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23편)
하늘은 여전히 맑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해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재중은 휘청거리는 발걸음으
로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퉁, 하고 거칠게 몸이 부딪힌다.
“ 어머 미안하다는 소리도 안 해. ”
짜증스럽게 말한 여자의 음성도 재중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 미친 애 같애. 하고 있는 것 좀 봐. ”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이 귓가를 스쳐간다. 재중은 가방 끈을 손에 쥐고 가방을 질질 끌며 찢겨진 셔츠와
엉망으로 구겨진 바지를 입고 기운 없이 걷고
있었다. 하도 울어서 눈은 퉁퉁 붓고 얼굴은 붉다. 다시 흘러내린 눈물을 재중은 거칠게 닦아냈다.
얼굴이 따끔하게 쓰라려왔다. 도대체 얼마나 운 걸
까.
머릿속에 제대로 생각이 돌아가질 않아 재중은 계속 정처 없이 걷기만 했다.
계속해서 차도에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경적을 울리는 시끄러운
차소리. 재중은 멍허니 고개를 돌렸다. 홀린 것처럼 그는 도로로 향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는 동안
재중의 머릿속은 마치 백지처럼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스쳐가는 트럭을 보고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 위험해! ”
“ 꺄악!!! ”
끼이이이익―
요란하게 비명소리가 이어지더니 아스팔트가 사납게 할켜지는 무서운 급제동 소리가 들려왔다.
재중은 여전히 멍하니 눈만 깜박이고 있을 뿐이었다.
“ 야, 이 새끼야! 누구 잡으려고 환장했어? ”
자칫 사고가 날 뻔한 트럭에서 운전수가 뛰쳐나와 고함을 질러댔다.
“ 죄송합니다. 주의시킬께요. ”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지만 재중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귓가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린다.
몇 마디 말이 더 오고간 후에 운전수는
다시 트럭을 출발시켰다.
“ 괜찮아? ”
그 때까지 재중을 가슴에 안고 있던 그가 조심스럽게 그를 떼어내고 얼굴을 들여다본다.
“ ……건우……? ”
몽롱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 오늘 너 학교 안 왔길래 혹시나 싶어서 너 묵고 있는 데 가봤더니 니가 갑자기 막 뛰쳐 나오더라고.
놀래서 쫓아오긴 했는데…… 왜 그랬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
“ ……나…… 피곤해…… ”
겨우 중얼거리듯 말을 했다. 건우는 잠시 재중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 어디로 데려다줄까? ”
건우의 질문에 재중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데려다준다고? 어디로? 내가 갈 곳이 어디가 있다는 거야?
어디에도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잖아.
재중은 신경질적으로 웃어버렸다. 건우는 난처한 듯 재중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 그럼…… 우리 집이라도 일단 갈래? ”
어차피 갈 곳은 없었다. 어디든 재중에게는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그 어디에도 그가 가장 바라는 사람은 있어주지 않을 테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재중을 안아든 건우는 그 때까지 재중이 손에 들고 끌고 다녔던 가방을 자신의 어깨에 맸다.
“ 꽉 잡아야 해. ”
건우는 걱정스러운 듯 오토바이 뒷좌석에 재중을 태우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재중의 손을 들어 자신의 허리를 안게 하고 그것도 못 미더웠는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재중의 손을 붙잡았다. 행여나 달리는 사이 재중이 뛰어내리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재중은 이제 더 이상 자살
할 기운조차 없었다. 재중이 건우의 등에 기대어 눈을 감고 그의 허리를 꼭 안았다.
건우는 오토바이가 얼마간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놓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속도는 아주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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