를 발견하고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꽤 오
래 알고 지내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그로서도 윤호의 이러한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 정윤호! 너 이게 무슨…… ”
놀라 소리치자 윤호는 성가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용건은? ”
창민은 여전히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 ……지영이가…… 너희 파혼했다고…… ”
“ 그래서, 너한테 울며 쫓아가던가? ”
“ 그 애가 그럴 성격이 아니잖아. 아직 지영이에 관해서 잘 모르는 군. 약혼까지 했던 주제에. ”
그러니까 네가 좀 말려, 하고 속으로 덧붙인 창민은 뒤늦게 재중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 ……그 애는, 어디 있어? ”
음성이 불안하게 떨려왔다. 윤호가 대답한다.
“ 나갔어. ”
“ 나가다니? ”
윤호의 입가가 조소처럼 비뚤어졌다.
“ 떠났단 말이야. 여긴 없어. ”
“ 네가 쫓아냈어? ”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 창민에게 윤호가 말했다.
“ 네가 무슨 상관이야? ”
창민은 그 순간 이성을 잃고 소리쳐 버렸다.
“ 그 애는 너를 위해서 돌아왔는데 네가 쫓아냈단 말이야? 어째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정윤호! ”
윤호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 역시, 너였나?… ”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멈칫한 창민이 놀라 물었다.
“ 역시라니, 무슨 말이야? ”
윤호는 여전히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속삭이듯 말했다.
“ 네가 아닐까… 알고는 있었지. 하지만 묻지 않았어. 확인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캐어물으면, 그 순간 떠나 버릴까봐… 아무 것도 모른 체하고 있으면
그나마 내 옆에 있어줄 거라고 나는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바보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지. ”
“ 알고… 있었다고? 언제부터? ”
성급히 따져 묻는 창민을 보며 윤호가 자조하듯 낮은 음성으로 웃었다.
“ 글세, 아마 처음부터 아니었을까. 너라는 걸 알게 된 건 그 뒤의 일이었지만. ”
윤호는 사이를 두고 덧붙였다.
“ 네가 나를 갑자기 집으로 부른 날, 둘이 함께 있었지? 그 애 신발이 현관에 있더군. ”
창민은 멍하니 윤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하지만… 어째서? 왜 그 애가 떠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언제나 그 애는 네게로 돌아갔는데… 어째서? ”
“ 만약에 그 애가 딱히 내가 아니어도 괜찮았다면, 내게 돌아오는 것이 단지 습관일 뿐이고
그저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돌아오는 거였다면 어떻게 하지? 내게서 떠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니야?
그래도 난 나의 이 바보 같은 자존심 때문에 그 애를 잡지도 못 하겠지. ”
윤호가 벽에 머리를 기대고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 사랑한다고 말하지 그랬어… ”
“ 난 그 애를 사랑하는 게 아냐. ”
내지르듯이 말한 윤호는 창민을 노려보았다. 창민은 기가 막힌 얼굴로 윤호를 마주 보았다.
“ 그게 사랑하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이야? 제발 인정할 건 해. 네 지금 모습을 봐,
그 애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왜 그런 모습으로 있는 거지? 응? ”
“ 사랑하지 않아. ”
윤호는 고집스럽게 말하며 고통스러운 음성으로 쥐어 짜내듯 말했다.
“ 사랑하지 않아, 절대로 사랑하는 게 아냐. ”
그러니까 그 애는 죽지 않아도 돼. 내 곁을 떠나지 않아도 돼. 나는 그 애를 사랑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
절대로 그 애는 죽어서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너를 잃어버렸지. 자신을 속이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대면서,
결코 너를 원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단지 그렇게 속이는 것만으로 너를 잃지 않을 거라고 나는 어리석은 계산을 한 거야.
그 대가를 나는 지금 치르고 있는 건가……
윤호는 가까스로 치밀어 오르는 오열을 참고 있었다.
행여 그가 돌아왔을 때 자신의 약한 모습은 도저히 보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재중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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